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숨결 배난영(作) 남승희 송파구 치과의사회장 부인 경희대 미술교육학과 졸업 한국 수채화 공모전 특선 및 입선 (’93, ’94, ’96, ’97, ’98) 목우회 공모 미술대전 특선 및 입선 (’97, ’99, ’2000)
오히려 관대하고 넓은 주파수로 승화할 수 있었다면 혹시 아픔으로 남아있는 그 사랑을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띠리리릭-, 띠리리릭-, 철컥. 최 선배 : 아! 여보쇼, 왜 그러쇼? 홍 소미 : (아니, 최 선생님이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안녕하세요? 저 수치과 홍소민인데요, 금번 모임 때문에..... 최 선배 : 아! 홍 선생, 잘 있었어요? 별 일 없으세요? 홍 소미 :(갑자기 이렇게 다시 격식을 갖추다니!) 아마도 최 선배님이 지인(知人)으로부터의 전화라고 생각하셨던 모양입니다. 누군가 그렇다면 굉장한 친분일 것입니다. 아마도 주파수가 서로 잘 맞아서 어떠한 말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알고있는 어떤 선생님은 상당히 진중하고 한마디로 신사인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런데 그 분도 어떤 지인(知人)에게는 “아니, 저런 미주알 고주알이!" 할 정도로 이야기하십니다. 전 알고 지낸 지 만 4년이 지나서야 그 분과 대화하기가 약간 쉬워졌습니다. 그간 내내 “홍 선생, 홍 선생,” 하시다가 어느 순간에 “소미니?” 하실 때 이제서야 아는 사람 대우받는구나 싶어서 감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주파수 맞추기 어려운 사
가을의 회상 이상득(作) 1952년 4월5일생 1978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1981년 사진활동시작 1984년 자연사진입문 1993년 개인전 [무주리조트 초대전] 1994년 개인전 [허스 갤러리] 1998년 개인전 [후지포토살롱]
학, 鶴 박병기(作) ’84~’89: 백악사진예술동호회 ’90 : 조선치대 졸 ’98 : ‘환자와 함께하는 치과이야기’출간 현재 : 광주 대덕치과원장 정 정 지난호(1105호) 여백작가는 주명숙이 아니라 주영숙입니다.
나의 사랑 영희가 성숙한 여름 가을의 문턱에서 “난, 반딧불이 보고 싶어요!” 라고 했다. 40년 전 우리들이 자랄 때만 해도 여름 하늘에는 별처럼이나 많은 반디들이 날아다녔다. 우리들은 박꽃이나 호박꽃에 넣어 등을 만들어 들고 다녔다. 짓궂은 친구들은 불을 떼어내어 눈썹에 붙이고 다녔다. 영희는 그 반디를 보고 싶어했다. 나는 영희를 태우고 작년 여름 반딧불을 보았던 가창면 우륵리의 골짜기를 샅샅이 뒤졌으나 반딧불을 볼 수 없었다. 영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농약이 뿌려진 이 곳에는 반딧불이 살 수 없어요.” 라고. 나는 분명 작년에 이 곳에서 반딧불을 보았다. 그러나 오늘은 몇 시간이나 지켜보았지만 반딧불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혹시 반딧불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글쎄요. 요즈음은 본적이 없어요!” 라고 대답하며 아예 반딧불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토착민 몇 사람에게 물어 보았지만 아직도 본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와 나는 울며 울며 돌아왔다.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 KBS 뉴스에서 ‘무구구천동 반딧불이 축제’를 볼 수 있었다. 마음으로 염원하면 방송을 통해서라도 보여 주는구나
‘우리 아들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얼마전 보건소의 구강보건 계획에 의해 장애인 복지시설 이동진료를 나가게 되었다. 그 곳은 생각했던 것보다 의사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너무도 아니 절실할 만큼 많았다. 보통 우리네에게는 필요하면 언제든 받을 수 있는 진료의 혜택이 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또한 꼭 어떤 치료가 아니라고 해도 인정이 얼마나 그리운 사람들인지... 그 날 저녁은 왠지 씁쓸한 기분에 다른 일이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내가 어찌보면 잊고 지냈던 그 예전의 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릴적 아니 고등학교까지 나는 유난히 많은 아침잠으로 어머니와 매일 아침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그 날 무사히 학교에 등교해 선도선생님의 꾸중을 피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었는지... 어머니가 나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매일 진이 빠지셨을 정도였으니... 나는 나대로 그렇게 혹독히 깨우시는 어머니가 항상 야속하기까지 해 일부러 더 안 일어나려 발버둥을 치기도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매일 매일
여인, Woman Bronze, 34×34×55㎝, 1995 주영숙(作) ’59 :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졸업) ’75 : 미국 Oklahoma주립대학교 대학원(M.BS) ’97 : 덕성여자대학교 총장 ’78~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이런, 총구내미!" 하고 말한 때면 그것은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무슨 일을 영리하게 해내지 못 한다는 뜻의 애정 표현이다. 현이는 5살이다. 어금니에 충치가 있다. 치료를 받던 첫날, 현이는 울면서 간호사에게 말했다. “이를 뽑는 기라예? 내가 마, 한 개도 안 아프다 안 캅니꺼.” 현이의 부모는 표준말을 쓰고 있어서 몰랐는데 아이가 어디서 사투리를 배웠을까? 물어보니 일하는 부모가 낮에 아이를 남의 집에 맡기는데 그 집 할머니가 경상도 분이란다. 나는 사투리 듣기를 좋아한다. 대학 때 미팅에서 만난 한 여학생이 경상도 억양을 쓰고 있었는데 한국말이 그토록 정답게 들리는 줄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지도(나도) 커피를 초아합니데이.” 하며 다소곳이 ‘애프터’신청을 받아들이던 모습이 좋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런가하면 다른 과와 합반을 할 때 만나게 되는 학생 가운데 전라도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의 억양도 친근감이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워메, 이게 뭔 말이다냐? 이게 다 라틴말이당가? 이걸 다 외워야 학점이 나온다고이? 아이고 엄니요, 나 죽소이.”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도 가끔씩은 부모님이 쓰시던 ‘피양’식 억양이 나올 때가 있다. “이런,
지난 여름날의 기억 이규섭(作) ’87 : 단국치대 졸 현재 : 대전광역시 치과의사 사진동호인회 IMPRESSION 회원 하얀이치과 원장
기린아저씨가 치카치카 잘하는지 볼 꺼야 하면서 빠른 손놀림으로 풍선을 접는다. 요녀석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잠자리, 기린, 토끼, 강아지, 미키마우스, 갈매기, 앵무새, 꽃, 칼, 달팽이, 하트, 사과, 벌, 바니, 거북이, 원숭이 슬슬 이야기를 풀어야 할까보다. 4년전, 많은 연인들이 기대하는 화이트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날이다. 대학로에 거니는 사람들을 모두 짝 짓고 나면 아마도 나 혼자 남을 것만 같다. 난 지금 요술 풍선을 배우러 간다. 볼에 바람을 잔뜩 집어넣고 힘껏 불어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한없이 늘어날 것만 같은 풍선들이 나를 기다린다. 아마도 서너개 불고 나면 하늘이 노랗게 보일지 모른다. ‘칙칙이’라고 내가 이름 붙인 공기 주입기가 있어 축 늘어져 엉켜있는 이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 봉지 가득 들어 있는 풍선을 보고 있노라면 서로 나에게 잘보여 뽑히고 싶어하는 것만 같다. 풍선 입구와 주입기를 잘 맞추어 빵빵하게 만들어 주면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마저 기대감에 부풀게 한다. 시작이 반이다. 끝이 손가락 다섯 개만큼 남으면 입구를 살짝 열어 공기를 빼주고 매듭을 짓는다. 바람이 너무 많이 들어 있으면 풍선을 접기도 전에 풍선
왕 고들빼기 이인환(作) ’87 : 연세치대 졸업 ’90 : 소아치과 수료 ’97 : 치의학 박사 ’96~’99: 한국자생식물협회 홍보이사 현재 : 이인환치과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