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오늘은 평소보다 2시간 정도 진료를 일찍 마치고 병원을 나섰다. 성남 아트센타로 가는 길은 주말인지라 길이 많이 막혔는데 여느 때 같으면 짜증스러웠을 이 길이 오늘은 마냥 설레기만 하다. 벤쿠버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힐러리 한의 협연을 보러 가는 날이다. 내가 이렇게 가끔 실내공간을 벗어나 연주회장을 찾은 계기가 된 것은 60년대 후반 중학교 시절 고향 빛고을에서 당시 서울음대 교수였던 양해엽 씨의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서울시향과의 협연을 보고 난 후부터이다. 아껴뒀던 돼지저금통을 깨고 찾아간 그 날의 연주는 커다란 충격과 감동을 주었고 두고두고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쳤었다. 당시에는 서울시향의 연주를 지방에서 듣는 것도 드물었었고 물론 서울에서도 정상급의 연주자는 거의 만나지 못할 만큼 어렵던 시절이었다.오늘 내가 듣고 싶어하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내가 이 곡을 처음 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당시 전국에서 서울 중앙여고와 함께 관현악단이 있던 유일한 남학교였다. 관현악단을 지도하시던 선생님께서 완행열차를 타고 1박 2일의 긴(?) 여정 끝에 가방 속에 숨겨간 녹음기로 몰래 녹음해 왔던 곡. 정경화
작년 Dentsply후원으로 열렸던 학생 학술발표대회에서 수상해 지난 10월 16~19일 ADA학회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다녀오게 되었다.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San Antonio로 가는 항공편을 타고 출발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 같은 항공편을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들의 대화를 조금 듣다 보니 대부분이 ADA학회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모르는 사람들 이었지만 나와 같은 학회에 가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했다. 무사히 San Antonio에 도착해 호텔까지 쇼퍼가 나와 데려다 주었는데, 호텔이 overbooking을 하는 바람에 내방이 준비되지 않아 45분정도 거리에 있는 다른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호텔 직원에 설명에 의하면 ADA학회로 인해서 San Antonio시내의 모든 호텔에 방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멀리 가야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제서야 이 학회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45분이나 되는 거리를 밴으로 이동하면서 나와 같은 상황인 다른 한 손님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백컨데 저는 활자중독자입니다. 장르를 불문하고 그 어떤 책이건 닥치는 대로 읽어대는 남독자(濫讀者)에 가깝습니다. 하다못해 신문을 봐도 광고면도 빠짐없이 읽어야 속이 편하죠. 덕분에 화장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문제이긴 합니다만. 시간만 나면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을 봅니다. 요즘은 컴퓨터에서 보라고 E-book이란것도 나왔더군요. 그냥 파일형태로 모니터에서 읽으면 됩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도통 자리에서 일어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예전부터 맘에 두고 있었던 답사라는걸 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당연히 지리산입니다. 지리산은 20대 초반 객기로 몇 번 도전했다가 혀 내민 강아지 꼴이 되어 포기도 몇 번 한 기억이 있어 늘 가슴한구석에 남아있던 곳이었지요. 하도 많이 읽어 대충 외울 지경이 된 박경리선생의 ‘토지"를 가슴에 두고 떠나보니 등산을 염두에 두고 갔던 때와는 많이 다르더군요. 일단 산에 왔으니 머리도 맑아지지만 친구들 혹은 지인들과 왔을 때에 느꼈던 등산에의 압박도 없으니 마음도 편합니다. 어릴적 여러 매체에서 들었던 뱀사골을 전 뱀이 나올법하게 으스스하고 음침한 계곡인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 들러보니
교수님으로부터 구강보건에 관련된 UCC 공모전이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접하게 됐다.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우린 너무나 즐거웠다.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학교 전체를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여러 장소를 활용하면서 촬영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학교가 넓고 시설이 좋아 장소선정에는 별 어려움 이 없었던 것 같다.학교 강의실부터 여성휴게실, 학교 매점, 그리고 실습실과 교사화장실까지….교수님들로부터 장소활용 잘 했다고 칭찬해 주시며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처음 촬영한 장면은 가장 연출하기 어려웠다.왜냐하면 실연당한 슬픈 여인의 컨셉을 살려야 하는데, 평소 활발하고 씩씩한 내가 슬픈 연기를 하는 것이 너무 어색해서 NG도 많이 났었다.결국 눈물연기에 실패해서 안약으로 대체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여졌지만 처음해 보는 눈물연기를 훌륭히 소화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었던 게 먹는 장면이었다.과자를 맘껏 먹는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행복했지만,실제로 계속 먹으면서 리얼한 연기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먹고 또 먹고 계속 먹다보니 이제는 과자가 싫어질 정도였다.우린 그 만큼 한 장면 한 장면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또
침 출근길에 문득 바라본 창밖 풍경이 어느새 겨울이다. 며칠 전까지도 눈길 닿는곳마다 온통 노랗게 물들던 은행나무들이 스산한 모습으로 겨울맞이를 하고 있다. 12월! 해마다 이때쯤이면 갑자기 다가온 겨울만큼이나 분주한 마음으로 한해를 정리하게 된다. “이번에는…” 하고 시작해서 작년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 한 해를 보냈지만, 그래도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음가짐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내 나름대로 원칙을 정해놓고 지낸다. 우선 ‘2008년 나와 우리 가족의 탑 뉴스 5가지’를 뽑아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곰곰이 되짚어 보면 분명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 놀랐던 일이 떠오른다. 큰 애의 학교입학, 가족여행, 강아지 입양, 병치레…. 하나씩 기억을 더듬다 보면 자연스레 지나온 일 년이 고스란히 정리돼서 새해 계획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한 해 동안 내가 받았던 선물’을 헤아려 본다. 생일이나 명절에 받은 크고 작은 선물도 많았지만, 또 다른 선물들도 많이 받았음을 새삼 깨닿게 된다. 바쁘고 지쳤을 때 받은 안부 전화, 힘들어 할 때 전해준 따뜻한 격려의 한마디, 차 한 잔과 함께 한 말없는 미소…. 하나 하나 되새겨본다. 그리고
씨가 쌀쌀해져 코트를 꺼내는 제 모습을 보면서 겨울에 들어섰음을 확인했습니다. 11월 중순을 넘기고 나니 이제 치위생과 학생들에게는 본격적인 ‘수험철’이란 생각이 듭니다.올해는 11월 23일 실기시험, 12월 21일 필기시험이 있다는 공지를 봤습니다. 이 글이 실릴 땐 아마 실기시험은 끝났겠죠? 지난해 이즈음 실습실에 남아 마네킹마다 고유의 이름을 붙여주고는 친구 삼아 시험 준비를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동기들과 서로 알려주기도 하고, 시험감독도 해가면서 편안한 추리닝차림으로 자유롭게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던 기억입니다. 그래도 난 기구는 잘 잡아, 자부심을 갖다가도 시험 일주일 전 갑자기 모든 기구가 비슷해 보이는 등의 혼돈이 오기도 하고. 그럴 때면 침착해야지, 하루에도 백번씩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수필을 의뢰받고 무슨 내용을 쓸까 생각하며 그 즈음을 추억하는데 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친구들과의 술자리일까요? 국시공부를 마치고 친구들과 한잔하러 가던 길, 취업에 관한 얘기와 서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 이제 몇 년간 자매처럼 함께 지내던 나날이 며칠 남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을 나누던 그 자리가,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도서관이나
난 10월 27일 우리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본과 2학년 재학생은 구강보건사업 현장체험의 일환으로 함평군 보건소와 함평군 상수도에 다녀왔다. 평소 수업과 실습의 연속으로 쉴 틈이 없지만, 예방치과 교수님께서 재학생들에게 구강보건사업의 현장 파악과 치과의사의 역할을 이해시키고자 마련한 자리였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를 가니 함평군 보건소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으신 보건소장님과 다른 관계자 여러분이 먼저 나와 우리를 맞아주셨다. 보건소는 예상했던 것보다 그 규모가 컸다. 2층으로 올라가 보건소장님의 함평군 보건소의 소개와 시행중인 보건사업 등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함평군은 인구의 대다수가 1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구성원은 대다수가 어르신들로 이루어진 고령화 단계의 지역사회였다. 함평군 보건소는 이러한 특성에 적합한 보건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함평군 군민 건강 프로젝트’라는 기치의 이 사업은 연령대별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학교방문교육을 통해 아동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구강, 성, 흡연으로 인한 문제 예방에 힘쓰고 있었고, 장년층을 대상으로는 만성질환예방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년층을 대상
드란 벗은 게 아니라 옷을 걸치지 않은 인간 본래의 모습이다.지금도 지구상 여러 곳에는 나체로 생활하는 종족이 살아가고 있다.현대인들 중에도 나체주의자들이 집단 거주 지역에서 누드로 생활하고 있다. 왜 인간이 옷을 입게 됐는지 여러 가설이 있다. 혹자는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그 부끄러움은 어떻게 생기게 됐을까? 성경에서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나서부터 생겼다고 한다. 우리는 사회적, 도덕적 관념 때문에 나체는 부끄러운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본능적으로 부끄러움이 생긴 것이 아니라 학습과 교육에 의해 그리된 것이다.현대문화에서 누드는 제한된 장소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맨 먼저 여체가 나타난 것은 신석기 시대이다.지금으로부터 약 3만 년 전의 일로 인간이 지상에 나타난 지 수십만 년 후의 일이었다.인간들이 구석기 시대에 오랜 방황과 채집시대를 청산하고 비옥하고 아늑한 땅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하면서부터 여체는 바로 생식과 풍요의 상징으로 모셔져 어느덧 하나의 여신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 시대의 여체조각상을 보면 가슴과 엉덩이가 대단히 크게 표현되어 있어서 다산(多産)과 풍작을 이런 여체 상에서 기원
리스 신화를 보면 지하세계 하데스에서는 죽은 후에 영혼이 건너는 강이 있다. 레테의 강 또는 망각의 강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강을 건너게 되면 지상세계에서의 모든 기억을 잊어 버리게 된다고 한다. 새 삶을 시작하는 시점인 사후세계에서 망각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짧은 삶을 반추해보면, ‘건망증"이라고 불리는 증상을 겪는 상황이 많다. 방금 받은 편지를 손에 쥐고 찾는가 하면, 방금 읽은 책을 어디에 넣어 두었는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파다하다. 의도하지 않는 기억 상실을 경험할 때에는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소한 실수로부터 해서 시험보기 전날 꾸역꾸역 채워넣은 지식들이 마구 새어나와 불안해한 경험도 있다. 5분전에 읽은 문장이 생각나지 않고, 불안감만 고조되어 시험지를 받은 시점에서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버리는 경험도 한다. 이럴 때마다 내 기억력를 탓하거나, 기력을 탓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도 잘 잊어버리는지…." 하지만 좋지 않은 기억이 생기면, 그 기분이 나를 지배하게 되고 씻지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영향을 주기도 한다. 물론 그 기억들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문득 문득 떠올라 나의 화를 돋우는
속리산 법주사 형님 절이었다는 공림사에 가서 990년 된 느티나무를 만났습니다.어린 시절을 보낸 제 고향의 오래된 절이죠.공림사는 신라 경문왕때 자장선사가 지었다고 합니다. 신라 고려시대를 넘어 조선시대 임진왜란에 불타고 6·25 때 전소되었답니다.그러니 이 엄청난 느티나무는 불 타는 절을 두번씩이나 지켜 보았겠지요.가을에 낙엽을 쓸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 스님들의 넉넉한 마음도 함께 만났죠.불타버린후 새로 지은 아름다운 단청과 기와, 그리고 뒷마당의 부도조차 느티나무의 자태에 비하면 모두가 작위적일 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느티나무 곁에 이끼가 잔뜩 낀 커다란 바위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찌 저런 바위를 안고 웅장한 자태를 지킬 수 있었을까? 느티나무의 넉넉한 마음이 없었다면 바위와 함께 한 1000년의 세월은 없었을 것입니다. 큰 도량이 있었기에 온갖 성쇠 (盛衰)를 지켜보면서 수많은 굴욕의 밤을 견디었으리라. 바위와 느티나무의 만남 마치 동성애라도 나누는 연인처럼, 질박하고 무던한 두 물성이 생명을 끌어안고 세월과 함께 흘러왔습니다. 저들은 천년의 시간동안 수많은 전란과 그 곳에서 죽
정상적인 언어와품위있는 문장이 사라지고암호같은 속어가 판치는 세상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 대학친구 모임이건 고등학교 친구 모임이건 간에 대장이 없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좀 잘 나가는 친구가 있어 봤자 덕 볼 일도 없고 덕 줄 일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모임에서 대장이 되고 좌중을 주도하는 친구는 얼마나 잘 웃기고 입담과 험담과 음담패설이 기가 막혀 현 세태를 잘 풍자하고 꼬집고 우리들 가정사를 실감나게 무궁무진한 레퍼토리로 풀어 놓는 친구가 “초대교수님”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우리끼리 하는 얘기로 “교수님 특강”이라 하고 점심모임이나 저녁 술 자리에서 “오늘 또 새로운 주제(?)의 특강” 교수님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빠져 버리지만 실상 남에게 옮길 때는 거의 스토리와 제목을 잘 잊어버리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 들은 “특강”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9988(구구팔팔) 234(이삼사)” 같은 것은 아주 진부한 고전이 되었고 이것 대신 “부부 88 복상사”가 새로운 정설이란다. 요즈음 며느리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9988. 234” 란다. 시부모가 99세까지 88하게 살다니 그것도 2, 3달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