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정취 묻어나고… 굴 비 최용묵 ’43 경성치과 의학전문학교 졸업 경성치학전문학교부설병원 치과 근무 ’71 아마추어스케치대회 미술협회장상 ’80 제1회 개인전 (서울신문사 갤러리) ’83 사단법인 한국 일요화가회 회장 ’90 제2회 유화전 (신세계 백화점 화랑)
이제 교수님은 별로 쓰실 일도 없으시잖아요. 그러니 외모나 점잖게 잘 가꾸시는게... 외모냐 기능이냐,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우리가 살다보면 선택을 결심해야 할 일이 많다. 선택에는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고, 판단에는 자신이 쌓아올린 지식과 겪어온 경험 그리고 무언지 모르게 이끌리는 감정이 바탕이 되어서 마음을 정하게 된다. 순간의 선택이 때로는 평생을 후회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기도 하므로 우리는 선택을 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또는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대체로 좋은 것, 기쁜 것 그리고 무엇을 얻게 되었다는 만족일 수 있겠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선택한 것 이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뜻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자신이 치과의사가 되었다고 주위에서 축하해 준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수많은 좋은 직업을 다 포기한 것이고, 좋은 배필을 한사람 얻었다면, 이 세상의 자신의 배필 후보로 찍을 수 있는 수많은 이성을 포기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릴 때 가졌던 꿈을 이룩해 나가는 것이 인생의 삶이라면, 이룩한 것 이외에는 점차 포기해 나가는 것 또한 인생이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선택의
21세기 여인의 향기 Digital Madonna Computer Graphic 129MB, 119×119㎝, photoshop, 3D Max 1998 백철호 (作) 83년 서울치대 졸업 서울치대 미술반 ‘상미회’ 회원 정하익·황영환·백철호 3인전 예정 (10월27일~11월2일 부산 전경숙 갤러리 11월4일~11월10일 서울 청화랑)
내 이름은 김영삼이다. 쭉 그랬었다. 가끔씩 친구들이 농담을 할 때 김영삼은 나쁜사람이라고 욕을 하며 놀리고는, 내가 화를 내면 진짜 김영삼한테 그랬다고 하곤 했다. 유치한 농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그 사람이 진짜 김영삼이면 나는 가짜 김영삼인가? 아니 내가 가짜란 말인가? 물론 친구들이 단어를 잘못 선택한 거다. 대통령 김영삼이라든지, 나이든 김영삼이라든지 여러 가지로 다르게 표현했어야 했다. 이름이 김영삼이라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워서 좋지만, 정말 손해본 일이 너무 많다. 어느 집단에서건 조용히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정읍에서 태어나서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그 동안 너무도 힘들게 살았다. 예전에 나는 남들이 이름가지고 놀리면 ‘아마 당신은 전라도에서 김영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겁니다.’ 라고 대꾸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세월엔가 이젠 대한민국 어디가나 살기가 힘들게 되었다. 북한에도 못 간다. 어차피 전라도에서 ‘김영삼 치과’는 좀 힘들 것 같고 거제도에다 ‘멸치치과’나 차리려고 했는데.. 정말 그나마도 힘들게 되었다. 난 하여간 그 사람이 정말 싫다. 내 아이디는 항상 a18032 이다. 남들
최초가 최후가 되는것 逸筆章章不求形似 한지에 수묵 56×97㎝ 김을식 (作) 80년 서울치대 졸업 像-그이후전(1994-2000) 대구일요화가회전(1989-2000) 상미촌전(1979-1999) 現 금백치과 원장
굽은 길과 산으로 맞닿은 실개천 사이 사이 가을이 묻어 있습니다. 운악산 오세형 (作) ‘80 연세치대졸 現 성심부부치과원장 ‘98 2인전 ‘운현궁’외 단체전 다수 아그모 및 일요화가회 단체전 다수
낯설은 이정표, 세로로 주렁주렁 매달린 신호등, 정말 뚱뚱한 사람들, 모두가 영어로 말하는 것으로 난 이미 이국의 문화에 묻혀있는 듯 했다. 학교에서 제공한 아파트에 사시는 교수님집에 들어서자 역시 바닥은 모두 카펫이다. 거실과 주방이 있는 1층, 빛이 들어오는 지하, 침실과 욕실이 있는 2층, 우리나라 주택과는 다른, 보다 실용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 곳이 내가 이국만리에서 유일하게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내가 가져온 짐들 속에는 고춧가루 1년 분이 있었다. 그걸 받아들고 좋아하시는 사모님의 얼굴과는 비교가 안되게 담배를 가져온 나에게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미소를 주신 분은 교수님이었다 국산 담배 This 10보루... 빠듯한 생활을 하면서 1보루에 100달러나 하는 담배를 사서 피우는 일이 무척이나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기내식으로 속이 편치 않았던 나에게 모처럼 김치에 먹는 찌개 백반의 메뉴는 꿀맛이었다. 한국사람이 미국에 가면 평소 한국에서 먹는 김치량의 3배 정도를 먹는다며 고춧가루가 넉넉해진 것에 너무너무 행복해 하셨다. 이모저모로 로체스터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3500여명 학교 아파트 내에도 MBA과정의 한국사람들도 있었고 서로에게
두번째 급강하에 마치 시골길을 완행버스타고 가는 것처럼 요동하는 가운데 내 옆에 탄 공인회계사가 한마디 거든다. "어! 이러다 떨어지는 거 아냐?" 이제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새 천년이라고 떠들던 때가 엊그제 같더니 벌써 한해를 마무리해야하는 결실의 계절인 것이다. 해외라곤 제주도를 가본 것이 전부였던 내가 미국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쩌면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기 전에, 평범한 개업의로서 젖어있는 나태에서 헤집고 나오기 어려운 시기에 이르기 전에, 뭔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였다. 그렇다고 무조건 떠난 것은 아니다. 공항터미널에서 수속을 밟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과연 미국을 다녀올 수 있을까? 가이드도 없이 혼자 몸으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까? 내 자신에게 "넌 할 수 있어!" 라고 체면을 걸어보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 이미 비행기는 2만 피트를 넘어 솟아오르고 있었다. 여행을 가는 사람, 출장을 가는 사람, 겉으로 보아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보잉 747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면세점에서 담배 2보루 이상은 안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나는 그림을 그립니다 피아노 콘서트 - Adagio G.moll,Love 박우성(作) "91 단국치대졸 "99 영남미술대전 특선
나는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가면서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앉아서도 온통 시만을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시인이 되는 길은 뜻밖에도 너무나 빨리 내 앞에 열렸다. 최근에 나는 ‘푸른책들’에서 라는 동시집을 펴냈다. 나는 요즈음 이 책을 꺼내어 들고는 물끄러미 표지를 쳐다보거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는 습관이 생겼다. 마치 오랜 추억이 깃든 사진이 가득한 앨범을 들춰보듯 이 책을 어루만지는데엔 그만한 사연이 숨어 있다.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많은 꿈을 꾸었다. 화가, 고고학자, 건축설계사, 영문학자…… 그 꿈들은 하도 여러 가지여서 다 생각나진 않지만 그 중에서도 시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 가장 간절한 꿈이었던 것 같다. 요즈음에도 나는 치과의사이거나 시인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을 끊임없이 꾸곤 한다. 하지만 좋은 시를 쓰는 진정한 시인이 되고 싶다는 꿈이 여전히 내 가슴 속에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시인이 되려면 대학에 가서 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즈음에 나는 오랫동안 내 꿈에 걸쳐져 있던 사닥다리를 내려야만 했다. 나는 내 삶의 미래가 거쳐야 할 몇 가지 현실적인 고
황영환 (作) "1974 서울치대졸 아미 8인전 참가 (1996.6.22~30, 부산 전경숙 갤러리) 천생연분전 참가 (1999.12.27~31, 부산 전경숙 갤러리) 1998~2000년 상미전 참가 (서울치대 상미회) 여백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편안하게,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는 개인 작품 사진 및 그림 또는 기타 작품사진을 여백이 찾고 있습니다. 연락처 : 02-465-5563~5 E-mail : kdanews@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