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기반치의학(evidence based dentistry)이라는 말이 익숙하게 들린 것도 한참 되었다. 1992년 캐나다 맥마스터대학교 임상역학 및 생물통계학교실의 고든 기얏(Gordon Guyatt)이 미국의사협회지의 편집인 드러몬드 레니(Drummond Rennie)와 함께 사반세기를 거쳐 정립해 온 의학논문에 대한 비평적 읽기(critical appraisal) 방법론에 근거기반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라는 매력적인 이름을 붙인 이래1)2) 근거기반의학은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걸쳐 큰 파급력을 갖게 되었다. 근거기반의학은 의료진의 임상적 전문성과 환자의 가치에 최상의 연구 근거를 결합시키기 위한 것으로서, 1996년 데이비드 사켓(David Sackett)이 ‘현존하는 최선의 근거를 성실하고 명료하고 현명하게 사용하여 각 환자의 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the conscientious, explicit, and judicious use of current best evidence in making decisions about the care of individual patients)’이라고 정의하였다3).
1993년 3월에 가입한 토행독(토요일의 행복한 독서)에서 이번 주에 존피스, 맥스 프렌젤 공동저자의 Time Off (이토록 멋진 휴식)를 진행한다. 토행독에서는 3개월 단위로 12권 전후 책을 선정한다. 책이 선정되면 회원들은 각자 자신이 진행하고 싶은 책을 정한다. 매달 3째주 토요일 진료를 하지 않기에 편하게 독서진행을 할 수 있어 Time Off (이토록 멋진 휴식)를 선택하였다. 책을 선택하면 1달 전부터 진행을 준비한다.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일과 휴식의 전환을 잘 이룬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잘 쉬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칼같이 퇴근해 휴식 시간을 잘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된 일을 잊을 만큼 휴식을 즐긴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보면 워라밸의 본질은 ‘시간’의 균형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work,노동)과 ‘하고 싶은 것’(life,놀이) 사이의 균형(balance)이라고 볼 수 있다. 2020년도 한 통계조사에 의하면 무려 70퍼센트 이상의 직장인이 번 아웃(Burn Out)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Burn Out의 3가지 핵심 증상은 에너지 고갈과 피로감, 직장이나 업무와 관련한 부정적인 신경증 및 냉소주의, 업무
2021년 9월 넷플릭스가 공개한 우리나라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액션 서스펜스 생존 드라마로 넷플릭스가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83개국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영화의 흥행으로 투자된 제작비 200억 원의 400배의 가치로 평가됐으며 넷플릭스의 주가는 12조 원 늘었고 참가자의 초록색 운동복이나 진행요원의 붉은색 옷과 마스크가 유행하고 달고나 열풍을 일으켰다. 오영수 배우(오일남 분)는 우리나라 배우 가운데 최초로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았으며 이정재 배우(성기훈 분)는 미국배우조합상과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총 6개의 게임을 통과하고 우승자가 되면 상금 전부를 가질 수 있으나 만약 탈락하게 되면 상금은 물론 생명을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많이 있으나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선정성, 폭력성, 잔혹성 등의 이유로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고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로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추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징어 게임’ 6회 내용을 보면 줄다리기에서 참가자가 대거 탈
필자는 대학을 정년퇴임한 지 10년을 향해 가고 있다. 정말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대학에서 병원장과 학장의 보직을 마치고, 60이 될 무렵 자유로운 마음으로 “두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을 때”라는 제목의 자서전에 준하는 책을 발간하였다. 정년이 5년 남았을 때이지만 인생을 120으로 잡고 반환점을 돈다고 생각하고 60에 썼다. 60前에도 그랬지만, 남은 5년 동안에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논문을 기대하기도 어려웠고, 필자의 논문이 꼭 필요하다면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 볼 수 있을 테니까 굳이 논문들을 책으로 묶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를 答하기 위하여 필자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대학과 병원에서 지내면서 경험했던 일, 국내외 학회에 참석하여 느꼈던 일, 해외 연수 시 공부하면서, 또 사람을 만나면서 기억되는 일,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청탁을 받아 그때그때 時流에 따라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들을 중심으로 썼던 글, 이외에도 여러 곳에 써왔던 글들을 모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책을 내기로 한 것이다. 나름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두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는 말은 대학과 사회에서 모든 직위에서
사회의 진화는 다양성으로 이뤄진다. 인간 간의 각기 다른 가치, 개념, 이념, 생활방식, 문화적 코드 등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발전해 나가면서 이것이 때로는 통섭되어 사회적 공동의 문화와 가치 이념을 창출하기도 하고 분열되어 서로 간의 대립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진화해 나간다. 오늘날 사회는 발전된 경제의 기반 아래 개인간의 다양성이 폭발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하나로 움직이기 보다 여러 이념과 가치를 중심으로 모이고 헤쳐진다. 그러면서 발빠르게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시대로 나가고 있다. 치과계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서울치대 출신들이 중심되어 하나로 뭉쳐갔던 치과계는 10여년 전 11개 치대 출신들이 중진이 된 이후부터는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대립하면서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화합과 통합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은 다양성의 초기 단계인지 갈등과 대립이 더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예전 치과계는 다같이 한마음으로 치과계 권익을 위해 모이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안에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다반사였다. 외부로는 좀처럼 갈등의 모습이 표출되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 생
김영삼 대통령 시대에 경제는 위기였다. 잘 아시다시피 IMF 단초를 제공한 정부로 이 IMF사태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사태를 경험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잘한 치적이 이 하나로 무시되고 말았던 비운의 역사를 알고 있다. 당시에 경제를 살리자는 공영방송 매체에서 캠페인 또한 대단했다. 부도사태가 되기전에 코미디 프로가 생각난다.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의 이름이 “경제” 였다. 그런데 그가 물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경제를 살리자고 아우성 치며 안절부절 못하는 장면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그 이후에 예상이나 하듯 우리 국민 모두가 알아버린 IMF 라는 글자는 국민의 뇌리에 각인 되었다. 그런 후 경제가 안 좋을 때마다 제2의 IMF를 걱정하며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금융위기 때마다 변곡선을 그리는 물가상승이나 인플레이션은 서민 걱정과 치과 의료인들도 민감한 관심을 갖고 생활하게 되었다. 경제가 좋아야 서로 더불어 잘 살수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물가가 뛸때마다 이것 저것 다 오르는데 한가지만 떨어지는게 있단다. 그것은 자식의 성적이라고 한숨섞인 어조로 얘기할 때가 있었다. 한국은행이 5월말에 경제전망을 하면서
과학기술계 은퇴자를 위한 시설 사이언스 빌리지는 영양가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윤번제 식사를 제공한다. ‘맛’만 빼면 불평도 불만도 없다. 집 밥 개념이라지만 주방장이 젊으니 결국 퓨전 한식이다. 예를 들어 청국장이라면 숟가락을 꽂아서 슬로모션으로 넘어질 만큼 되직해야 제 맛인데, 그냥 멀건 장국이다. 하기야 고령자를 위한 염도(鹽度) 0.6 언저리의 저염 저당 식에 맛까지 주문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그래서 밥도둑 아삭이를 따로 준비한다. 한국인의 고추 사랑은 유별나다. 남아선호 얘기가 아니라, 짱꼴라(中國人)들이 제아무리 우겨대도 포차이에는 없고 김치에는 있는 것이 고춧가루요, 금메달을 따도 ‘고추장 뒷심’ 덕분이라고 하지 않던가? 캡사이신의 효능은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지 오래다. 풋고추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앙칼지게 매운 청양고추는 쫑쫑 썰어서 양념으로 쓰고, 중간 정도의 꽈리 고추는 조림용이며, 껑충 큰 아삭이는 그냥 된장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키 크면 싱겁다더니 아삭이는 과연 이름만 고추다. 아작 깨물면 아삭 씹히는 식감과 달콤한 감미, 그리고 삼킬 때 가서야 톡 쏘는 뒷맛으로 겨우 이름값을 하는데, 가출한 입맛을 불러오는 데는 그만이다. 문제는
1960-70년대쯤 ‘오리진’이라는 번역서를 읽었다. 영장류로서의 인류의 진화과정을 다루고 마지막 10장에서 향후 크고 작은 전쟁을 불식시키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지, 희망 섞인 의문부호의 전망으로 끝을 맺은 책이었다. 5-60년 전의 일이라 저자와 역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감명 깊게 두-세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사피엔스(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를 읽으며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오리진’에 대해 아마존 북도 검색해보고, 각종 중고서적 사이트도 검색해보았지만 찾아지지 않았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한글번역서에 보낸 서문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40억 년 전 출현한 생명이 유기체라는 한계에 묶여 자연선택의 법칙을 따르며 진화해왔지만, 이제 인간이, 자연선택으로 빚어진 유기적 생명의 시대를 과학을 통해 지적설계에 의해 빚어진 비유기적 생명의 시대로 대체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과학이 우리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재설계할 수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사 과정 중의 수많은 변화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것이었지, 인간자체의 변화
독일은 1932년에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이후 선진국 중 가장 빠른 1972년에 고령사회로, 2009년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였으며 2018년 기준 현재 65세 이상 인구가 독일 전체 인구의 22%를 차지하고 있다. 고령화 현상을 매우 일찍부터 겪은 독일은 연금제도, 노인인구 경제활동 참여 독려 제도 마련 등 고령화에 동반되는 문제를 대비하고 해결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독일의 장기요양(long-term care)을 위한 사회보험인 수발보험(Pflegeversicherung)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보건의료분야의 고령화 정책인 노인 장기요양보험의 원형이다. 구강보건의료분야에서 독일 연방 치과의사회(German Dental Association, BZAK)와 전국 공적 건강보험 치과의사협회(Federal Association of SHI Dentists, KZBV)가 다양한 학회 및 시민단체와 함께 공동 프로젝트로서 개발하고 추진해온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건강 보험 개혁안인 “장애와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구강”(Oral health despite handicap and old age, AuB-Konzept)과 건강 보험 개혁 및 정책에 적절
인생 살다보면 끊임없이 머리를 내미는 두려움으로 인한 고통. 어느 정도 해결하였다 생각하면 또 다른 괴로움이 불쑥 머리를 내민다. 두더지 게임을 할 때 두더지를 망치로 때리면 또 다른 두더지가 불쑥 머리를 내민다. 두더지를 빨리 때릴수록 두더지는 더 빨리 머리를 내민다. 아무리 때려도 사라지지 않는 두더지. 우리 삶 또한 두더지처럼 두려움이 불쑥 불쑥 고개를 내민다. 하나하나의 두더지에 대응하느니 코드를 빼버리면 두더지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법륜 스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아본다. 부처님께서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가를 하셨다. 93세인 아버님은 한 달에 한번정도 집에 스님을 모시고 공부를 한다. 나 또한 불교에 관심이 있기에 관련 책을 읽고 아버님과 대화를 한다. 중용에는 불교 교리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중용 1장과 2장에 두려움에 관한 한자가 4개가 나온다. 1장 恐懼乎 其所不聞(공구호 기소물문 : 다른 사람이 듣지 않은 곳에서도 두려워한다) 2장 小人而 無忌憚也(소인이 무기탄야 : 소인은 꺼리낌이 없다) 恐(두려울 공) 懼(두려워할 구) 忌(꺼릴 기, 두려워하다, 미워하다, 질투하다,) 憚(꺼릴 탄, 두려워하다, 괴로워하다
매일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집에 들어와 지친 하루를 끝낸 후 낮에 받았던 스트레스나 신경써야 할 여러 일을 잊기 위해 술이나 게임 등으로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거나 기절하듯 잠이 들기도 한다.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쳇바퀴 돌 듯 병원으로 출근하여 환자를 보는 것이 우리의 하루이다. 이렇게 살다 보면 살아가는 진지한 의미보다는 말초적인 자극이나 쾌락과 같은 단순한 흥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건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궁금해하지도 않으며 그 이유를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뭘 해도 무기력하고 삶의 균형을 잃어버리거나 살아가는 목적이나 삶의 의미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갖지 못했을 때는 갖고 싶고 일단 어느 정도 얻게 되면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싶어 한다. 얻고 나면 지키고 싶고, 지키고 싶을 때는 잃을 것을 두려워한다. 바로 이런 욕망과 걱정과 두려움이 우리를 항상 바쁘게 하고, 스트레스에 휘둘리게 한다. 환자를 왜 이렇게 많이 봐야 하는 이유도 모른 채 무리하다가 자신의 건강을 해쳐 치료를 위해 이제까지 모은 재화를 다 쓰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삶은 분명 유한한데 목적이 아닌 수단을 위해 주객 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