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기억해 보면, 유년의 마당은 풍요로웠던 듯 싶다. 여름방학식을 했다며 치료실로 몰려든 아이들 얼굴이 밝다. 10년전엔 나도 여름방학이 있었다. 그 긴 여름방학이 너무 무료해서 주체 못할 정도였는데. 내젊음이 웅덩이에 고인 물처럼 그렇게 정체해 있어서 두렵기까지 했는데... 그 긴 휴식이 있던 시절 난 무얼 했었지? 먼지 낀 일기장을 들쑤시다가, 아 발견했구나. 늦잠이 허락되었으면... 하는 일요일 아침부터 엄마의 성화에 잠이 깼다. 벽시계보다는, 창 밖으로 훤하게 터 오른 아침해가 그래도 내 억울함을 좀 삭여 주는 듯 하다. 일곱 시도 채 안된 시각. 주말의 명화, 그 후로 독서, 이어지는 생각들. 부모님의 코고는 소리 한참 후에 뒤척뒤척 잠이 들었건만... 용납되지 않는 아침이다. 아빤 “원 젊은애가 그렇게 게을러서...”로 시작되는 일장훈시와 함께 덧붙여 마당잡초를 뽑으라신다. 제초제 운운하는 아빤 내게 계속 “게으름...”으로 일관되어 공격해 오시고, 반쯤 뜨인 눈으로 비닐주머니를 집어들었다. 성년이 여덟인 가족 중에 유독 아빠 한 분만이 아파트가 싫으신 게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뜻에 일곱이 큰 반란 없이 꼬박 순종하는 것도 신비로운 일이다.
사명산 초롱꽃 이인환(作) ’87 : 연세치대 졸업 ’90 : 소아치과 수료 ’97 : 치의학 박사 ’96~’99: 한국자생식물협회 홍보이사 현재 : 이인환치과 위원장
어떤 사람에게는 부식거리인 라면 한 봉지가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굶어죽기 직전의 마지막 가난한 양식이 되기도 하리라.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쯤 해서 난생 처음 라면을 먹어 보았다. 하루는 학교에서 철봉도 하고 공도 차고 여자아이들 고무줄도 끊고 실컷 놀다가 허기져서 집에 돌아오니 순이 누나가 “너 이거 한 번 먹어볼래?”하면서 국수를 한 그릇 끓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라면이었다. 그전에 먹어본 국수가락의 밋밋하고 흐물해진 맛에 비해서 그 ‘라면’이라는 새 국수는 내 입맛에 혁명을 일으켰다. 쫄깃쫄깃하고 꼬들꼬들하면서도 호로록 입에 들어오는 그 맛은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그뿐인가 그 동안 순이 누나가 만들어준 국수장국은 닝닝한 멸치 다시 국물에 먹기 싫은 호박과 파 같은 것이 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혁명적 국수는 매콤하면서도 맛좋은 국물 안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아! 사랑스런 라면이여! 나는 그날부터 학교에 갔다오는 대로 책가방을 내동댕이치고는 순이 누나의 즉석라면을 한 그릇씩 해치웠다. 이후로 학교에는 생라면을 봉지째 가져 와서 오두둑 오두둑 과자처럼 씹어먹는 애들도 생겼고, 그 인기에 편승해서 약간의 단맛을 가미한
아이들의 천국 리영달(作) ’59 서울치대졸업 ’90 개천예술제 대회장 대한민국 사진전람회 초대작가 심사위원 사진작가협회 운영자문위원 진주 리영달 치과의원 원장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교육철학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할 때이다. 몇 년전 부터 영재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연루된 C 영재학원도 그중 하나이다. 피라미드식으로 되어있는 영재 등급을 올리기 위해 아이들은 수많은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이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다. 양재동에 있는 본원으로 도착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전주, 대전 등지에서 올라오는 아이들도 있는데, 의정부는 지천이란다. 교육내용은 지능검사문제들의 집합체이다. 검사에서 높은 점수가 나오도록 심혈을 기울인 듯 하다. 억지로 검사수치만 올린다고 영재가 될 수 없다. 부모의 강압에 못이겨 따라하는 척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반항적으로 변할 수 있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전교회장도 하고, 상장도 많이 받고 정말 우수한 아이였거든요, 어떡하다가 저렇게 됐는지 몰라요, 선생님 제발 좀 잡아주세요” 대학시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가끔 듣던 레파토리다. 억지춘향으로는 결코 영재가 될 수 없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교육철학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할 때이다. 자라면서 수많은 영재아들을 관찰
대전광역시 치과의사 사진동호인회 IMPRESSION 전회장 대전 서병준치과의원 서병준원장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처럼 다양한 정보가 흐른다 힘찬 물줄기 처럼 正論은... 살아 숨쉰다 고고한 계곡의 정기를 치의신보는 담고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를... 우리는 추구하리라 - 치의신보 일동
쭈글쭈글한 손이면 어떻고 등이 굽으신들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도 그냥 나오세요 제가 펴 드릴께요 그렇지만 나는 얼마 남지 않은 군 생활이지만 이제는 더 어머니와의 만남을 미룰 수가 없었고,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를 한국에 잠시나마 오시라고 했다. 77년 12월에 한국으로 내가 끊어드린 비행기 표를 들고 기다리던 어머니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너무 오래만에 만나서 그런지 어머니는 허리가 굽어지셨고 56세의 연세에 골다공증까지 오신 것이다. 150센티도 안되시는 가벼운 어머니를 나는 길을 건널 때면 내가 등에 업고 길도 건너고 손도 잡아 드리면서 상봉의 기쁨을 맛봤다. 어머니께 맛있는 음식도 사 드리려고 무엇을 좋아하시냐고 물었더니 미국 참외가 먹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나는 유명한 수퍼마켓을 돌아다니면서 수입산 참외를 여러 종류로 사서 드렸지만 어머니가 원하시는 참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어머니가 원하시는 과일은 아니었지만 아들인 내가 사다드린 과일을 맛있게 드시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고 내가 너무 흡족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어머니께서 원하셨던 참외가 비로소 내가 미국에 왔을 때야 어떤 것인 줄 알았다, 바로 허니듀 였다. 미국에
Summer Space 이규섭(作) ’87 단국치대 졸 현재 대전광역시 치과의사 사진동호인회 IMPRESSION 회원 하얀이치과 원장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그만 때릴 것 같았지만 나는 억지로 이를 꽉 물고 더 반항아 기질적인 복수의 눈빛으로 오히려 선생님을 노려봤다. 거의 일년동안의 내 방황을 보다 못하신 아버지께서 다음 해에 고등학교에 들여보냈다. 그렇지만 나는 별로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농구나 배구 등으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수학 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에 마음이 비뚤어진 내가 엉뚱한 농담 비슷한 대답을 하여 동료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수업 시간에 야구 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그만 때릴 것 같았지만 나는 억지로 이를 꽉 물고 더 반항아 기질적인 복수의 눈빛으로 오히려 선생님을 노려봤다. 나를 너무 때려서 오히려 선생님의 휘둘렀던 팔이 아파서 더이상 나를 때릴 수가 없어서야, 나는 그 심한 매질에서 해방이 됐다. 계속해서 수업 시간이 이어지는데도 나는 책가방을 그냥 교실에 놔 둔 채 학교를 나와 버렸다. 주머니에 돈이라도 있어서 시원한 팥빙수라도 마시면 육체적으로나마 시원할 텐데 먼지만 있는 주머니에 양손을 푹 찌르고 뒷산 언덕진 풀밭에 하늘을 향하여 드러누워 부르짖었다. 나에게 어머니를 돌려 달라고 외쳤다. 그렇지 않아도 서러운데 이럴
신사 조동희(作) 광주 조상훈원장 부친 ’83 한국미술공모전 대상수상 사단법인 國美會 운영위원 ’97 한중 우수작가 발전 교류작가상수상 조선치대입구 ‘무궁화’작가
안창택 : 현재 미국Los Angeles 지역에서 개업 중 ※ 본글은 올해 어버이 날을 맞아 LA에 있는 교포방송국인 라디오 서울에 공모한 수기에서 1등으로 당선된 작품이다. 어머니가 태어나신 곳은 일제 시대에 일본 중 북부인 후쿠시마 지방이다. 평범한 목수의 4남 5녀 중에 세번째 딸로 자라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동경의 간호 전문학교를 나오셨고,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셨던 아버지를 만나 살고 계시던 중 해방이 됐다. 해방이 되면서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의 완강한 권고로 아버지가 귀국하시는 바람에 어머니도 같이 낯선 외국인 한국, 제주도 땅을 밟게 돼 어머니의 한국 이민이 시작됐다. 전혀 한국말을 모르시고 문화와 관습이 모르셨던 한국 이민 초기의 어머니의 가슴 앓이는 어렸던 그당시 나는 전혀 몰랐다. 서툴게 한국말을 하시는 어머니께 발음이 잘못 됐다면서 오히려 아들인 내가 놀리곤 했다. 지금 내가 미국에서 서투른 영어를 할 때 내 아이들이 내게 놀리는 상황과 너무 닮아, 어렸을 때 어머니께 놀렸던 그 벌을 이젠 내가 아이들에게서 놀림을 받는 것은 인과응보이고, 어쩌면 어머니께 놀렸던 대가를 내 아이들에게서 지금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인 지도 모른다. 내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