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벽’이 인종과 관련공적 매체에 기록이 되면 저항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나는 아침 저녁으로 오랜 시간동안 차를 몰고 출퇴근을 한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이제는 영종도에서 서초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빌딩까지 운전을 한다. 지난 2월 16일에 심평원 상근심사위원 선발 합격통지를 받고 선배의 여의도 치과에서 퇴근을 해 영종대교로 차를 몰면서 일련의 지나간 일들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6, 7년 전에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 청구자료(claims data)를 가지고 씨름했던 기억이며, 나의 논문을 위해 온 노력을 바친 지도교수 골드파브의 일, 2001년 9·11 테러 직후에 있었던 나의 논문발표, 그리고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로 유대인 비하논란에 빠졌던 덕성여대 이원복 교수가 어제 미국의 유대인 단체에게 사과한 일로 글을 써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Are you sure?" 차에서 내려 짐을 챙기던 골드파브 교수가 내게 물었다. 큰 체구를 가진 여자 지도교수님이 차 트렁크에 실어온 책을 카트에 실어서 교수 사무실로 움직이려고 하는데, 우르르 하고 책
이렇게 변해버린것은세월 탓도 누구 탓도 아닌바로 내 탓이라는 것을… 우 희 선·수원여자대학 치위생과 전임교수 초심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처음에 먹은 마음”이라고 돼 있다.나는 타성에 빠질 때면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을 한다.부산에 계시는 신부님이 지은 시 ‘맛’ 한편을 써 내려 가본다. 맛 밥은 밥맛을 내고물은 물맛을 내고 혀끝에 감기는 순간꿀맛도 되고 소태 씹은 맛이되기도 한다 어제는 살맛나던 것이오늘은 죽을 맛인 것은 세상 탓이 아니다어제와 달라진 혀끝 때문은 아닐까 치위생과 학생시절에 막연하게 10년은 임상경험을 채우리라 마음먹었는데, 어느덧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와 버렸다.임상에서 일하는 10년동안 울고 웃고 참 많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느껴진다.추억으로 내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돌아보면 뒤도, 옆도 보지 않고 바로 코앞의 점을 중심으로 계속 달려온 듯 하다.내가 달리면 달릴수록 그 점은 나를 약올리듯이 또 저만치 달려가 있곤 했다.예전 학생시절의 나는 치면세마실습시간에 처음으로 scaler를 잡던 날
추운 날씨에 왜 뛰느냐며수도없이 자신에 물었습니다이제 그 질문에 대답할 시간입니다 이제 사흘이 남습니다. 2만명이 넘는 마라토너들이 참석하는 국제대회, 광화문에서 출발해 잠실운동장까지 서울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멋진 코스를 가진 대회, 바로 동아마라톤입니다. 작년 12월부터 세달 반을 이 대회를 위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훈련을 했습니다. 목동운동장을 가르던 매운 바람,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숨이 턱에 닿도록 달리곤 했습니다.달리는 것만큼 사람을 치열하게 하는 게 또 있을까요? 느슨했던 삶속에 튕기면 소리가 날듯한 팽팽한 긴장의 끈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매일 새벽의 어둠속에서 운동화 끈을 조일 때마다 다졌던 각오, 오른쪽 무릎이 좋지 않아 저녁마다 아이싱을 하고 있으면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아내, 지천명에 다다른 나이에 새삼스럽게 마라톤 클럽에 가입해 쫓아가기 위해 저녁엔 헬스클럽에서 따로 근력훈련까지를 하던 오기, 목표로 했던 1000km를 달렸고 이젠 시합이 다가옵니다.왠지 초조해지는 마음을 추스려봅니다. 수도 없이 내 자신에게 물었던, 그 추운 날씨에 새벽에 잠도 못자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아내며 왜 뛰느냐 하는 질문, 그 질문에 대답할
자기 자랑만하는 사람은참과 거짓을 구별할 줄 모르며사물이나 사람의 가치를 볼 줄 모른다 원래 눈이라는 것은 세상 만물과 그 만물들이 이루는 어떤 현상이나 동작을 바라보기 위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아주 하등동물이 아닌 다음에야 대개 눈이 두개가 있는데 이는 좀더 정확한 각도에서 거리감까지 살펴 보면서 먹이를 찾는데 유용하게 써먹기 위해 생겨났거나 진화되어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눈을 뜨면 보이고 눈을 감으면 안보이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잘 알수 있는 뻔한 사실이지만 필자가 말 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뜻의 눈이 아니라 사물(事物)을 바로 보고, 바로 느끼고, 바로 판단하고, 바로 인정하는 그런 종류의 눈을 뜨자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들의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느낀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머리도 희어지고 주름살도 하나 둘씩 늘어감에 따라 눈도 점점 침침해 지고 어두워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데 여기에 비례해서 사물을 바로 보고 평가할줄 아는 눈도 나이를 따라서 점점 어두워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나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경험이나 안목이나 경륜이 붙어서 가치관을 바라보는 눈이 좀더 밝아져야 할텐
해 저무는 그랜드캐년의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에 넋을 잃고 구경을 하고…3년전 경비행기를 타고 그랜드캐년 인디언마을을 구경한뒤에 이건 그랜드캐년의 본질이 아니다 싶어서 “내 언젠간 다시 오리라”하고 결심을 했더랬습니다. 한 10년뒤나 가능할 줄로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기회는 3년뒤에 오더군요. 먼저 그랜드캐년의 협곡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콜로라도강 뗏목여행은 1년전에 신청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협곡을 도보로 걸어 들어가서 캠핑을 하려면 4달전에 신청을 해야 합니다. 걸어가기 싫으면 뮬(당나귀와 말의 잡종, 뱀이나 야생동물을 겁을 내지 않아서 협곡여행에 적합하다고 함)을 타고 들어가면 되는데 그것도 3일전에 예약을 해야 합니다. 거의 한나절 걸려 L.A에 도착해서 친구집에 여장을 풀고 바로 그랜드캐년으로 출발, 8시간을 달렸지만아직도 그랜드캐년은 보이질 않았습니다. 꼬박 이틀을 비행기와 차속에서 보내게 되자 “이거 내가 너무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나중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지요. 다음날 아침 다시 3시간을 달려서 그랜드캐년국립공원에 도착해, 비짓센터에 들러보니 폴뉴먼 닮은 친절한 아저씨가 인
기증한 물건을 팔며수익금으로 이웃을 도와여러사람이 행복해졌다 지난 1월 20일 대한여자치과의사회에서 국제이주여성을 돕기 위해 일일 아름다운 가게를 열었다.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나니 우리가 가장 먼저 할일은 아름다운 가게에서 팔 물건을 기증하는 일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집안에 자리만 차지하고 안 쓰는 물건들도 참 많다. 물론 그 물건들을 쌓아 놓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새것이라 버리기 아까워서, 언젠가는 쓸지도 모르니까, 필요한 사람 있으면 주려고 등등… 그렇게 수년째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물건들을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내놓는 일은 서로 기쁜 일이다. 그래, 이참에 나도 집 정리를 좀 해보자… 굳게 결심하고 장롱을 열어보니 존재 자체도 잊어버린 가방, 옷, 악세서리 등이 나온다. 그렇다고 내가 물건을 많이 사들인 것도 아닌데 워낙 버리는 것을 못하다보니 그동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거다.하루 저녁 박스를 구해다가 그래도 쓸만한 물건들을 정리하니 금새 두 박스가 찼다. 마음 같아서는 다섯 박스도 채우고 싶었지만 무료택배로 보내야 하니 치과로 박스를 가져가야 할 상황이라 두 박스에 최대한 눌러 담았다. 물건들을 보내고 서여치
첫 출근때 마음 그대로환자에 설명하는 습관을이제부터라도 생활화해야새벽 6시 30분 평소보다 일찍 눈뜬 나는 달콤한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오늘은 나의 첫 출근이기 때문이다.평소에 하지 않던 화장을 한 뺨 한 뺨 곱게 찍어 바르고 아침도 거른 채 높은 구두를 신고 어설픈 걸음걸이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하늘도 나의 첫 출근을 축하하는지 바람도 살랑 살랑 기분좋게 불었다. 아르바이트가 아닌 진짜 내가 면접봐서 당당하게 들어가는 곳이라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뭔가를 해냈다는 맘이 불끈 솟아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맘을 담고 병원으로 갔다. 난 “오늘 잘해야지" 하는 결의에 찬 모습으로 첫 진료에 들어갔다. 아직 잘 몰라 이것저것 배우며 재료들과 기구들을 익혔다. 그리고 선배의 말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수첩에 받아 적었고 과장님이 환자분에게 하시는 말씀도 생각나는 대로 적어서 메모했다. 그날 점심시간 병원 식구들과 병원의 시스템과 과장님의 진료 스타일 등을 말해주었고 나의 포지션을 알려주었다.점심식사를 마친 후 오후 진료에 들어갔다. 오후, 나의 위치는 환자를 호명하고 자리에 앉히고 석션을 잡는 것이었다. 처음 한
해마다 새로운 일에 부딪히고손해도 보고 힘도 들었지만공보의 3년은 소중한 경험 ‘낮은데로 임하게 하소서’… 2004년 훈련소 입소하면서 공보의하면 떠오르는 시골의 보건지소에서 어르신들을 진료하는 나를 상상하면서 머릿속으로 읊조리던 말이다. 하지만 나의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통상의 공보의 생활과는 약간 다른 생활을 했는데, 이유가 그 말 때문은 아닌가 하면서 가끔 미소짓고는 한다. 훈련소 퇴소 후 배치 직무교육을 받으며, 근 10여년 만에 처음 배치되는 교정시설에 다른 15명의 선생님들과 함게 가게 되었다. 학교에서 교정과를 수료했던 내가 한자도 같은 교정시설에 근무하게 됐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였다. 당시 일시적으로 공보의 수요 및 공급추계가 잘못돼 갑자기 배치된 결과 그동안의 관리소홀로 심지어는 미러와 핀셋조차 없는 곳도 많았다. 내가 배치된 소년수 2범 이상이 수용되었던 김천소년교도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으나 수용자들의 나이와 불우한 가정환경을 고려할 때 도리어 나에게는 마음을 잡는 기회라 생각을 해, 레진기구 등을 세팅하고 진료에 임했다. 특히나 의무과 직원들과 당시 김영수 소장님은 지금도 진하게 인상에 남아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다른
피해자들의 인권이 존중되고그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들릴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하며… 월요일 오전 오늘은 그가 오는 날입니다. 그를 맞는 날은 그 전날부터 밤잠을 설쳐 항상 양쪽 눈이 짝짝이입니다. 젊은 의사는 긴장하면 평소보다 더 많이 웃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릴 때는 그나마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진료실 바깥의 하얀 벽에는 벌써 회색 공기가 가득한 듯 합니다. 젊은 의사의 큰 한숨과 함께 139번 그가 진료실에 들어옵니다. 이제부턴 전쟁입니다. 2006년 12월 텔레비전에서는 모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재소자의 치과진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행정체계를 탓하기도 하고, 치과치료를 담당하는 공중보건치과의사와 관련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작은 뉴스에 자꾸 저의 두 눈은 국회의원의 열띤 발언에 두 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2005년 4월 저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공중보건치과의사로서의 첫 번째 임지는 파란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이 있는 교정시설, 보통의 우리들이 말하는 ‘교도소"라는 곳이었습니다. 수 많은 철문을 지나, 아니 사실은 그 철문들을 어떻게 지나왔는지도
때론 나의 추한 모습과다른 사람의 거북스런 행동에서더 큰 용서와 사랑을 깨달아 며칠 밤을 자정을 넘겨가며 무엇을 쓸까 고민했지만 이런 저런 상념들만 떠오를 뿐 정작 원고의 주제조차 정하지 못 했다. 마감일이 코 앞으로 닥쳐 컴퓨터 앞에 앉아 일단 자판을 두드려 보기로 한다. 원고를 부탁 받던 그 무렵 마침 무언가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픈 깨달음이라고 할까 내 삶의 변곡점에서 외치고 싶은 소리가 있었을 때라 흔쾌히 수락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역시 글을 쓴다는 것은 특별한 글재주가 없는 나에게는 미루고 싶은 숙제였다. 그렇게 흘러 보낸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그나마 여느 때보단 더 많이 내 삶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내 삶을 지배해온 것 들의 상당한 부분이 주변의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되는 것들 임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내가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초라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그 당시 여러 사람에게 나눠 주고팠던 깨달음은 그냥 조그마한 체험담으로 나눠지길 바랄 뿐이다.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부족함도 없이 살아온 나는 나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분류해 놓고 있었다. 그런 나를 새롭게 들여다 보게 되고 그로 인해 며칠을 괴로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