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난 내 어린왕자에게장미꽃 한 송이를선물할 준비를 한다 청명한 하늘에 차가운 바람이 부는 늦가을이다.마른기침을 하며 게으른 출근길을 나서는 나에게 함박웃음을 주는 친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늦은 가을 피는 붉은 장미 세 송이.작년 이맘때 우연히 이 길을 지나다 마주치게 되었는데, 화려했던 모든 꽃들이 지고 난 자리에 홀연히 피어난 그 꽃송이가 너무나 신기해 그곳을 지날 때마다 눈여겨 보았었다. 그런데 누가 이런 내 즐거움을 시샘이라도 하듯 탐스런 그 꽃송이를 싹둑 잘라내 버린 것이다. 어떤 연인의 장난기 어린 로맨티즘이 이 장미를 꺾어 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너무나 도도하게 뻗쳐올라 피어있던 꽃송이였는지라 내게 그 잘려나간 자리가 너무 초라해 보였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냥 잊혀져 버린 장미가 올해 또다시 그 자리에 피어난 것이다.잘려나간 자신의 아픔은 잊은 채 그 도도함을 다시금 과시하며 세 송이의 장미가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었다.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하듯 유난히 줄기를 인도로 뻗쳐낸 한줄기의 장미를 본 순간 어린시절 읽었던 어린왕자가 떠올랐다. 바람을 막아 달라, 찬바람이 부는 밤이면 유리관을 씌워 달라며, 허영심을
마냥 예쁘기만한 손자가슴 아픈 치매 어머니나에겐 아기 둘이 생겼다 요즘 나에게 아기 둘이 생겼다.얼마 전 미국에 사시던 어머님이 치매가 생겨 더 이상 미국에서 모시기 힘들다 하여 한국의 요양원에 모신다고, 형님이 어머님을 모시고 한국으로 왔다.요즘 좋은 노인 요양원이나 실버타운이 많이 있지만 어머님의 상태가 고혈압, 치매, 골다공증 등 노인성 질환이 있지만 아직 건강한 편이라 마침 치매 노인을 모신 경험이 있는 입주 간병인을 구해 집 근처 작은 아파트에 모셨다. 다행이 경험 많은 간병인이 극진히 보살펴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인데, 치매가 오니 점점 아기가 되어간다. 기억이 사라지고 금방 식사를 하고도 계속 밥을 먹자하며 무엇이든지 먹으려고 입으로 가져가 화장품도 모두 치웠다. 가끔 대변을 잘 못가려 기저귀를 차야하는데 기저귀는 안차시려고 한다. 그래도 우리 집 근처라 내가 출근길에 매일 방문하여 돌아가시기 전에 좀 더 자주 얼굴을 볼 수가 있어 나로서는 무척 다행이다.아침에 들르면 어머님이 기도를 하는데, 다행이 오랜 신앙생활 덕분인지 기도는 잘하시는데, 기도 후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중간에 잃어버려 다시 기도로 돌아가며 계속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면 내가
독실한 신앙의 힘으로모든 환경을 이기고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충청북도 괴산군 속리산의 남쪽 끝자락.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첩첩산골, 휴대폰도 무용지물(통화권이탈)인 산동네, 몇 가구 되지 않는 그곳에 한 손에 꼽는 사랑하는 친구가 살고 있다. 평소보다 일찍 근무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친구 집을 향해 떠났다. 단풍관광 시즌에 주말까지 겹쳐 교통 정체가 심했지만 청명한 가을 하늘과 울긋불긋 가을 산의 정취에 취해 지루함을 몰랐다. 초행길이지만 네비게이션 덕택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큰 길까지는 쉽게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가 사는 곳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곳이라서 큰 길 입구까지 마중 나온 친구 아내의 뒤를 따라 비포장 길을 한참을 달렸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린 산길은 주위가 칠흑처럼 어두웠고 한참을 가도 숲 길 뿐일 것만 같던 그 곳에 마을이라고 부르기엔 몇 채 안 되는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적막하다 못해 외로워 보였다. 고요함과 대조적으로 친구의 집은 유달리 밝았다. 나를 환영해 주는 듯 했다. 휠체어에 누운 채로 맞이하는 친구의 모습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어 누워 지낸지가 벌써 14년째 이다. 지치
어딜가나 질서정연한기다림의 문화를우리도 배워야 한다 <1597호에 이어 계속>japan tateyama Kurobe Alpine Route 다테야마(立山)역에서 나가노현의 오오기사와까지의 대자연의 여정을 버스, 케이블카, 로프웨이, 도보 등으로 지상과 터널로 갈아타고 이동했던 길이는 약 90km의 산악루트였다. 1972년 댐과 발전소 공사용 기자재 수송로 완공과 함께 이 코스도 완전히 개통된 지역으로 유럽의 알프스와 같다고 해 일본의 알프스라고 불리우고 있다. 다테야마는 3015m의 높은 곳이다. 올라가는 도중 폭포도 보인다. 다테야마 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7분정도 가서 버스를 타고 오르막의 꼬불꼬불한 고원길을 달리면 약 50분 걸려 무로도(2450m)에 도착한다. 넓은 평야 같은데 바로 옆에 입산의 정상이 보인다. 이 무로도에서 호수(2개), 단풍, 샘물, 계곡, 광장, 호텔, 자연보호센터, Snow wall(겨울을 볼 수 있음) 등을 관광했다. 이곳 용수를 먹으면 10년 더 산다고 한다. 높은 지대여서 처음에는 가슴이 답답하다가 곧 없어진다. 동식물도 많이 있다. 사람은 인산인해다. 나무의 키는 작다. 돌풀, 작은 야생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서
역사와 전통문화가 있는 휴식의 숲속 ‘유노쿠니노모리’꼭 한번 다시 가고 싶다 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최고경제2기 동창회(회장 최광철) 멤버는 지난 1993년 야간에 만나 공부한 친구들이다. 직업도 다양하다. 우리는 일년에 3~4회 국내 및 해외여행을 다니곤 한다. 일본은 2003년 8월에 규슈지방 벳부 등을, 2005년 8월에 오사카, 교토, 나라, 고베 등의 지역을 다녀온 바 있다. 최근에는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고마츠, Japan Tateyama Kurobe Alpine Route(총길이 약 90km) 전 코스와 Kurobe Gorge(협곡) Shiragawago의 합장(合掌)마을 등을 다녀왔다. 우리는 국내여행도 17회나 1박 2일 코스에 부부동반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지난 6년간 회장을 맡으면서 여행위주로 회를 운영해 왔다. 이번에도 부부동반 40명이 다녀왔다. 10월 12일 인천서 이륙한 KAL 비행기가 약 1시간 40분만에 고마츠공항에 도착했다. 고마츠는 일본 혼슈의(동경이 오른쪽 옆구리쪽이라면) 왼쪽 옆구리 쪽에 해당된다고 본다. 즉 니히가다 밑에 있다. 니히가다는 북한 선박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의
엄마는 교육시킨다고 이야기하고아이는 엄마 말 듣지도 않고모르겠네, 훌륭한 교육이 뭔지 가족끼리 아주 화기애애하게 저녁이나 먹자고 해서 오리고기 파는 집에서 밥을 먹게 됐는데, 아주 친한 친구 사이 아니면서 가족까지 같이 만날 기회가 생기면 여자분들 질투, 시기 장난 아니더구먼요. 왜 상대방을 만났으면 얼굴을 보고 인사하면 되지 여자들은 상대방을 위 아래 부터 짜~악 훑어보는지 모르겠어요.남자들 목욕탕에서 만나면 손잡고 악수하면서 얼굴만 보면 되지, 가운데를 왜 쳐다보는지 그와 같은 심리상태인지도 모르죠. 그 아줌마 옷이 어쩌구 저쩌구, 핸드백이 어쩌구 저쩌구, 신발이 어쩌구 저쩌구….이 즈음엔 대꾸가 없어지고, 그냥 앞만 보며 운전만 하고 있는 내 모습 보고 한마디 하지요. “관심 없군!"하고….우리는 큰 애가 대학교 3학년, 막내가 이번에 대학 들어가 기말고사를 앞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하더구먼요. 늦게 난 아들을 둔 한 엄마는 자리에 앉자마자 아들에게 공부를 시키더구먼요. 오리처럼 다리가 둘이고 날개달린 짐승을 조류라고 한단다. 오리는 알로 태어나 물가에서 헤엄치며 살며 등등….문제는 애가 엄마 말 하나도 듣지 않고, 관심도 없는데 엄마는
나를 묶고 있는 것은바깥의 무엇이 아니고바로 내 자신이다 한라산 3월 1일 적상산을 오르다 한라산이 화제가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세 부부가 모이게 되었다.샤인빌에 객실 3개를 예약하고 항공권을 구하고, 렌트카를 예약하는 등등 번거로운 일들을 재붕이가 수고를 아끼지 않은 덕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돼가는데, 일정을 짜다보니 한라산의 주 등산로 4곳을 다 걸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첫날 영실에서 윗세오름을 거쳐 어리목으로 하산하는 코스와 이틀째는 성판악에서 백록담을 오른후 관음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구상해 보고 상의를 한다. 재붕이는 입맛에 딱 맞는다고 좋아하는데, 마나님과 성찬이네 부부는 좀 걱정스런 눈치다. 예행 연습 삼아 3월 18일에는 세 부부가 갑사쪽으로 향한다. 갑사-연천봉-문필봉-관음봉-자연석릉-삼불봉-금잔디고개-갑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걸어보고 3월 25일에는 상신리-금잔디고개-삼불봉-남매탑-상신리코스로 훈련을 떠난다. 4월 1일은 박정자-장군봉-큰배재-천장이골-동학사주차장 코스를 다녀오는 것으로 준비는 끝났다. 4월 7일 마지막으로 준비물을 점검하고, 6시 30분에 설레는 마음으로 시동을 건다. 청주 공항에 7시 40
1만원에 느낄수 있는 행복감이2만원을 가졌다고결코 두 배가 되지 않는다 사막을 헤메던 거지에게 요정이 나타났다. 가진 것도 없고 굶주린 거지를 위해 요정은 그의 빈 자루에 금은 보화를 채워주기 시작했다. 자루가 다 찬 후에도 요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거지는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쳤다. 무게를 못 이기고 자루가 터지자 금은 보화는 모두 먼지로 변하였다. 어릴 때 읽었던 우화인데, 그 때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도 이 거지의 어리석음을 얼마나 탓하였는지 모른다. 애초에 자신이 가진 것이 없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어느 순간에 ‘그만"을 외치고 이미 가득한 금덩어리만을 가지고도 여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탐욕이란 어찌하여 끝이 없는 것일까 라면서. 그러나 지금 시점에 이 이야기를 접하고서는 나 자신이 과연 이 거지처럼 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가진 사람이 더 가지려 하고 또 더 가지려 노력하지 않는 것을 죄악시하는 사회가 아니던가. 발전이니 개혁이니 하는 이름으로 치장된 인간의 모든 활동들은 근본적으로 더 나아지려 하고 남들보다 앞서가려 하는 몸부림이다. 나아가서 좋은 집, 좋은 옷을 차지하
어린 시절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렸던 나일주일에 한 번 손주를 기다리는 어머니"사랑"이 있기에 소중한 기다림 퇴근길,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 앉아 있는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자매가 눈에 들어왔다. 단지 입구 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언니와 동생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엄마(기다리는 사람이 왠지 엄마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를 기다리는 모습이 예뻐 보이면서도 왠지 모를 애잔한 느낌이 든다.벤치에 앉아있는 자매를 뒤로한 채 걸어가면서 문득 30년 가까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른다.어머니가 초등학교 교사셨기 때문에 나와 동생들은 낮 시간을 항상 또래랑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오는 저녁시간,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나와 동생들은 항상 동네 입구가 잘 보이는 집 앞 공터로 나가 동네 입구로 들어서는 엄마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기다림은 매일 반복되는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을 텐데 당시는 매일매일이 무척이나 간절했었던 기억으로 떠오른다. 간혹 평소와 다르게 오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에는 마치 큰일이라도 생긴 듯이 가슴은 방망이질치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다림의
환자만을 위해진료 자체만을 위해고민할 수 있는 시대는 언제 올까 선배님, 뵌 지가 너무 오래군요. 이렇게 한 자 적어올리면 그간 문안인사 못 올린 죄값도 반쯤 치르고, 또 한편으로는 요즈음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여 치밀어 오르는 탄식과 울분이 조금이라도 달래질까 하는 마음에서 글을 올립니다. 선배님이 사회에 나오신 직후의 시절에 대해 하셨던 회고 말씀이 기억납니다. 버스로 다섯 구역 안에 치과가 한 군데 있었던 시절, 환자가 너무 많아 힘은 들었지만 병원 경영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이 없었고, 그러면서도 환자들로부터는 존경과 신망을 받았던 시절 말입니다.참, 선배님은 복 받은 분이십니다. 아니 시대운이 좋다고 말씀드리지요. 그런데 요즈음 우리 치과계를 다시 한번 돌아봐 주십시오. 극도의 상업주의가 횡행하고 국가로부터는 탈세를 일삼는 대표적인 직종으로 지목된 가운데, 국민의 평판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경지로 떨어졌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경쟁하면서 사회를 번갈아 이끌듯이, 치과의 양대 치료철학이라 할 수 있는 ‘보존(conservative)’ 과 ‘재건(reconstructive)"의 균형은 찾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더 불행한 것은 치과
차를 같이 타고 출퇴근하는 카풀다른 영역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충북 영동이다.영동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은 국토의 중심에 위치하고 ‘난계’ 박연 선생의 고향이며 감과 포도가 많이 생산되는 고장이라는 것이다.나는 이곳에서 13여년을 생활하다가 대전으로 2004년에 이사를 했다. 자식교육을 위해서라지만 출퇴근이 걱정이었다. 왕복 2시간 이상 차를 몰아야만 하는 거리였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동에서 병원을 개원하고 있는 두 분의 일반의 원장님과 카풀을 시작하게 되었다.더욱이 새벽운동을 꾸준히 해온 나는 두 원장님께 출근 전 운동할 것을 제의했고, 처음 시작한 운동은 골프였다. 대전과 영동 사이에 옥천은 ‘향수’라는 시로 유명한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 위치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여기 골프연습장을 다녔다.그리고 두 번째 한 운동은 수영이었다. 수영은 지금까지 3년째 계속하고 있다. 두 원장님들은 이전에 수영을 했었지만 나는 처음해 보는 종목이어서 무척 힘이 들었으나,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초급, 중급, 숙달 교정반을 거쳐서 지금은 두 분 원장님들과 같이 어느덧 연수반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수영의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무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