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떡해’를 들으며 대학에 가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룹음악을 하겠다는 꿈을 꿨다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음악은 새로운 세상으로의 통로였다. 아름다운 선율이 마음을 흔들어 놓아 멋진 사랑을 할 것이라고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고, 좋아하는 음악을비슷한 친구들과 테잎을 빌려가며 듣기도 했다. 브라암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같은 클래식음악을 듣기도 했지만, 그 당시 TV에 나온 대학생 형들의 그룹사운드 음악은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 했다. 77년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인 “나 어떡해”를 들으며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대학에 가면 그룹음악을 해야겠다는 즐거운 꿈을 꾸었었다. “나 어떡해”를 부른 “샌드페블즈”의 주 멤버였던 김창완님이 김창훈, 김창익 동생 둘과 함께 “산울림”을 결성하였고, 그들의 음악은 나에겐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친구들과 함께 빌보드라는 미국의 음악 순위를 외우다시피 했고, 그 음악들을 들으려고 새벽 2시까지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DJ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빠짐없이 놓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무리 외국노래들이 좋았어도 나에겐 독보적인 ‘산울림’이 있었다. 어느 나라 어
“불소는 먹으면 안돼요” 목이 아프도록 말했지만 어느새 한 아이가 ‘꿀꺽꿀꺽’ 2008년 5월 30일.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치위생학과(학과장 정원균) 4학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원주시 보건소와 함께 원주의과대학 루가홀에서 원주시의 8개 유치원 어린이(약 170명)를 대상으로 ‘어린이 구강건강 체험행사’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연극관람, 구강검진, 불소체험, 치과체험으로 4개의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연극은 한 학기동안 우리가 직접 연극 배우, 연출, 음향, 무대장식까지 스스로 준비해서 꾸몄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갔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아이들이 더욱 흥미로워 했는데 케로로 중사와 세균맨이 싸우는 장면에서는 아이들의 응원소리가 루가홀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연극이 끝난 후에는 주인공들이 치카치카송을 율동과 함께 하여 잇솔질의 중요성을 더욱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었다. 연극관람이 끝난 후에는 루가홀 앞에서 불소체험(불소용액양치)을 진행하였다. “불소는 먹으면 안돼요! 우글우글 하다가 뱉으라고 말하면 그 때 다 뱉으면 돼요~” 라고 목이 터져라 말했지만 시~작! 하는 순간에 꿀꺽꿀꺽 마셔버린
누군가를 빛이 나게비춰주고 도와주고 어울려서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주말, 모처럼 반찬을 만들려하니 깨소금이 떨어졌다. 비가 오니 사러가기도 귀찮고 여기저기를 뒤져보니 서랍구석에 언젠가 시어머니께서 주신 볶지 않은 날깨(?) 한봉지 발견, 바가지에 넣고 물에 씻어 여러번 헹궈 작은 돌과 먼지, 잡티를 분리해내는 엄청 복잡한 과정을 겪으며 ‘이왕이면 지난번처럼 갈아서 주시지 어째 이런걸 주셔서…’하는 시어머니를 향한 섭섭함과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가 밀려오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끝을 봐야하기에 채에 받혀 물기를 뺀 깨를 커다란 팬에 넣고 볶는데 이거 또한 장난이 아니다. 40분정도는 꼼짝없이 지켜서서 볶아대야 타지 않고 골고루 갈색이 나며 납작한 깨가 톡톡 튀겨지며 탱탱해지고 고소해지는 것이다. 도 닦듯이 40분을 나무주걱으로 볶으며 ‘아~80이 넘은 시어머니는 나를 위해 그동안 이렇게 힘들게 깨를 볶아주셨구나’ 미국 속담에 남의 신발을 신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사정을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 화려하고 멋있어도 그 속에 작은 돌멩이가 들어 발을 아프게 하는지 딱딱해 뒷꿈치를 긁고 있는지 신어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뜻 아닌가? 그냥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공간에서땀을 흘리며 연습한 결과우린 무에서 유를 만들었습니다 에클레시아가 드디어 첫 출산을 했습니다. 우리 치과위생사들이 모여 잉태한 극단 에클레시아가 지난 7월 17일 드디어 초연을 하였습니다.하나의 점으로 시작하여 한 사람, 두 사람 모여 극단이 만들어 지기까지 결코 순탄하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근무를 끝내고 의왕, 수원을 멀다하지 않고 모인 회원들.신혼살림 정리도 못하고 연습을 위해 나온 원 선생. 모두들 열심히 하였습니다.처음에는 스폰서로 동참을 시작하여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지게 된 후배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연습에 연습을 강행, 역시 나이는 못 속이나 봅니다. 불혹을 넘어서니 기억력도 떨어지고 설정된 상황에 적응도 잘 안되니 답답함 어찌합니까. 허나 열정을 이기지는 못하나 봅니다. 또한 전문연극인인 연출자 선생님의 따끔 혹독한 질타가 전혀 문외한인 우리를 무대에 서게 만들어 주심을 십분 인정합니다.같은 직업의 선후배가 모여 출신학교를 떠나 단지 치과위생사라는 공통분모가 이다지도 끈끈하게 우리를 묶어줄 수 있을까요? 아니 같은 목
태안을 다녀올때 마다마음이 한 없이 무겁지만계속 가야한다는 것을 안다 TV나 신문에서 보는 태안의 모습은 그저 먼 나라 얘기 같았다. 기름띠로 시꺼멓게 변한 바다가 안타까웠지만 크게 마음을 움직일 만큼의 동요는 없었다. 하지만 어민들의 피해상황을 보면서, 그들의 울부짖음과 좌절을 보면서 울컥 눈물이 나왔고 가슴이 아팠다. 회사에선 연일 태안 얘기였다. 하지만 연말이고 바쁘다는 핑계로 무수히 이어지는 자원봉사 행렬에 동참하진 못했다. 미안하고 부끄럽단 생각을 뒤로한 채. 그러다 새해를 맞고 시무식을 하면서 또다시 태안이 화두가 되었다.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비록 직접 가진 못하더라도 도울 수 있을만한 일이 없을까 찾던 중 직원 하나가 ‘태안 피해어민 돕기 일일호프’ 제안을 하게 되었고 모두들 흔쾌히 동의하였다. 우린 발 빠르게 일정을 잡고, 장소 섭외와 준비사항을 체크했다. 준비하면서 설레고 들뜬 마음이었다. 또한 보람 있단 생각이 들었다. 1월 19일 드디어 일일호프 날. 아침부터 시장을 보고, 설치물을 점검하고, 안내문을 붙이고, 예행연습을 했다. 5시 오픈과 함께 이너스 치과병원의 함영석 원장님이 일번으로 도착
일출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고친구와 짧게 나마인생의 목표에 대해 논하고 수필소재를 생각하다 친구와의 대학생 때 1박 2일 여행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였는데 다니는 대학교는 달랐고, 그래서인지 1년에 한번 보기 힘든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평상시처럼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친구 생각이 나서 친구에게 안부전화를 했다.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고 푸념도 늘어놓다가, 친구가 입대를 한달 앞두었다는 진짜 푸념을 늘어놓았다. 군대를 가면 2년 이상 못 보게 될 테니 여행을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얼떨결에 의견이 나왔다. 여행지는 지리산. 우리는 인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전라도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 그래도 서로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좀 무리해서 전날 밤 기차를 타기로 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지리산에서도 백무동이라는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백무동에 도착하니 아침 7시 반. 졸린 눈을 떠가며 그렇게 등산이 시작되었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지리산의 가을 계곡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계곡에서 피어오른 시원한 풀내음이 나는 맑은 공기와 푸르게 우거진 나무들. 그 사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온많이 늦은감이 있는 ‘사춘기’난 그걸 이제 앓고 있나 보다 설레이던 첫 출근, 첫 사회생활이 엊그제 인것만 같았는데 어느덧 4년째 치과위생사 일을 하고 있는 나! 처음엔 용기백배 자신감 백배로 시작했던 나. 어느 순간부터 이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가 회의도 느끼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고작 이정도 밖에 못하는 의지가 부족한 아이였던가!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화를 내게 되고 지쳐하고 바보가 되어버린 내 모습을 발견했다.남들이 보면 이제 이정도 힘든거 가지고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 이순간을 극복할 수 있는 그 무언가 그게 무언인진…. 그냥 지루하고 답답하고,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어렵게 결정을 내리고 처음으로 혼자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여행을 선택했다. 그저 막무가내로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떠난 나의 첫 여행길. 그리곤 간단히 짐을 챙겨 나서는 길에 난, 하늘을 바라보았다.노을이 질듯 말듯 붉게 물든 하늘이 구름사이로 보였다.마치 하늘이 날 축복이라도 해주는 듯 숨막힐 듯 너무나도 아름다운 날 이였다.나의 생애 첫 여행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조그만 정성들이 모아져우리사회 한 구석에소중한 빛이 될 수 있기를 지난 6월11일 여수치과의사회가 주관하는 ‘사랑 나누기 희망 찾아주기" 행사가 여수 문예회관에서 약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히 치러졌다. 여기에는 여수시장을 비롯한 각 기관장과 전남치과의사회장, 여수지역 치과의사, 소년소녀가장, 결손가정 아이들 그리고 각 복지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진정으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다. 여수치과의사회에서 준비한 쌀과 물품들을 각 복지관이나 공부방에 전달하고, 이 지역 결손 가정아이들과 치과원장간의 1대1 자매결연을 통해 이들에게 치과치료 및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실천하는 서약식을 가졌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하고 박수치며 따뜻하게 포옹하는 모습에서 모두가 하나됨을 느낄 수 있었고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벅찬 감동을 교감할 수 있었다. 여태껏 봉사하고픈 마음은 있었으나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겨야 할 지를 몰라 망설이는 원장들에게 어려운 이웃 아이들과 자매결연을 맺어줌으로써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의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이 날 행사장에 약 오십여 명의 여수지역 치과원장들과 공부방 아이들이 행사가
소싸움은 우리 민속놀이로박력있는 몸놀림에서민족 고유의 힘찬 모습이… 릴 적 진주소싸움은 진주에서 가장 신나고 큰 잔치이며 고유의 민속놀이였다. 진주의 소싸움은 소싸움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삼국시대 신라가 백제와 싸워 이긴 전승 기념잔치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오고 있어서 무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역사적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었는데 1925년 당시 진양군수였던 일본인 산정정도(山丁正道)가 기록한 문헌 ‘경남진주투우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진주소싸움의 유래를 찾을 수 있었다. 진주 소싸움의 유래는 우승소에 대해 상금을 시상한 것은 1897년이 원조라고 한다는 기록이 현재 유일하다. 지난날 싸움소가 일으키는 먼지가 진주남강 백사장을 뒤엎고 군중들의 함성이 드높아 일제 강점기 때에는 수많은 군중이 백사장을 뒤엎고 시가지를 누비고 다녀 이에 놀란 일본당국은 한민족의 민속놀이인 소싸움을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며 중지시키기도 했다. 일제에 의해 중지당하기도 한 소싸움은 우리 전래의 민속놀이며, 박력있는 황우들의 몸놀림에서 민족고유의 힘찬 모습과 우리의 친숙한 황토색깔의 잠재의식이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서 자리하고 있었다. 1960
상쾌한 기분으로주말저녁을 갈무리 하며다음 주에도 또 산을 찾고 싶다 그 동안 발행했던 어음과 수표의 만기가 4월말이 되자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은 어떻게 버텨냈는데… 그 전까지는 채권자가 믿어주던 변명들도 이제는 통하지 않네요. 더 이상 버티기도 힘들어서, 그리고 신용부도마는 막기 위해서 4월 마지막 주에 급기야 선언했습니다. (아니, 실제로는 꼬리를 내린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래, 이번 주말에는 등산 간다. 자 어디로 가지?” 2008년 새해를 맞이 하면서 결혼 5년차에 접어드는 우리 부부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영어 공부를 하고, 집사람은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우도록 하자고. 그리고 부부가 주말이 되면 등산을 꼭 가자고! 주말 계획에서 우선 순위 1번을 등산에 두자고.하지만 4월 마지막 주가 되기 전까지 모두 16번의 일요일이 지나갔지만 부부 동반 산행은 미기록 상태. 물론 16번의 일요일 중에서 몇 번은 결혼식으로, 또 한두 번은 가족 행사로, 한 두 번은 병원 세미나로 넘어갔죠. 게다가 비가 와주기도 했구요. 하지만 핑계로 넘기기에도 16고개는 험난했습니다. 또 내가 너무 구차해지는 것 같기도 했구요. 그래서 1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행복의 조건으로 세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 첫 번째 할 일이 있고, 두 번째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마지막으로는 희망을 품을 것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행복하다.- 물론 행복의 조건을 들라면 개개인 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불혹을 훌쩍 지나 지천명의 입구에 다다른 나에게 칸트의 행복 조건을 기준으로 생각해 본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치과 안팎으로 저는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능력은 없지만 치과 안에서의 시간 보다 더 즐거움이 있는 자리가 많아서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게 된다. 나의 아내의 말을 빌자면 문턱이 닳도록 밤낮으로 돌아다닌다고 하니 바쁘게 사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나의 가족들은 하루 생활의 2/3이상이 밖에서 이루어지는 가장의 역할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것 같지만 남을 위해 시간을 쪼개어 활동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해주고 있다. 그래서 마음 놓고 이런저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스트레스도 많이 쌓이지만 따분하기도 한 것 같다. 반경 5~6센티 정도 되는 구멍 안을 들여다보면서 이것저것 시술한다는 것부터 시야를 좁게 만들고 몸의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