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극심한 양극화는계층내 양극화를 초래하며이는 의료계도 시작됐다는 것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에게는 세계가 인정하는 두 가지의 신화가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개발의 신화가 그 하나요, ‘민주화’라는 한국 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이라는 신화가 그 하나다. 경제와 정치라는 상이한 영역에서 이루어진 성과로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경제성장으로 형성되고 또한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중산층의 형성과 발전, 그들의 사회적 욕구, 가치지향성, 삶의 지향성 등등 총체적으로는 그들의 의식과 문화가 이러한 두 가지의 신화를 이루어 내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사회는 그러한 신화의 영광은 희미하게 기억되고 새로이 많은 어려움에 노출되면서 불안과 갈등만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한 사회현상의 대표적인 것이 우리사회의 ‘양극화현상’ 이다. 양극화란 말 그대로 양쪽의 극단만이 존재하고 가운데의 영역, 중첩과 완충의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이는 우리사회의 발전의 동력이었던 중산층이 와해돼가고 있거나 그 사회적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산층의 몰락은 IMF 이후 경제위기에 따른 부
나이가 든다는 것은삶의 여유가 생긴다는 것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이 좋다 치과대학을 갓 졸업한 당시에는 모든 것이 어설펐다. 학부에서 배운 지식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임상경험도 원내생과 무의촌 진료뿐이어서 환자를 볼 때면 진땀이 나곤 했다. 교수님과 선배의 지도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도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당시의 내 용모가 갸날퍼서 환자로부터 “선생님, 그 팔 힘으로 이를 뺄 수 있습니까?”하는 걱정을 듣곤 했다. 임상경험도 절실했지만, 우선 빨리 어린 티를 벗어버리고 싶었다. 하얀 까운이 어울리게 노숙해 보이고자 안경도 중후한 것을 쓰고, 옷도 정장을 입었다. 나의 20대는 그렇게 나이가 빨리 들어 보이고 싶어 궁리하며 보냈다. 30대에는 치과의사가 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힘들어 하기도 했고 임상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그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금요일 일과 후 밤 12시경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아직 캄캄한 새벽 5시 30분경이고 지하철로 교대역에 도착해도 어둑어둑했다. 인근에 있는 공중목욕탕에서 잠시 쉰 다음 세미나를 들었다. 그 당시 존경하는 고석훈 선생님께서 개설한 강좌로, 오전 8시에서 오후 6시까지 강의
작년에도 했던 심사지만올핸 어떤 미인들이 모였을까큰 기대속 평가가 시작되고… “길형 이번에 예쁜 사람들 많이 왔나요?”“저는 작년보다 훨씬 낫네요. 작년에는 길가다 들어온 사람들이었던 것 같았죠.”“난 작년에 왔던 사람이 또 왔더라.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바뀌어 왔어요. 임프란트도 하고 눈, 코, 다 손댄 것 같아요.”“수술해서 예뻐지기만 하면 되죠. 뭐 수술한다고 다 예뻐지나요. 원판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잖아요.” 대전에서 미스코리아대회에 신청을 하면 후보들은 대전충남교정학회 이사 중 심사를 지원한 치과에 배정받아 두부계측방사선사진과 전신사진, 정면 및 45도 90도 좌우얼굴사진 및 구강사진을 찍고 예선에 참가한다. 이 자료들을 채득한 치과원장들이 모여서 구강악안면 평가를 하여 본선자료로 이용한다. 작년에도 했던 심사였지만 올해에는 어떤 미인들이 모였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우리 병원에 온 후보들도 작년보다는 예뻤으니까 아무래도 전반적인 수준이 좋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평가에 참여하는 5명의 원장들이 다 모였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우리 교정학회 이사들의 이런 노력이 본선에서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
잘못에 대해선꿇어야 할 용기가 필요하고진실에 대해선 타협하지 말아야 치과대학장 임기를 끝냈다. 그것도 중임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개인적으로는 보직에 대한 행운이라 할 수 있으며, 재임 중 도와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한다. 어떤 이는 “시원섭섭 하지요”라고 인사치례를 하는 분도 있었으나 시원은 한데 섭섭하진 않다. 오히려 그들에겐 “학장실 푯말을 잘못 보고 화장실인줄 알고 찾아 들어오는 치과병원 환자들로부터 해방되어 기쁘다”라고 농담도 해 준다.보직과 권력에 맛 들면 인생이 참으로 불행해 짐을 우리는 과거 10여년, 또는 18년을 했던 대통령들의 비참한 최후의 역사에서도 잘 알고 있지 아니한가. 그래서 모든조직에는 제도적으로 적절한 임기를 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임기를 잘 마친 것도 축복인지라 감사하는 마음이다.재임 중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었음 소개해 달란다. 치과대학은 역시 치과대학생의 교육이 우선이고 이들을 지역과 국가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양질의 치과의사로서 양성하는게 그 첫번째 목표이기도 하다.그런데 수백명이 수년간의 학생으로서 함께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사고가 안 생길 수가 없다. 그중 다소 잦은 사고가 바로 학생들 간의
지금의 30대 치과의사들은어떤 모습의 은퇴를 준비할까선후배와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 2006년 7월 28일. 아버님(박재석 원장·응암동 박치과의원 서울대 16회 졸업)께서 개원치과의사로서 마지막 진료에 임하신다. 아버님의 은퇴를 아들이자 후배치과의사로서 지켜보면서 수많은 생각에 잠긴다. 지금 나와 같은 30대의 치과의사들은 어떤 모습의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가? 또 아버님 세대의 치과의사들과는 어떤 점이 다른가? 지금 나는 치과의사로서의 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첫 번째의 느낌은 개원의는 외롭다는 것이다. 대학병원에도 근무를 해보았고 종합병원에도 근무해본 경험과 비교해볼 때 개원의는 외롭다. 또 구회에서 개원의로 활동을 하며 선배님들을 바라볼 때 개원의의 은퇴 역시 외로워 보였다. 개원치과의사의 은퇴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언젠가는 개원의로서 은퇴를 맞이할 많은 선후배 치과의사 분들께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두 번째는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는가 이다. 우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선배 치과의사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 드리고 싶다. 그 분들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후배 치과의사들을 위한 터전을 마련해주셨건 혹은
춤이라는 작은 파랑새를 통해자기 속에서 충만을 찾고스스로 살아갈 맛과 힘을 찾아 언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1 김윤식 교수가 예전 동숭동 캠퍼스에 있을 때, 그 때는 당연히 김현(1942~1990) 선생도 살아 계셨고 밤늦도록 강의 준비와 평론에 몰두할 즈음이다. 휘적휘적 시인 고은 씨가 나타난 거다. 이봐, 윤식이 뭐 하노… 뭐하긴 ‘밥벌이’ 한다. 이놈아, 너는 밥벌이 하느라 당연히 힘들지만 나는 밥벌이 하려고 시를 쓰는 것도 아닌데 와이리 힘드나… 아이고, 이놈아 당연히 힘들지… 다 인간으로서 ‘통속’ 속에 살면 다 힘든 거다… 이리 와라. 소주나 한 잔하자. 그러면서 군용 철제 락커를 삐거덕거리면서 열고 마구 쌓여져 있는 식자체 누런 소설책과 원고 더미 속에서 소주를 꺼낸다… 그리고 군용 커피 잔에 나누어 마신다… 친구여, 내가 요즘 자주 말하는 통속(通俗)2의 의미가 바로 여기 있다. 예의, 배려, 대의명분, 애국심마저 점점 사라져가는 2006년 대한민국에서 현재 환자를 보는 모든 행위도 다 통속의 일부로 전락(轉落)하였다. 진료 자체는 정말 숭고하고 우리의 본분이지만 친구여, 전문 지식보다 인터넷이 강자성 지배 행위를 하는 현재, 우리의 본업
자신이 변한다는 것이과거에는 불만족스러웠지만이젠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할 때 7월 3일자 조선일보 경제면 ‘나는야, 어린이 CEO’ 행사 (조선일보, 소년조선일보, 대한상공회의소 주최)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치과의사이자 CEO인 저에게 기사의 내용은 잠시 정신적 혼돈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날 기사의 주제는 고객을 끌기위한 ‘인센티브’란 주제로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80여명이 문구점 등 10개 회사를 차렸으며, 여러 방법으로 인센티브를 시행한 결과, 예상보다 인센티브라는 제도는 아주 좋은 결과를 냈다는 기사 내용이었습니다.국화반 담임 윤성아(여·33) 교사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번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에게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30여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교육이 현재 진행중이며, 실제로 신문지상에 자랑스럽게 기사화되는 것을 보며 시대의 변화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제가 치과대학 교육을 받으면서 생리학, 치과 재료학, 형태학, 보철, 치주학 등을 교육받았지만 경제논리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초등학교 교육은 경제적 논리에 의해 자본주의 강의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
즐거움보다 어려움이 많지만그래도 2년 남은 임기동안멋진 ‘나의 흔적’을 남겨보련다 내 나이 마흔 한 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항상 주변인이었다. 초등학교 때를 제외하고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의견의 중심에 나선 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성적이고 주위에 친구가 없는 외톨이 또한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인생은 즐겨야 한다는 게 나의 신조이다. 하지만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치과의사를 거치며, 점점 나이가 들어 갈수록 내가 몸담은 단체 속에서 국외자로 한쪽 곁에서 바라보는 것을 즐기기만 하였다.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내 자신이 평가가 되는 게 싫고 또한 아쉬운 소리도 하기 싫은 전형적인 소심한 A형 혈액형인 성격 탓인 것 같다. 그런 내가 느닷없이 대전시 치과의사회 임원에 참여하게 되었다. 재작년 쯤 회비 납부 문제로 가지고 있던 불만을 동문회 회식 자리에서 시회의 회무처리에 대하여 싫은 소리를 하였는데 그 이야기가 신임 회장님 귀에 들어갔는지 그런 불만을 시회에 들어와서 해결해보지 않겠냐는 거였다. 당연히 그런 능력과 의욕이 없는 나는 완곡히 거절하였지만 강권 반(회장님), 협
소리보다 표정이 더 아름다운그들의 연주에 내리는 비에도대강당을 감동으로 가득 채워 뜨거운 월드컵 열기가 지구촌을 달구고 있는 6월 대한민국이 조별 리그전에서 토고를 물리치고 원정경기 사상 첫 승을 거둔 바로 다음날 6월14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명사와 장애인이 함께하는 사랑의 음악회가 열렸다. 사랑의 음악회는 음악을 통해서 장애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비장애인에게는 장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취지에서 열리는 음악회이다.그러기에 어떤 음악회보다도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음악회로 여겨 덴탈코러스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참여하였다.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방송 ‘사랑의 소리"와 나사렛대학교가 공동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을 한 가운데 열린 제6회 사랑의 음악회는 1부에 한국종합예술대학교 우광혁 교수의 재치 있는 진행과 다재다능한 연주 실력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악기가 연주되어 관객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별히 알렉산드라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의 드럼에 맞춰 정두언 국회의원이 비틀즈의 ‘헤이 쥬드"를 불러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또 이명박 서울시장이 상주보육원 합주단과 함께 핸드벨과 인도네시아 전통악기 밤벨
재미있어 하고 잘 할 수 있고사회에서 필요한 일을 하는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며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아직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우리집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은 엄마 아빠도 없는 집에서 무엇을 하며 하루 종일 지내는지 모르지만 저녁에 퇴근한 내가 나의 잣대로 평가하기에는 해 놓은 일(일종의 공부나 숙제 등)이 하나도 없다. 그 아이가 6개월 전쯤 나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쪽지에는 어느 휴대폰 번호와 ‘7시 40분부터 30분간’이라는 메모, 그리고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오늘은 그렇게 시작된 그 아이의 테니스 시합 날이었다. 워낙 마르고 작은 체구인데다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터여서 별 기대도 없이, 한번이라도 이겨서 너무 기죽어 있지만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석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간신히 이기기는 했지만 강력한 우승후보들을 모두 이기고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나는 물론이고 선생님을 비롯하여 응원을 하던 여러 친구들도 모두 놀라워했다. 결승전에서는 졌지만 여하튼 시상식까지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며 “너 정말 잘하더라, 멋지던데.”라고 말하자 “엄마! 나는 테니스 시합에서 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등교와 하
옳지 못한 선입견과싸구려 동정심은 있지 않았나일상에서 늘 반성을 한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끝자락의 날씨가 심상치 않다.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었다는 보도가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작열하는 태양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때 이른 일광욕을 만끽(?)하는 비키니 차림의 젊음. 신록의 그 연하고 고운 자태도 어느덧 짙푸르러졌다. 오전 진료를 마치고 한낮의 거리로 나서면 달아오른 아스팔트에서 ‘훅’ 끼쳐오는 더위에 그늘이 그리워진다.작년 가을에 함평의 한센인 정착촌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 몇 분이 우리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오셨다.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하던 보철 치료가 끝났기 때문에 치아가 불편하시면 오시는 것이다. 그분들 중에 우리가 술보 할머니라고 별명을 지어드렸던 할머니께서 호박 몇 덩이를 가지고 오셨다. 검고 골 깊은 주름살이 예사롭지 않은 그간의 세월을 담고 있는 얼굴을 한 술보 할머니께서 “김선생한테 드릴 것은 없고 짜잔하나마(*짜잔하다-전라도 사투리, 작고 보잘 것 없음) 우리 집에 있는 것이라 호박죽이나 만들어 자시라고(*자시다-전라도 사투리, 먹다의 높임말) 가져 왔소.” 하면서 어색하고 짜잔한(?) 웃음을 지으시며 내게 그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