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예수님 생일 "베이비 지저스는 지금 어디 있나요?" 네 살짜리 딸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다. 바람 없이 포근하고 나른한 어느 오후, 아침나절에 한 교회의 어린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거기서 얻은 빨간 풍선을 손에 쥔 채로 아이는 달콤한 잠에 빠지고, 아빠는 아이 곁에서 바쁘기 만한 12월의 서류들을 정리한다. 어느결엔지 컴퓨터가 내는 기계음에 아이가 눈을 뜨더니 손에 쥔 풍선을 확인하고는 행복한 얼굴이 된다. “아빠! 풍선을 꼭 잡아야지? 꼭 안 잡으면 하늘로 올라가지?” “그럼.” “하늘로 올라올라 가면 그 다음엔 어디로 가요”? “(당황한 아빠의 대답)어디로 갈까?” “하늘나라” “그래, 잘 아는구나(휴우).” “아빠! 풍선이 올라올라 가면 하나님 생일이야?” 아이가 네 살이 되면서 이거저것 질문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부쩍 늘어났다. 한 번은 이런 대화도 나누었다. “아빠! 나는 하나님이 만드셨지?” “그럼.” “아빠는 누가 만드셨어?” “아빠도 하나님이.” “나는 아빠랑 똑같이 생겼댔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지, 그렇지?” “그래, 맞다.” “아빠! 하나님은 어떻게 생겼어?” 내가 아는 형이상학적 이야기를 아이의
“하지만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지난날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사람은 결국 옳건 그르건 자기 방식대로의 생을 살게 마련이니까요. 난 아직 마흔 넷이고, 저 굳게 닫힌 캄캄한 문 뒤에는 어떤 모습일는지 모르지만 내 미래가 있다는 걸 알아요. 좀 무섭긴 하지만...... 결국 내 손으로 저 문을 열고 들어가야겠죠. 어쨌든 나한테 주어진 내 삶이니까요 이번에 연사모의 “위기의 여자”라는 연극은 중년 여성에게 있을 수 있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괴로워하다가 자아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기존의 사회 인식에 길들어져 온 여자라면 분명 이런 문제에 대해 모니끄(극중 여 주인공)처럼 소극적이고 도피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자신이 갖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 중요하다. 이 글 마지막에서 과연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절대로 시간과 생명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인형의 집에서 “로라”는 자신만의 공간 인형의 집을 깨고 나갔다. 하지만 ‘모니끄’는 되돌아와 정신적 위기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자의식을 싹트이게
어느오후 ···추억너머로 전석열(作) ’59 : 전북 임실군 청웅 출생 ’84 : 경희대 치과대학 졸업 ’94~5 : 서울‘광영회’ 회원전 출품 ’94~현재 :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THE IMPRESSION’ 회원 ’94 : 현대미술대전 사진부문 금상 ’95 : 동아국제사진싸롱, 대전일보국제사진전등 사진공모전에서 다수 입상 및 입선 ’97. 9: 대전시민회관 개인전 ’97. 9: 청웅 전석열사진집 발간 25cm×25cm-84page ’2000~ :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사진동우회장 대전 예치과원장
공보의 남편 따라간 객지에서 노심초사 첫 딸 났던날 순조롭지 못한 분만으로, 나만큼 고생한 딸아이 어느새 6섯살 꼬마로 성장해 예정일을 열흘 넘긴 상태다. 초산이라 좀 늦어질 꺼라 했지만, 보는 사람들마다 “아직 아기가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구먼, 보름은 더 있어야 겠네” 라고들 말씀하신다. 남편 말로는 모두 게으름 때문이란다. 턱턱 숨 가빠하는 나와는 상관없이 4층 아파트까지 걸어서 오르락내리락 하란다. 잔심부름까지 시키면서. 지난 진료 때 산부인과 선생님도 오늘까지 아이가 나오지 않으면 ‘그만 꺼내자’고 하셨다. 아무튼 오늘이 병원 약속일 인데.... 출근하려는 남편을 붙잡으며 “오늘 중으로 아이 낳아줄 테니까, 나랑 같이 병원에 가요” 라고 농담을 했는데, 정말 이슬이 보인 것이다. 진료약속시간에 입원준비 가방까지 모조리 들고서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오늘도 외래환자에 정신없이 바쁘셨고, 응급분만 환자까지 있어서, 내 차례는 자꾸만 뒤쳐졌다. 대기실 창 밖으론, 3월 겨울나무를 깨우는 봄비가 소곤소곤 내리고 있다. 병원에선 진통간격이 더 짧아지면 오라고 하지만, 공보의 남편을 따라온 객지에서 혼자 배아프고 있을 일이 두려운지라 나는 비 핑계를 대며
화훼-그대만의 봄 김광현 (作) ’56 서울치대 졸업 ’94 치과의원 신축 기념 ‘꽃 사진전’ ’94 ‘Flower day’ 발표회
“또 다시 인턴을 하겠느냐?” 이렇게 질문을 받는다면 필자는 서슴치 않고 대답할 것이다. “예 하겠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눈물적은 빵’을 먹지 않고 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럴 수만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실력과 명예를 존중하는 필자는 인턴시절이야말로 의사시절의 핵이라고 생각한다. 인턴되자 닥터 리로 불리기 시작 변화는 기나 긴 시간과 세월에 걸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졸지에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주의 변화는 영원한 것이겠지만, 화학실험·생리실험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치과의사가 되어, 다시 인턴시험에 합격하여 까운을 입고 병원에 근무하니, 누가 보아도 시술자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치과의사로 대접을 하니 그것도 당연하지만 속으로는 어딘가 좀 쑥스러운 면도 있다. ‘이 군’, ‘미스터 리’에서 ‘닥터 리’로 호칭이 바뀌었고, 집에서도 밖에서도 지위변화에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러나 학교나 병원의국생활에서 인턴이란 몇 십층 고층건물의 지하실과 같은 입장이다. 건물은 눈으로 보이기나 하지, 병원의 의국생활이나 학교(대학교) 교실생활은 보이지 않는 층계가 대단하다. 실로 이점은 말로 표현할 길이
첨단 일본 - 과거로의 여행 김승재 (作) 남현연세치과
사람들 소유욕 얽매여 삶의 기쁨·여유 놓쳐 소유욕에서 벗아날 때 세상의 행복감 느껴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온다. 그리고 저 세상으로 갈 때도 역시 빈손으로 간다. 그런데도 살아가는 동안 인간은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은 질시와 미움과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 되어 왔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나라와 나라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근저에는 항상 소유욕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피를 나눈 가족간에도 그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살다보면 필요한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더욱이 문명과 상품경제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자고 나면 쏟아지는 게 더 편리하고 새로운 물건들이라, 아무리 검소하고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를 외면하고 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쉽지 않다’는 이유로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상가들이 전세계적인 추앙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무소유를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이를 실천해온 대표적인 인물로는 ‘간디’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정신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일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루는 간디가 회의차 비행기를 타고 타 지역에 가기 위해
갯벌 박병기(作) ’84~89 백악사진예술동호회 ’90 조선치대 졸 ’98 ‘환자와 함께하는 치과이야기’ 출간 ’현재 광주 대덕치과원장
의약분업으로 인한 병원 파업으로 환자가 느꼈을 박탈감 이해 치과경영 세미나 듣는 것보다 환자 입장 돼 보니 더 효과적 지난 겨울, 콧물 감기에 목감기로 계속 감기기운이 없어지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진료해야 된다는 핑계로 그냥 병원에 있는 약을 좀 심할 때마다 콩 주워 먹듯이 먹다보니 이 콧물 감기가 급기야 여름을 지나고 만성화되면서 만성 부비동염이 되고 말았다. 결국 치과에 있는 약을 먹어도 제대로 낫지 않아 동네 이비인후과를 가니 일단 약을 먹어 보잔다. 이비인후과는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X-ray도 없고 원장님을 잘 알아서 그런지 닭 모이 주듯이 약만 계속 줘서 먹었는데도 전혀 증상의 개선이 없었다. 이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겠구나 싶어 치과 휴진하고 대학병원을 가기로 작심했다. 물론 내가 간 병원이 마침 장기파업 중이라 그렇겠지만 초진에 X-ray 검사, 초음파 검사, CT촬영까지 9번을 가서야 결국 만성 부비동염으로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진료실에서 의사의 신분으로 술자의 위치에만 있다가 이렇게 환자의 입장이 되고 보니 다시 한번 병원이 새롭게 느껴진다. 극한으로 치닫으며 노(勞)든 사(使)든 서로 하지 말
邊方(변방)의 가을 이상득(作) ’78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81 사진활동 시작 ’84 자연사진 입문 ’93 개인전[무주리조트 초대전] ’94 개인전[허스갤러리] ’98 개인전[후지포토살롱] 현재 제중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