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고마운 점은 1년간을 서로 같이 지내면서 아이들이 무척 밝아졌다는 것이다 “이모~. 이사가.” “이사? 이사가 뭐야?” “응. 다른 집으로 가는거야.” “우리 모두?” “아니, 이모랑, 이모부랑, 큰 오빠, 작은 오빠만 가.” “그럼 나는?” 세돌이 갓 지난 작은 딸 아이와 내 여동생과의 대화다. 여덟명을 한 식구라고 생각한 작은 아이는 같이 살던 작은 이모가 이사간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않는 듯 여러번 되묻고는 같이 가자고 졸라댄다. 부여에서 개원을 하고 생활은 논산에서 하다가, 대전으로 이사온지 벌써 1년여가 지났다. 결혼을 한후 연년생으로 딸 둘이 태어났다. 큰아이는 시어머니께서 돌까지 키워 주셨고, 작은 아이는 친정 어머니가 키우시다가 백일 이후로는 아르바이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키우게 되었다. 그런데 작은 딸아이가 10개월쯤 되었을 때이다. 집에 온 손님이 둘째 아이의 눈이 이상하다고 하였다. 내사시가 생겨있던 것이었다. 나중에야 원시 때문에 생기는 조절성 내사시라는 것을 알았지만, 당시에는 이 아이가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남의 손에 커서 그런가하고 많은 죄책감을 갖기도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내 아이를 내가 직접 돌볼 수
소리의 율동 경기 용인 김태진 치과 원장 ’77 경희치대 졸업 ’98. 9: 해너미 사진전(인사동 백송화랑) ’99.12: Y-Photo 사진전(인사동 경인 미술관)
무슨 얘기냐구요? 소위 말하는 인터넷상에서 화상채팅을 이용한 치과화상진단상담방을 시험 운영중에 일어난 사례를 소개한 겁니다. 헉! 할아버지닷 외마디 비명을 내뱉고 달아나는 10대의 네티즌들 내가 과연 이들과 치과와 관련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한편으론 은근히 오기도 발동했다. 무슨 얘기냐구요? 소위 말하는 인터넷상에서 화상채팅을 이용한 치과화상진단상담방을 시험 운영중에 일어난 사례를 소개한 겁니다. 주위에 있는 여러 동료, 선후배 선생님들이 박은기 사고(?)친다고 걱정 많이 하시는 가운데 원격진료의 가능성과 효율성을 확인하려고 덤벼들다가 팔팔하고 거칠 것 없는 꿈나무들에게 보기 좋게 당한거죠. 뒤늦게 인터넷은 배워가지고 또 강남구 정통부이사인 오원장이 우연히 건네준 PC 카메라를 컴에 설치한후 그 신기한 기능과 이용 가능성에 매료되어서 늙은이, 아저씨,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애써 꾹꾹 참으며 치과에서의 화상진단상담을 시도했으니 어찌 어렵지 않았겠습니까? 우선 채팅때의 기본 상식도 부족했고 채팅 주 세대의 문화와 마인드가 전혀 생소했기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으며 화상채팅이 가능한 사이트를 찾으러 오마이러브, 트루캠등 여러 사이트를 돌아
외로움, 고독 김소희(作) 충북 청주 백치과 백홍우 원장 부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사진사당’회원
참 우스운 일도 생겨났다. 항상 괜찮냐고, 아프지는 않았냐고 묻는 것은 나였는데, 그게 뒤바뀌었다. 환자들이 먼저 묻는다. 자신이 마치 의사인양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도 있다. 정 힘들면 다리 낫고 천천히 하자는 환자분도 계신다. 내가 사는 집에서 치과까지는 운전을 해서 45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멀다면 멀다고 할 수 있는 거리지만 그다지 멀게 느껴본 적은 없다. 아마 한라산을 넘으면서 매일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출퇴근을 해서일까? 또, 높낮이가 다른 3가지 코스가 있어, 기분따라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한가지 즐거움이다. 아마 나만큼 멋진 출퇴근길을 가진 선생님은 드물거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일하는 곳에 이런 기분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 중의 하나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나의 출근길이 더 행복해지고 있다. 아프기는 하지만... 수퍼에 가는 길이었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뛰어가는데, 딱 소리가 나면서 발이 삐긋하더니 숨이 탁탁 막힌다. 아픈 것을 억지로 참고 점심때까지 겨우겨우 진료를 보았는데, 나아질 기미가 안 보여서 병원에 가 보았더니 뼈가 부러졌단다. 뼈를 잇는 나사 같은 것
기억의 단절 박윤기 사진작가협회 외원 경기도 안산대한치과의원
직업은 못속이는지 치과 간판이 눈에 들어 왔다. 자동차로 올라온 일반 관광객은 30분밖에 시간이 없어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 일행은 여유롭게 이런저런 모습으로 천지의 모습을 어떻게 그대로 담아갈까 고민하며 개인의 역사에 남을 사진을 찍었다. 우리일행의 단장인 김원익(인천 현대칼라 대표)선배는 탁월한 사진기술과 장비로 파노라마사진, 어안사진 등 여러모양의 사진으로 일행의 모습을 멋지고 의미있게 담아내 주셨다. 한시간쯤 벅찬 마음으로 구경을 하고 내려오려는데 멀리서 구름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천지를 덮치는 것이었다. 듣던대로, 우린 맑은 천지를 보았지만 그때 막 올라오는 관광객은 구름덮인 백두산과 천지만 보고 가게 된 것이다. 죽을 때까지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천지와 만주벌판의 모습을 머릿속에, 눈의 망막세포에 사진찍듯이 각인시키며 내려왔다. 다음날, 장백폭포로 해서 백두산 천지까지 등산을 하려고 갔더니 등산로가 폐쇄되었다고 했다. 백두산 구경에 더없이 훌륭한 코스인데, 낙석으로 인한 관광객의 사망사고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백두산은 자연생태계가 온전하게 보존된 지역으로 1980년 유네스코에 의해 ‘백두산 국제 자연 보호구’로 지정되었다.
정상에 선순간 ‘아! 천지로구나’ 가슴이 뛰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2000년7월15일 새벽 5시 9박 10일간의 일정으로 인천을 떠나 설레는 마음으로 백두산을 향했다. 내가 속한 LOOK스케이팅클럽은 매년 환경보호 캠페인의 일환으로 사이클 대행진을 하는데 이번 등정은 날로 심각해지는 지구촌의 대기오염을 경계하고 환경의 중요성을 알린다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지금까지 백두산을 가려면 항공편으로 서울에서 북경을 거쳐 연길로 해서 가거나, 배편으로 인천에서 대련이나 천진으로 가서 연길까지 기차로 갔는데 지난 5월부터 속초항에서 출발하여 러시아 자루비노를 거쳐 훈춘, 연길 지역으로 육상운송을 연결한 최단거리 해륙교통로인 백두산항로가 열려서 시간을 단축시키게 되었다. 속초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동춘 카페리에 오르니 오후2시. 뱃고동을 울리며 동해의 공해상으로 나갔다. 검푸른 망망대해는 하늘의 변화에 따라 색을 달리하고 우린 북으로 달리고 있었다. 18시간의 항해 끝에 다음날 아침9시. 배는 소련의 작은 항구 자루비노에 도착했다. 낙후한 항만시설, 경비병의 굳은 표정에서 그 옛날 강국 소련의 모습은 간데 없고 남루한 군복을 입은 앳된 러시아 국경수
새벽 물감 새벽 일출에 물든 동해의 물방울 홍정표(作) 경희치대 구강내과 교수 1997~1998:한국사진작가협회 주최 전국사진공모전 가작 및 입선다수 1999:한국현대사진가회 주최 전국사진대회 대상 1997~현재:한국현대사진가회 풍경분과 부회장
그럼 어떻게 하면 복이 생기는 것일까? 과연 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복이 생기게 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잘 사는 사람을 가리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 좋은 집안에 태어난 사람을 두고 복을 타고났다고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은 대체로 복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그 사람이 똑똑하고 뛰어나더라도 박복하면 측은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가 복이 많기를 원하게 되며 그러기에 복이란 우리 모두가 바라는 소망인지도 모른다. 옛날사람들은 그 복을 구체적으로 오복이라 하지 않는가? 장수, 부, 귀, 강령, 자손증다, 다시 말해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 물질이 풍요로운 것, 남에게 존경받는 것 그리고 건강과 자손이 번성하는 것들이다. 그 외 부모복, 처복, 남편복, 시험복, 관운복...등이 있다. 과연 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복이 생기게 되는 것일까? 한자의 복(福)자를 잘 들여다보면 복이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복(福)자는 보일 시(示)옆에 한 일(一)자를 긋고 밑에 입 구(口)자와 밭 전(田)자를 쓴다. 다시 말해 “한 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밭을 본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소견이며, 밭은
낙엽 그 이후... 유인상 (作) ’88 단국치대 졸업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강원도 횡성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