김정열한국요시다 부장남북치의학교류협회 이사 남북치의학교류협회(치교협)에서 대북의료 지원단체인 나눔인터내셔날을 통해 평양지역에 치과유니트체어 1대를 기증했다. 나는 치교협 회원으로 의료지원단과 함께 2008년 11월 22~25일 3박 4일간 평양을 다녀왔다. 첫 방북이어서 출발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5시 30분 기상, 바쁜 마음에 대충 짐을 챙겨, 공항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싣고 인천 공항에 6시 20분쯤 도착하였다. 약속 장소인 대한항공 A데스크 앞에 도착하였으나 아무도 없었다. 거의 한시간 가량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주변을 왔다갔다 하는데, 어떤 여성분이 다가와 내게 “김 부장님 아니냐”고 물었다. 반가웠다. 자기가 조금 늦었다고 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지만 서둘러 수속을 마쳤다. 비행기는 한시간 반 정도 비행 후에 심양에 착륙하였다. 그곳에서 먼저 도착하신 소아과의사 한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일행으로 합류하였다. 이은상 대표는 우리에게 시간이 좀 남으니 공항 밖으로 나가 족맛사지를 받던지 관광을 하면서 기다려 달라는 말을 건넸다. 일행 중 중국이 처음이라 관광하기를 원했지만 정작 이야기가
지난 봄, 지인의 권유로 DSLR에 입문했다. 사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좋은 경치를 보고도 담아오지 못하는 아쉬움에 DSLR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차 이었다. 거금을 투자하여 이것저것 장비를 마련하고 출사라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지난 3월이다.하지만 출사는 항상 골프에 밀려 라운딩 전이나 후 짜투리 시간에만 이루어졌다.8년차 기러기로 남는 시간 골프에 정진하다보니 꽤나 성적이 좋아 여기저기 다른 멤버들과의 라운딩이 한달 일정으로 잡혀 있곤 하던 때이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야생화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점점 생활의 축이 골프에서 야생화로 이동하고 급기야 일요일 라운딩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여름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일요일 라운딩이 없어졌다.어릴 적 수 없이 보아왔던 꽃들이지만 앵글에 담겨진 야생화는 더욱 아름답게 내게 다가온다. 나리꽃, 며느리밑씻개, 물봉선, 양지꽃, 바위채송화….수 많은 정겨운 우리 꽃들을 담으면서 점점 야생화의 세계에 나도 모르게 깊게 빠져들게 되었다. 야생화클럽에서 어릴 적 보지 못했던 예쁜 꽃을 보면 나도 꼭 만나고 싶다는 갈망도 하고 점점 출사거리를 멀리 떠나게 되었다.
2008년 11월 7일은 내게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 날이다. 내가 전국 치과대학 영어 논문 발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날이기도 하지만 아버지께서 건강이 악화되어 응급실로 실려 가신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치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수능을 다시 준비하고 있을 2004년 7월에 간암진단을 받으셨다. 간의 70퍼센트를 절제해야 하는 대수술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수능을 준비하는데 행여 피해를 주실까, 수술이 끝날 때까지 나에게 비밀로 하셨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에야 아들 목소리가 정말로 듣고 싶다고 눈물을 흘리시며 내게 전화를 주신 분이 우리 아버지이시다. 아버지의 간암 소식이 내게는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채찍질이 되었고, 이런 노력 끝에 치과대학에 합격하게 되었다. 아버지께 합격소식을 전화로 전해드리면서, 아버지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들로서 아버지께 힘이 되어 드릴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만 생각되었는데, 아버지께서 너무 기뻐하시는 모습에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공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아버지의 간암 투병도
휴일인 어제 환자의 가정 방문 등의 일정을 마치고 다소 여유를 찾았던 일행은 본격적으로 수술에 들어갔다. 가능하면 많은 환자에게 혜택을 주고자 다소 무리한 수술 스케줄을 잡은 탓에 첫날부터 다소 부담이 있었다. 빈둥성 종합병원에는 수술방이 6개 있는데 그중 2개를 이번 진료에서 쓰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일웅봉사회와 중외제약의 후원으로 마련한 것이라 한다. 수술 전 간략하게 일웅봉사회에서 기증하는 물품들에 대한 기증식이 있었고 바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첫날에 잡힌 수술은 모두 6건, 그중 구순열 수술이 2건, 구개열 수술이 4건이었다. A방은 김종렬 교수님과 팽준영 교수님, B방은 최진영 교수님과 전승호 선생님이 각각 집도와 어시스트를 맡으셨고 마취과 신터전 선생님이 양쪽 방을 오가며 마취를 담당해주시기로 했다. 김미연 간호사님은 수술에 조금이라도 부족하지 않도록 기구외 여러 가지들을 준비하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매년 해왔던 일이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 완벽하게 갖추어지지 않은 장비들, 빈둥성 스탭들과의 언어장벽 등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교수님들께서는 정말 놀라운 실력과 집중력으로 수술을 진행하셨다. 막내인 나도 양쪽방을 오
오전 6:30 새벽공기가 차다.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잠을 설쳐 눈은 다소 충혈되었지만 설렘과 긴장 때문에 가슴은 벅차오른다. 외과 앞에 준비해둔 9개의 거대한 짐을 차에 싣고 공항으로 향한다. 오늘 나는 베트남을 간다. 의료봉사단체의 일원으로서다. 정식명칭은 ‘2008년도 제14차 일구순구개열의료봉사후원회 베트남 의료봉사활동’이다. 서울대 구강악안면외과 민병일 교수님과 그 제자 및 구강악안면외과 출신의 치과의사들로 구성된 단체로서 민병일 교수님께서 오래전 베트남과 인연을 맺으신 이후 벌써 14년째 구순구개열 환자들에게 무료수술봉사를 하고 있다. 나는 치과대학 학생의 자격으로 이번 봉사활동에 참가한다. 학생의 참가는 이례적인 일이다. 너무나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에 매우 감사하다. 학생이자 팀의 막내로서 내가 맡을 대부분의 일이 힘을 쓰는 일이 될 것이며 그저 성실하게 그리고 눈치 빠르게 움직이며 최대한 이번 봉사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면 될 것이다. 뒤편에 놓인 엄청난 양의 짐들이 내가 담당한 첫 번째 임무이다. 막내의 부담감도 사실 그리 적지만은 않다. 차에서 짐을 내려 공항으로 옮겨놓고 잠시 숨을 돌리자 일행이 하나둘씩 도착한다. 일행은 총 10명인데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고, 욕설을 퍼붓고, 학부모들이 찾아와 학생들 보는 앞에서 선생님에게 행패를 부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것 같다.모두들 학생과 학부모 등 가해자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때 나에게 고등학교때 국어를 가르쳐 주셨던 은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여러분 요즘 학생은 있으나 제자가 없고, 선생은 있으나 스승은 없습니다. 지금 같은 세태는 누구의 책임일까요?” 나는 당연히 교권에 도전하는 학생이나 학부모의 잘못이라고 이야기 하실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은사님의 말씀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여러분 지금 교육계가 혼란스러운 것은 스승다운 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창문 밖을 바라보시던 선생님의 씁쓸한 옆모습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왜 갑자기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에 없지만,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많은 선생님들 중에서 이 국어 선생님을 나의 스승 중에 한 분으로 간직하고 있으며 나의 짧은 교직생활을 포함하여 나의 삶 속에 아직도 남을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황금 같은 말씀으로 자리잡고 있다. 요즘 치과 선생님들이 모이면 환자들에게, 사회에게, 언론에게, 정부에게 많은 서운한 점을 거
다수의 사람들은 경제생활이라는 것을 열심히 일만 하면 별 문제가 없는 줄 아는데, 선진국의 소수 자본가들이 최신 금융기법으로 세계 경제를 교란하고 있음을 모르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물론 온 나라가 흥청망청 소비하고, 은행들은 외형을 키우기 위해 앞 다투어 단기 상환 외채를 들여와 장기 부채로 대출하고 국민들은 이 돈을 부동산에, 사치재에 과잉투자해 거품을 만든 것도 이런 사태를 야기한 원인의 하나임을 부인 못하겠지요. 우리도 대부분 건실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낭비는 없었는지, 일부 개원의가 병원 외양만 신경 쓰고 진료의 질보다도 양을 중시하는 ‘거품경영’은 없었는지 자성해야만 합니다. 지나친 외형 투자로 인해 야기된 경영압박이 빌미가 되어 자행되는 개원가의 무질서 행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변명이 될 수 없고 동료 의료인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는 행위입니다. 몇몇 사람들 때문에 외부에서 치과의사를 존경받는 의료계의 공인으로서가 아니라, 돈 밝히고 자신만 아는 의료계의 아웃사이더로 보일지 걱정됩니다. 아무튼 이런 지엽적인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큰 곤란을 당하는 것은 국가의 정책을 집행하는 전문가들이 화폐의 흐름을 적절히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삶의 당위성은 도대체 뭘까 하는 의문을 품어 왔을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적이면서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은 개개인에 따라 다양하겠으나 그 기저에는 대부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감대가 있어서 인생이란 나름대로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회 생활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아도 실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아서 “왜 열심히 일해도 육신이 고단하고, 생활하기도 어렵고, 치열한 생존 경쟁에 휘말리게 되나?”하고 궁금해 한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심’ 때문 아닐까요? 과거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시절, 그때는 이웃 간에 ‘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훨씬 물질적으로 윤택해졌어도 사회가 삭막해지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즉, 비대해진 물질 만능 세태를 아우를 수 있는 정신문화가 발달하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메이크 머니’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는 요즈음 마치 러시안 룰렛게임의 종지부를 찍듯 부풀리던 ‘머니 풍선’이 터지는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바로 미국발 경제대란이지요.현재 우리는 엄청난 세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잘못하면 가출이 된다던데…)을 꿈꾸던 나에게 퀼른대학연수회는 새로운 치료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자 좋은 휴식을 줄 수 있을거라는 생각에 급하게 준비하고 동참하게 되었다. 처음 가보는 유럽. 비행기에 많은 여유좌석이 있을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빈좌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죽었다~ 무려 12시간이라던데." 설레이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혹시 졸릴까라는 기대로 꺼낸 저널까지도 끝까지 다 읽었으니까. 영화 세편에, 드라마 두편을 보고 나니 이제 착륙을 준비하라는 방송이 나온다. “이제야 도착이구나."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나고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내렸다. 밖에는 눈이 오고 있다. 독일에 오는 첫 눈이란다. “운치 있네~"라는 웃음과 함께 호텔로 향한다. 저녁으로 순두부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일본치과의사들과도 간단한 인사를 했다. 정말 인사만 했다. 정말이지 이런때는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고 다짐만(단지 다짐만)하게 된다.둘째날이 밝았다. 다른 사람들도 이미 3~4시에 전부 일어난 듯하다. 쾡한 눈으로 아침을 먹고 퀼른대학으로 향했다. 강의주제는 오존이다. 오존에 대해서는 살균효과가 있는, 고
심 동 욱 강남심美치과의원 원장서울시 강남구치과의사회 이사 불확실성 시대 속에치과의사의 존재 가치는바로 진료속에서 찾아야 요즘 개원가는 날씨만큼이나 춥습니다. ‘어디는 많이 어렵다고 하더라’ 하는 걱정담긴 말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하긴 저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신환이 많이 줄고 치료 동의율도 떨어지네요.다른 이야기인데, 최근에 모 이동통신 회사의 광고음악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음악의 원곡이 있더군요. W&Whale이라는 실력파 그룹의 ‘R.P.G. shine’이라는 좀 생소한 제목의 노래입니다. 근데 흥미로운 것은 R.P.G.가 Rocket Punch Generation의 약자라는 사실입니다.앞으로 최소 10년은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핵심인 우리 30대~40대 중반의 세대들은 소시적에 TV나 영화를 통해 로봇태권V나 마징거Z 같은 만화를 보고 열광하며 자랐고, 세월이 흐른 지금은 지난 기억만이 어릴적 향수로 남아있습니다.정의는 항상 승리함을 가르쳐 주며 최후의 일격은 언제나 로켓 주먹으로 끝내던 우리의 영웅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아가는 소년들에게서 서서히 잊혀져 갔습니다.어렵게
마 오늘 저녁은 칼국수 해줘!"“뭐가 맛있다고 칼국시 해달라고 하냐잉… 수제비가 그렇게 좋냐잉? 귀찮아서 하기 싫은디."(엄마는 칼국수보다 칼국시라고 하고, 수제비란 말로 통상 쓴다)오후가 된 후, 줄곧 실갱이한다. 오늘은 꼭 먹고 싶은데….엄마가 오늘도 칼국수 하기 싫으신가 보다.“치~"“오늘은 그냥 호박에 된장국 끓여 어제 담근 김치에다 먹자!"“어제는 김치 담근다고 오늘 하자 그래놓고…."5시가 되가면서 초조해지는 나. 오늘도 칼국수를 못 먹나 보다.이제 해는 곧 질것 같고, 어둑어둑해질 것인데… 내일 또 부탁해야지 하면서 먹고 싶은 맘을 접을 순간, 엄마가 한 마디 하신다.“그럼, 니가 반죽 밀어라. 엄마 손 아픈께"“알았어… 미친놈처럼 밀게, 반죽만 해줘…"“뭐가 그리 수제비가 맛있다고"“세상에서 젤 맛있는게 칼국수여!" “칼국수 하는 집에 장가갈거야"“알았다, 빨리 먹고 치우자" “오케이"그럼 저녁 준비가 시작된다!솥(20년을 우리와 함께 했던 오래된 솥)에 물을 넣고 끓인다.통 멸치 한 스무 마리를 같이 넣으시는 듯 한다. 엄마는 능숙한 솜씨로 양판에 물과 밀가루를 적당량 넣고 반죽을 시작한다.물 조금, 밀가루 조금을 반복하시다가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