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들 개업일지후배에게 ‘길’이 되고이전개원 하더라고 큰 도움 차타고 돌아다닌 거리 4200Km, 비행기타고 다닌 거리 1만7920Km, 1:5,000지도 4권 (서울, 경기, 인천, 부천, 일산, 파주), 만난 사람 121명, 들어간 돈 수백만원….“미아찾기”에 나선 어떤 부모의 행적이라고 표현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제가 3개월 동안 경기·서울지역 52군데 상가를 찾아 돌아다닌 거리입니다. 저보다 많이 돌아다녀보신 선생님도 계시겠지만 정말 매주 금토일,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먹이를 찾아나선 하이에나처럼 정신없이 찾아 다녔습니다.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 들어간 식당이 장사가 잘되면 ‘나도 식당이나 할까? 이 정도 돌아다니면 식당을 차려도 이것보다 잘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가져 본게 한 두번이 아닙니다. 이렇게 보물섬 찾듯이 입지를 분석 하고나니 또 다른 난관이 닥쳤습니다. 장비와 인테리어….학창시절이든, 수련의 시절이든 환자를 진료하는 것만 알았지 무슨 장비가 왜 좋은지 얼마나 주고 사야 잘사는지 이런건 배워보질 못한거죠. 결국 주변에 먼저 개업한 동료나 선배님들에게 SOS를 쳤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하는 말씀
세대차이시대의 변화라기보다사고의 양극화가 아닐까 올해도 5월엔 스승의 날이 있다. 치과대학생들, 대학원생, 졸업선배들은 스승의 날 행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각자들 의논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던 옛말에 비하면 오늘날의 스승의 권위는 지식전달자라는 일개 직업으로만 여기는지, 과거보다 많이 실추된 것도 사실이다. 사회풍토라고만 탓할 것이 아니라, 그간 교수, 학생, 선배들 그리고 치과계가 모두 치학교육장에서의 올바른 예절 풍토를 제대로 세워나가야만 진정한 스승의 날이 될 것이다.옛날, 공자의 제자들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께서는 인(仁), 의(義), 예(禮), 지(知)와 충(忠), 효(孝) 등 많은 것을 저희에게 강조하며 가르치셨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시는 것 하나만을 우선적으로 택하라면 그것이 무엇입니까?"그러자 공자는 서슴없이 ‘예(禮)’라고 답해주었다.아무리 나라와 임금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주위사람들에 신의가 있더라도 상호간에 기본적인 예를 지키지 아니하면 그 관계가 끊어진다.스승과 제자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신의 주장이 옳고 이를 이해시켜 관철시키려 해도 상대방에게 일단 예
환자·의사를 위한상호 신뢰 쌓아가는개원문화 만들어야 치과의사회에 고충처리위원회가 생기기 몇 달 전 치의신보에서 진료비 미납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눠 기술한 재미있는 글을 읽은 것이 기억난다. 그것을 대충 기억나는 대로 써보면 깡패형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형), 거지형(자신의 돈 없음을 사정함), 아부형(아주 사교적으로 접근하여 직원 포섭), 신사형(자신만만하게 신뢰감을 주면서 말함)이었던 것 같다. 나의 경우는 아부형과 깡패형의 혼합형을 만난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이 환자는 상습범이었던 것 같다. 2년 전 같은 지역에서 큰 길가로 이전했던 첫 달에 이 30대 남자 환자는 다니던 단골치과가 있는데 이사를 와 멀어서 갈 수 없어 새로 생긴 이 병원에 왔다고 말하면서 잘해주면 단골로 삼겠다며 상담실도 아닌 진료실에서 바로 크라운 한 개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선수금이 준비 안 되었다고 그냥 세팅 약속만 하고 갔다. 그 환자는 세팅 날 우리 병원의 잔금에 대한 선결제 후진료의 원칙을 접수 시 적용하자 왜 진료도 안 끝났는데 돈을 받느냐며 버럭 화를 냈다. 이전 개원 초기라 새로 뽑은 진료스탭도 있고 어수선하여 상담시 이 원칙을 말 못했을 수도 있지만
좋다가 안 좋아지고안 좋다가 좋아지고세상일을 보는 여유가… 얼마 전 개봉한 우디 앨런의 새 영화 ‘매치포인트’는 테니스공이 네트에 맞고 공중으로 붕 뜬 상태에서 정지된 화면으로 시작된다. “누군가 선량함보다 운이 낫다고 말한다면, 그는 인생을 달관한 사람이다. 불쾌하리만큼 인생은 대부분 운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 생각에 골몰하면 미칠 지경이다. 시합에서 공이 네트를 건드리는 찰나 공은 네트를 넘어갈 수도 그냥 떨어질 수도 있다. 운만 좋으면 공은 넘어가고 당신은 이긴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한다.”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영화의 내용은 흔한 이야기이다. 성공을 꿈꾸는 가난한 테니스 강사는 우연히 재벌 2세에게 테니스를 가르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그 여동생과 가까워져 결혼까지 하게 된다. 테니스 강사를 그만두고 장인의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처남의 전 여자친구인 배우지망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게 된다. 불륜관계의 애인이 아이를 갖게 되면서 모든 일이 꼬인다. 애인은 부인과 헤어지길 요구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이 부인 때문에 얻게 된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는 되어있지 않다. 주인공은 애인을 죽이기로 마음먹고 총을 준비해 그녀의
여기가 북한이구나!저들이 우리 동포구나!뭔가 힘껏 해줘야겠구나! 지난 2월 26일과 3월 24일 두 차례에 걸쳐 온정리 인민병원에 진료봉사를 다녀왔습니다. 2월에는 이병태 위원장님, 김병찬 사무총장님, 전향숙 선생님과 한국 요시다 문세규 사장, 한림덴텍 이덕균 과장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갔다 왔고, 3월에는 고강 선생님, 목동 예치과 노수영 원장님과 함께 승용차로 다녀왔습니다. 근 30년 가까이 개업의로 활동하면서, 타성에 젖은 생활에서 삶의 가치 등에 대해 회의를 느끼면서 늘 봉사의 필요성과 기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작만 해놓고 일회성이 되거나 열심히 하지 못할 것이 걱정이 돼 쉽게 시작하지 못했던 나에게, 북한 인민에 대한 진료봉사라는 것이 신선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시작이 아무리 작더라도 열심히 해서 이름뿐인 봉사가 되지 않게 헌신적으로 해야 하며,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2월 26일 막상 출발을 하니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간성을 거쳐 고성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전향숙 선생님이 진지향을 간식으로 준비해오셨는데, 몇 차례 다녀오신 다른
선과 악은 백지한장조금만 더 선한 편에 서면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다른 직장에서는 월급이 얼만데 여기는 왜 적냐고 투덜대기만 한다거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과 같이 노력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남이 발전하고 성공하는 것만 시기하고 헐뜯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남의 잘못은 귀신같이 잘 잡아내는 사람도 자기의 잘못은 사과는커녕 변명조차 하지 않고 뻔뻔스런 낯가죽으로 자기의 자랑만 일삼는 사람도 많아지는것 같다.한번은 우리집 막내놈이 여섯살때 하도 놀기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아서 “넌 온종일 책은 안보고 놀기만 하니 그러면 쓰겠느냐?"고 야단을 쳤더니 “아버지 저 책 봤어요…"한다. 그래서 “무슨 책을 보았느냐?"고 하였더니 “전화번호부 책을 보았어요"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아들의 말이 엄격하게 말해서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변명도 고도로 발달하다 보니 이렇게 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비록 흉악범이 날로 늘고 인정이 점점 메말라 가고 오직 돈과 권세만이 힘이고 정의가 되어가는 차가운 현실이라 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나만은 옳고 바
변명을 하다 만성이 되면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두꺼운 얼굴에 강철 심장이 돼 사람들은 대개 자기의 잘못을 감추고 잘한 것들을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하도 이러한 일들이 흔하다 보니 숫제 자기의 잘못조차 깨닫지 못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옳고 그른 것 조차 구별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아가씨의 말에 의하면 P.R.이란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 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왜냐 하면 피할 것이라는 건 바로 그것이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어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변명이라는 것은 잘못한 일, 옳지 못한 일을 일종의 거짓말로써 잘한 일 또는 옳은 일로 가장하여 둘러대는 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 30분쯤 늦게 도착한 사람이 한두번 정도는 그래도 차가 늦었다느니 택시 잡기가 힘들었다느니 하면서 변명을 하다가도 만성이 되면 변명조차 안하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두꺼운 얼굴에 강철 심장이 되어가는 것이다.연전에 필자가 시험적으로 우리나라 서울 사람들의 자기의 잘못을 사과할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 궁금해 연구·실험한 적이 있다. 즉 만원 버스 안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
무서움과 아픔을 겪지 않고환자의 아픈 상처를 보듬는진정 옳은 치료를 할 수 없어 불행은 늘 혼자서 찾아오는 법이 없다 했던가, 나는 요즘 그 고초를 단단히 겪고 있다. 며칠 전 딸애가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아예 식음을 전폐하고 들어 누워 버렸고, 월급 받은 다음 날 아무 연락 없이 출근하지 않는 간호사에다가, 무척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다 만들어진 보철물을 한 달째 씌우러 오지 않는 환자까지 내우와 외환이 함께 겹치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사면초가라, 급기야는 내 온 잇몸이 화들짝 들쳐 일어나고 말았다. 차거나 뜨거운 것을 먹을라치면 극심한 고통이 따르고 조금이라도 질기고 단단한 음식은 아예 씹을 수가 없을 뿐더러 온 입천장마저 따끔거리니 졸지에 중증 치과환자가 다 되어버렸다. 그래도 당장은 치료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어제 퇴근길에 야간진료를 하는 후배 치과를 들렀다. “전체적으로 잇몸수술도 좀 하고, 신경치료와 함께 사랑니도 이 기회에 뽑는 게 낫겠습니다.”조심스러운 후배의 진단은 내 생각 그대로의 녹음방송이기도 하련만 그 선고를 듣는 순간만큼은 어찌 그리 사람을 옥죄이게 하던지…. 나의 왼쪽 사랑니는 직각으로
4월이 오면 어두운 침묵처럼 가라만 앉아있던 온세상 많은 것들이 4월만 오면 무거운 짐들을 떨치고 하품을 하지. 가장 먼저 등장하는 햇살에 찔리고 따스한 바람으로 찬기운을 씻고나면 그 다음은 노란빛, 하얀빛, 자주빛 꽃이 눈을 어지럽히고, 그러면 내 마음엔 바람이 들고….고등학교시절 하숙집옆 철롯가 오동나무 서있던 담벼락 밑에서 밤이면 이 노래를 불렀었지.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준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그로부터 많은 세월들이 지난 어느날에도 꼭 이맘때면 이 노래가 생각나고, 그 분위기가 떠오르고, 또 다시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감흥이 있고, 창피한 얘기지만 눈시울도 뜨거워지고…. 지금은 그 철로도, 그 집도, 오동나무도 흔적도 없어지고 휑한 길만 남았지. 그 휑함처럼 내 기억도 빈자리만 있지 않을까 빈마음만 설레네. 또 하나의 4월 고등학교 시절을 마치고 내가 성인이 되고 나의 존재와 책임이 무거워졌을때 무언가 어긋난 삶의 이정표를 느끼며 전전하다가, 드디어 모든
섬진강 장구목에 낚싯줄 드리우며봄의 향연을 만끽 남녁으로부터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나도 봄을 준비한다.내가 봄을 준비하는 것이라야 기껏 겨우내 아파트 베란다의 다용도실에 넣어두었던 루어대나 플라이낚싯대를 꺼내어 닦고 릴의 스풀에 낡은 줄을 풀고 새줄을 감아두는 일과 여기저기 공연장홈페이지를 기웃거리며 봄밤의 정취라도 느낄 수 있는 무슨 신춘음악회는 없는지 찾아도 보고 가끔 들르는 꽃집에 히야신스나 수선화 같은 알뿌리화초들이 나왔는지 물어보거나 하는 일이다. 언제부턴가 난 계절 중에 봄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쓸쓸하게 서있던 모든 겨울나무들이 연한 이파리들을 내고 봄 숲을 이루면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작은 새들이 지저귀며 짝을 찾아 둥지를 만든다. 얼었던 흙덩이는 제 몸을 부드럽게 하여 새싹들을 돋우고 겨울내내 조각햇빛들을 모아온 매화꽃이 벙글어 꽃을 틔우면 연이어 산수유, 동백꽃, 진달래가 다투어 피며 들판엔 개나리, 수선화, 할미꽃, 제비꽃 등 온갖 꽃들이 꽃잔치를 벌이며 나비와 벌들을 끌어 모은다. 얼었던 강물이 다시 흘러 그 속에 한들거리는 바람도 하늘도, 솜털 같은 구름도 담아 흐르며 그 안에 숨
김병찬·김병찬치과의원 원장·남북치의학교류협력위원회 사무총장 순수한 봉사의 참뜻이민족의 공영과 통일에조그만 밑거름이 됐으면…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남과 북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개·폐회식을 요란스럽게 장식했다. 금메달이 6개, 3관왕이 둘이란다. 역시 소수정예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그런데 같이 입장한 북한팀 소식은 없다. 출전은 했는데 무관심한 것인가. 그런식으로 우리끼리의 삶도 냉정하게 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만 허전하다. 남북치의학교류협력위원회 사무총장을 맡은 지 이제 벌써 만 2년 남짓, 남북 정세 등 우여곡절 끝에 치의학계 관계자 여러분과 현대아산(주)의 도움으로 2005년 9월 25일 금강산 치과 진료소를 개설하였다. 그로부터 한달에 두번 금강산 북측 지역 인민들을 위한 치과봉사팀을 파견해 오고 있다. 지난 2월 24일 금요일 저녁 9시 동서울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치과의사 이병태위원장, 전향숙위원, 변인숙위원과 문세규 한국요시다 사장, 이덕균 한림덴텍 과장 등 모두 6명이 강원도 간성행 야간 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또 한번의 마음을 부풀리고 있었다. 간성에서 택시로 금강산 콘도 앞 해돋이 식당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