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의 사명은 자연치아를 살려 오래오래 쓸 수 있도록 치료하고 치료법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치과에서 행해지는 치과 진료의 대부분이 자연치아를 살리기 위한 치료술식이다. 보존치료, ENDO, 치주치료 등 진료의 대부분이 그렇다.또 지금까지 우리 치과의사들은 이 목표달성을 위해 다 썩어 망가진 치아 하나라도 살리기 위해 애지중지 치료하고 기능회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왔다. 이것은 당연하고 마땅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치과의사수 증가, 황금만능주의, 윤리교육 부족으로 인한 윤리의식의 결여 등으로 몇몇 치과의사의 경우 다소 문제점이 야기된 경우가 있었다고 본다.그래서 ‘자연치아 살리기 운동’이 조직체를 갖추고 홍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전체 치과의사가 살릴 수 있는 치아를 빼도록 유도하고 자연치아를 살리지 않고 있다고 호도되기 쉽다는 점이다. ‘자연치아 살리기 운동’이 외부로 확산되면 될 수록 치과의사에 대한 불신은 점점 커지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치과의사들은 ‘자연치아 살리기’를 하지 않았다는 자승자박의 결론에 도달하고 오해를 불러 일
어느 수도원에 여러 명의 수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다른 수사들로부터 ‘땡땡이 수사’라고 불리우는 수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예배시간에도 가끔 지각하고 기도시간도 잘 빼먹고 복장도 불량스러웠기 때문에 수사 같지 않는 수사라는 뜻으로 그런 별명을 얻은 것입니다. 어느 날, 수사들 모두가 죽어서 천국에 갔습니다. 그리고 땅에서의 삶을 평가 받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땡땡이 수사의 점수가 높게 나왔습니다. 그의 행실을 잘 알고 있는 동료들이 부당하다며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땡땡이 수사는 수사가 된 이후 의식적으로 남을 비판하고 판단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쩌다 의견충돌이 있을 때에도 그 자리에서 즉시 다른 사람과 화해했다. 남을 비방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 자리에서 슬그머니 나와 귀를 씻었다. 나는 분명히 성경에 ‘남을 판단하지 않으면 판단 받지 않으며 용서하면 용서받는다.’고 했다. 땡땡이 수사는 판단하지 않았으니 판단 받을 것이 없고 용서 했으니 나도 그의 모든 것을 용서했을 뿐! 그에게 특별한 점수를 더 준 것은 아니니라.” 프랑스의 뤼시앵 레뇨가 사막 교부들의 이야기를 모아 쓴 ‘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한다는 뜻으로 우리말 표현 가운데 ‘누워서 떡먹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쉬운 것은 ‘떡 먹고 누워있기’일 것입니다. 사실 누워서 떡 먹는 것은 쉽지도 않고, 음식에 체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본격적인 피서철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산과 바다를 찾아 쉼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실 가보면 수많은 인파와 무질서한 행락객들 때문에 짜증스러운 휴가를 보낼 때도 많습니다. 돈 안들고 즐겨 찾을 수 있는 피서지가 4곳 있다고 합니다. ① 방콕 : 방구석에 콕 박혀 지낸다. ② 방글라데시 : 방안에서만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③ 동남아 : 동네에 남아있는 아이들하고 논다. ④ 하와이 : 하루종일 와이프하고 이불속에 있는다. 뉴욕시에 돈 많고 엘리트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습니다. 한 부호가 어느 날 6개월 동안 유럽여행을 하게 됐는데 그에게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내가 모아 둔 이 골동품들을 누군가 가져가면 어떻게 할까?”하는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최신형 도난방지기를 설치하고 무서운 개를 두었어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 직전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곧 바로 뉴욕뒷길에 있는 화방에 가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절대공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공간을 채우시지 않으면 인간은 공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성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절대 공간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존재라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기나긴 여행길과도 같습니다. 그 여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돌아갈 곳. 즉 출발한 곳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남부의 칼리하리 사막에는 독특한 종류의 산양들이 살고 있습니다. ‘스프링복(Springbok)’이라는 산양은 보통 20여마리씩 모여 풀을 뜯는데 때로는 수만 마리로 불어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이동하면서 풀을 뜯다가 행렬의 뒤쪽에 있는 산양들이 풀을 차지하려고 앞쪽으로 비집고 나올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뒤에 있던 양들이 앞으로 파고 들면 앞서가던 무리는 지지 않으려고 뛰기 시작합니다. 앞에서 뛰니까 뒤에서도 뛰고, 뒤에서 쫓아오니까 앞에서도 뜁니다. 결국 모든 양떼들은 전속력으로 달리게 됩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맹렬히 달립니다. 숨가쁜 질주가 계속됩니다. 왜 뛰어야 하는지, 어디로 향해 달리는
본지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의료광고 심의기준’을 토대로 의료광고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Q&A를 수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주> 의료광고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심의신청을 했는데 기간과 비용은 얼마나 되나요? 의료광고 심의위원회는 신청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승인, 수정승인, 불승인 결과를 신청인에게 통지하게 됩니다. 단순한 의료광고의 경우 심의위원장 직권으로 결정할 수 있어 기간이 단축되지만, 학문적 해석을 요하는 내용의 경우 사안에 따라 관련 학회에 의뢰하게 되므로 심의기간이 다소 길어질 수 있습니다. 비용은 각각 위원장 직권 심의 5만원, 일반심의는 10만원, 전문 학회의 의견조회가 필요한 경우 20만원입니다. 최근 ‘○○○’이라는 새로운 술식을 습득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의료광고에 게재해도 무방한가요? 의료광고를 할 수 있는 의학용어의 범주는 신의료기술 평가를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신의료기술을 평가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특허출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공식적으로 통과하지 않았다면 인정되지 않습니다. 단, 관련 전문학회의 인정을 받은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오던 사람이 조종석으로 다가가 권총을 머리에 대고는 무서운 얼굴로 조종사를 위협합니다. “기수를 디트로이트로 돌려!” 조종사는 대답합니다. “선생님, 이 비행기는 원래 디트로이트행인데요.” “어, 그래요?” 멋쩍은 얼굴로 그 사람은 자기자리에 돌아가 앉았습니다. 이 어설픈 납치자의 실수는 최악의 비행기납치 미수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인생에 있어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고 합니다. 사막을 여행할 때 중요한 것은 시계가 아니라 나침반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토머스 카알라일’은 “목적없는 사람은 키 없는 배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는 사람들이 뚜렷한 사람의 목적이나 사람다운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고 있습니다. 어떤 배가 항로를 이탈해 높은 파도와 싸우다가 겨우 무인도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뒤여서 할 수 없이 승객들은 이 섬에 장착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무인도에서 몇 달동안 살 수 있는 식량이 남아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땅은 비옥해서 씨앗을 심기만 하면 몇 달 후에는 풍성한 식량을 추수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들은 씨앗을 심기 위해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모든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 없나니.”(전도서1:8)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여유롭고 풍족하게 살던 제왕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만물이 얼마나 피곤한가를 말하면서 그는 한술 더 떠 온 우주 만물이 피곤하다고 했습니다. 하늘의 달과 별도 피곤하고, 물과 나무도 피곤하고, 동물도 피곤하고, 물고기도 피곤하고, 피곤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인간은 유달리 피곤함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은 정신 없이 복잡하고 너무 빨라 도저히 숨쉴 틈 조차 없을 정도로 전쟁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고백처럼 그야말로 모든 것이 피곤한 시대입니다. 과거에는 논밭에 나가 노동을 하면서 느끼는 육체의 피곤이었다면 오늘날은 심리학자 ‘하드 필드’의 분석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피로의 대부분은 정신적인 데서 비롯한다. 순수하게 육체적인 원인에서 오는 피로는 오늘날 극히 드물다”는 말에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특별히 요즘, 아버지들은 더욱 피곤합니다. 몇 해 전 ‘아버지’라고 하는 소설이 인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서기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화려하게 시작한 어느 남자가 결혼
오래전에 한 신문사에서 도둑의 권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좌담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도둑방지 세미나’라고 할 수 있는데, 쟁쟁한 전력을 가진 그들의 발언중에서 이제는 상식이 돼버린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도둑들은 집털이를 할 때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으면 의욕이 상실돼 대개의 경우 도둑질을 포기하지만 반대로 벗어놓은 신발들이 무질서하게 멋대로 널려 있는 집을 보면 마음놓고 도둑질을 한다는 것입니다. 서양속담에 감사하는 자의 마음에는 마귀가 씨를 뿌일 수 없다고 합니다. 말세의 특징 중 하나가 ‘감사치 아니하며’(딤후3:2)입니다. 1860년 9월, 미국의 미시간호수에서 유람선 한 척이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배에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배의 침몰과 함께 호수에 빠져 죽게 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대학 수영 선수였던 스펜서가 있는 힘을 다해 17명의 생명을 구출해 낸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람들을 구한 그의 영웅적인 행동을 대서특필 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R.A.토레이 막사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집회를 하게 됐습니다. 토레이
일반적으로 환자는 치료 결과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므로 의사가 환자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함으로써 불안감을 해소시키고 적절한 진료를 받도록 북돋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환자가 이미 어느 정도 자기 상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면담을 할 경우(Informed patient) 일반 환자에 비해 의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거나 반대로 불평의 정도가 커지는 경향이 있는데, 최근에는 점점 더 많은 환자들이 인터넷을 포함한 다양한 경로와 다른 병원에서의 진료 경험을 통해 사전 지식을 가지고 진료에 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의료의 경우 정확한 지식의 묘사만으로는 부족하며 환자의 불안과 관심 사항을 파악해 적절한 설명과 함께 의사의 태도, 행동 등을 통해 환자가 그 의미를 이해하고 감동 받아서 적절한 대응을 하도록 정보의 전달과 감정의 지지(psychological support)를 같이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의사가 눈을 쳐다보면서, 자주 미소를 띠고, 서두르지 않고 편안한 자세로, 환자의 말을 재촉하지 않는 의사를 선호하게 된다.그리고 환자와의 Communication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다음 6가지 단계에 따라
우리나라가 1980년대 까지만 해도 한자리수였던 이혼율이 1990년에 11.4%로 두자리수를 기록하더니 200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하루 평균 352쌍이 이혼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의 기본적 단위인 가정공동체가 급속히 붕괴되면서 가족해체의 비극적 결말을 낳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상당한 비율이 황혼이혼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위기의 가정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오래전 SBS TV 프로그램중 ‘세상만사’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무대로 초청해서 여러가지 게임을 하는 프로였는데 아주 인기가 높았습니다. 한번은 시골에 사는 70대 후반의 부부가 초대를 받고 이 무대에 나왔습니다. 이분들에게 주어진 게임은 할머니 머리 위에 넉자로 된 한자말을 띄워놓고 할아버지가 설명을 하고 할머니가 알아 맞추는 것이었는데 할머니 머리위에 뜬 글자는 ‘천생연분’이였습니다. 결혼생활 55년이 넘는 이 할아버지가 문제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내뱉은 첫 설명은 이것이었습니다.“당신과 나 사이” 할머니가 대뜸 대답할때 “웬수” 놀란 할아버지가 당황하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두자
한국사람들은 보통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주로 “진지를 잡수셨어요?”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이는 보릿고개를 넘기느라 겪는 배고픔과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인사말이었던 듯 합니다. 어쩌면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도 안녕 할 수 없었던 우리민족의 과거사를 반영하는 인사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우리처럼 그 시대 형편을 반영하는 인사말을 가진 민족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똑 같이 “샬롬”(당신에게 평안이 있기를)이라는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평화는 민족의 한이자 열망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지명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 하게도 예루살렘 만큼 전쟁의 참화를 여러번 경험한 도시도 드뭅니다. 예수살렘은 지금까지 20번 이상 무력에 의해 주인이 바뀌는 운명을 겪었고, 과거에는 거의 10번이나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는 아픔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평안’이라는 뜻도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 낯선 사람 하나가 기웃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