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오전 부로 문재인 대통령이 집무를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은 좌우로 갈라진 대한민국을 어루고 보다듬어 잘 봉합해야하며 그 동안의 국정 공백을 메우고 산적한 현안들을 서둘러 하나씩 해결해 가야 합니다. 10년만의 정권 교체인 만큼 숨가쁜 국정 운행과 격변 수준의 변화가 예상됩니다. 갑작스런 대선과 갑작스런 정권 교체 상황에서 치협과 치과계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발 빠른 대응이 요구됩니다. 저녁 식사 후 가족들과 거실에 모여 과일도 먹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날이면 다같이 9시 뉴스를 시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 아버지가 재미있는 드라마를 두고 왜 재미없는 뉴스를 열심히 보시는지 이해가 힘들었습니다. 제가 다시 그 나이가 되어 세상 돌아가는 데에 관심도 생기고 하다보니 나라의 수장이 국가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와 그 중요성을 알고, 국가 정책이 저희의 삶과 업에 얼마나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치관에 따라 치과계는 많은 부분이 변하고 발전해갈 것입니다. 이번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의료 정책을 살펴보면 우선 공공의료를 강조하는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이번 정부의 의료정책 기본
우리 대한민국치과계에 때가 이르러, 일상의 진료현장은 아닐지라도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슈일 수 있는, 우리들의 리더를 선택하는 이벤트에 ‘모두 관심을 기울인다’라는 옳은 결정과 ‘참여’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존경하고 친애하는 우리 치의님들 모두, 그 곳이 어디였든, 어떤 목소리였든 각자 보여주신 치과계에 대한 사랑의 몸짓이었고 헌신의 실천이셨음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어느 길목에서는 서로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던 순간들도 있었었지만… 그건 왜였을까라는 질문에 이런 싯구를 떠올려봅니다.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소동파- 횡간성령측성봉 橫看成嶺側成峰 원근고저각부동 遠近高低各不同 불식여산진면목 不識廬山眞面目 지연신재차산중 只緣身在此山中 횡으로 보면 산줄기, 측면을 보면 봉우리,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보는 이마다 다르니, 진정 알 수 없노라, 여산의 참모습을. 그것은 이 몸 산중에 있기 때문이리라. 이제 사위를 덮었던 안개도 걷히고, 대략 산중을 벗어나 원경을 바라볼 자리로 돌아들 오신 듯 싶습니다. 여산의 ‘참모습이 무엇이다’ 라고 뜻을 모으기 힘들었던 까닭은, 우리 모두 그 산에 오른 길, 머물렀던 자리, 내려온 길이 서로 다르다보니 바라
사회 환경은 우리의 의지나 바람과 관계없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한다.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의 책자에 의하면 세상은 안전지대와 안락지대로 구분된다. 여기서 안전지대는 사회의 영역이고 안락지대는 개인의 영역이다. 개인의 안락은 사회의 안전 속에 있을 때 진정한 안전지대가 되는데 만일 안전지대가 이동했는데 개인의 안락지대가 그대로 머물러 있어 두 개가 분리되면 그 곳은 더 이상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 개인은 사회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전지대를 따라 이동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익숙한 상태를 고수할 것인지 선택을 하게 된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안전지대와 안락지대를 일치시킨 사람들이다. 세상과 상황이 변했는데도 이전의 안락지대에 머무는 것은 개인의 도태를 의미하며 더 이상 안전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더 이상 보호할 수도 없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다가올 미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의 안전지대에 머무르려면 스스로 시대에 맞는 변화와 발전을 해야 한다. 우리의 발전과 변화가 사회에 주는 영향은 경제현상에서 자주 언급되는 승수효과와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승수효과란 ‘나비효과’ 또는 ‘도미노 현상’
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치과대학으로 학제가 환원되어 십 수 년 만에 스무 살 배기들이 모여 있는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젊은 세대의 다양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강의실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다소의 시간이 걸렸다. 스마트폰을 만지작대며 끼리끼리 무언가를 얘기하는 학생들의 웅성거림 속에서 과거 학생들의 통제 수단으로 활용하였던 지식의 권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사실 교수자가 수업시간에 얘기하고자 했던 지식들은 ‘구글’과 ‘유튜브’에서 이미 다 무상으로 유통되고 있다. 더 이상 학생들은 지식의 권위에 고개를 숙이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생활 패턴은 어떠할까? 우리가 사는 오늘의 세상은 언제 어디에서나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편재성(ubiquity), 졸업장이 더 이상 신분과 번영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자격증의 가치 하락, 글로벌시장, 국가고객만족도 등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는 모든 가치의 순위화, 그리고 “Z세대”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을 일컫는 Z세대는 태어난 그날부터 디지털과 함께 생활해왔던 1990년 이후 출생한 사람을 의미한다. 디지털 원주민이라고 불리는 이 세대는 정보보다는 영감을 찾아다니는 특징을
역사가 기록된 2800년 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에서도 죽음의 의미, 삶에 대한 인식이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과거나 지금이나 인생사는 비슷하다고 생각 된다. 오히려 2500년 전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동양의 공자, 맹자, 석가모니 등 요즘보다 더 많은 성인, 현자들이 나온 것을 보면 과거가 현재보다 철학적으로는 더 깊이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예수의 탄생, 로마 시대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국교화, 그 후 5세기의 로마 멸망, 흑사병의 창궐, 8세기 중세 교황청의 종교재판, 면죄부 판매와 무슬림의 출현, 그리고 11세기의 십자군 전쟁,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단테의 신곡 출현으로 시발된 그리스 로마문화를 동경하고 돌아가려는 르네상스 시대, 산업혁명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역사에서 보면 종교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도 히틀러가 종교적 믿음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 600만 명을 살해한 것을 비롯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종교 전쟁으로 5000만 명이 살해되는 것을 보면 양심의 문제, 참나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 율곡
요즘 신문지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화두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접하고 있을 것이다. 2016년 다보스 세계경제 포럼에서 클라무스 슈밥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이라고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선언했다. 생존할 것인가? 도태될 것인가? 언젠가 TV프로에서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제조 공업도시 울산의 불이 꺼지고 있다는 울산시장의 말과 같이 2010년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는 제조업의 성장률은 현재의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인도가 없을 때는 cost down전략으로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고 value up전략을 위해서 새로운 동력을 얻어야 한다. 이런 새로운 동력이 최근 회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아닐까 한다. 혁명이라고 까지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무엇일까? 인공지능, 센서, 클라우드, 빅데이터, 알파고, 사물인터넷 등이 언뜻 떠 올릴수 있겠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1차, 2차, 3차 산업혁명같은 기술적인 부문만이 아니라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달리면서 음악이나,
나라가 온통 시끄럽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 되면서 각 정당마다 새로운 대통령이 되기 위한 예비후보들의 경선이 뜨겁습니다. 우리 치과계에서도 이번에 투표를 합니다. 아니 오늘 진행 중입니다. 세 명의 후보들이 저마다의 공약을 내세우면서 정견발표를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드디어 오늘 뚜껑이 열리는 날입니다. 그럼 여러 유권자 여러분, 아니 우리 치과선생님들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치과의사협회장을 뽑을까요? 미국에서 최고 공직자를 뽑을 때 선정기준은 최고의 능력, 최고의 도덕성, 최고의 전문성이라고 말들을 해왔습니다. 이 3가지 기준을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로 바꾸어 3C로 요약을 합니다. 실력(Competence), 인격(Character), 헌신(Committment) 어떻건 간에 투표를 할 때 보는 기준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자기 지역이냐, 아니냐로 결정합니다. 제 생각일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치성향과 비슷한가 아닌가를 보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방송에 나와서 매력이 없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여간 많은 분들이 그때 그때마다 다른 말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게 됩니다. 원하는 대로 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일들이 찾아옵니다. 원하는 대로 되면 좋아하고 그렇지 못하면 힘들거나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양상으로 바뀌어 갑니다. 같은 형태로 계속 지속되질 않습니다. 한 가지 성질이 극에 달하면 다른 성질로 변해갑니다. 밤이 깊어지면 새벽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해가는 양상속에서 행복하게 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누구든지 크건 작건간에 무엇인가 바라고 그것을 가지면 잠시적으로 만족을 하지만 또 다른 것을 원하며 끊임없이 추구하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 그것을 복(福)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복이라는 것이 그 사람한테 항상 유리하게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잠시도 머물지 않고 변해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추위가 심해지기 시작하는 동짓날부터 땅속에서 따뜻한 양기운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겉모습이 매우 추워지기에 사람들은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복(福)이 왔다고 만족하는 시간에 화(禍)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시작을 알지 못하고 화의 기운이 무
중국역사서의 백미인 ‘사기’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젊은 시절 전쟁과 여행 등을 통해 사회현상과 역사에 대한 견문을 넓혀 통찰력을 기르고, 자연과학분야에서 국사의 기록을 관장하는 태사령이라는 관리직까지 경험하며, 당시 중국사회 대한 이해와 시각의 폭을 넓혀 훌륭한 사관을 갖춘 역사학자로 인정받는다. 그가 모아 후세에 전하는 이야기들 중에서, “智者千慮 必有一失, 지혜로운 사람도 많은 생각 중엔, 반드시 실책이 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전쟁에서 패한 어느 장수가 답한 내용으로 겸허와 자신감이 동시에 담긴 말로 전해진다. 옛날과는 달리 숨가쁜 현대에서는 약간의 실수도 결정적 패인으로 작용하는데, 궁경에 이르러 무언가 너무 이리저리 골똘히 궁리하며 천 개도 넘는 묘수를 짜내다보면, 어느새 엉뚱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 하나 들어와 있는 지도 모르고, 그로 인해 잘 다듬어지던 지혜로운 생각들 구백 구십 아홉 개가 망쳐지는 실패와 허망함으로 해석해보고 싶기도 하다. 요즘 대한민국치과계는 온통 선거열풍이다. 2개 지부의 선거가 직선제로 마무리되었고, 이제 ‘본청, 本廳’의 선거가 진행 중이다. 학연과 지연, 친분과 조직,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플랫폼 위에서, 세대와 취
원장님, 면접 잘 보셨습니까? 2월은 새로이 배출되거나 이직을 하는 치과위생사들이 쏟아지는 구인, 구직 시즌이었습니다. 수많은 치과들이 구인 공고를 걸었고, 역시 수많은 치과위생사들이 구직 지원서를 내고 원장과 면접을 봤을 겁니다. 과연 위의 질문은 면접을 잘 했냐는 뜻일까요, 면접을 잘 당했냐는 뜻일까요? 어떻게 읽혀 지시는 가요? 슬프게도 저는 면접을 잘 못 보았습니다. 저희 치과에 취업을 희망했던 지원자분들에게 저희 치과의 장점과 희망적인 메시지를 열심히 전달했지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지난 한 달간 신규 직원 채용에 실패하였습니다. 저의 면접이 실패한 겁니다. 결국 인터넷 구인 광고 사이트에 돈만 기부한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큰 맘 먹고 투자를 한다고 컬러 강조 옵션에 2만원 가까이 추가로 썼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저는 나은 편입니다. 구인 광고를 내고 일주일에 몇 명씩은 계속 면접을 보러 오기 때문에 머지 않아 구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저에게 위로가 되는 제 주변 원장님들은 위치가 안 좋고 교통이 불편하다거나, 지역 자체가 거주 치과위생사가 적거나 하는 등의 여러 이유로 구인 광고만 몇 달째 내고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능력이다. 우리는 전달하고자 하는 뜻과 의미를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타인에게 전달한다. 의사전달의 수단은 개인과 개인, 또는 개인과 대중에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전달된다. 특히 인터넷과 SNS 매개수단이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그 전파속도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때론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다른 의도로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으며, 사건의 의미와 진위와는 별개로 원하던, 원하지 않던 전달하고자 하는 매체의 뜻에 따라 증폭되어 대중에게 전해지므로 그 진위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우리 몫이기도 하다. 우리의 생각과 의견은 대부분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해지는데 이러한 의사소통의 과정에는 ‘말 잘하는 법’과 ‘잘 말하는 법’이 있다. 정확한 발음으로 매끄럽고 논리적인 화술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말을 잘하는 것이고, 잘 말하는 것은 이러한 말 잘하는 것 뿐만이 아닌 비언어적 부분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말은 잘하지만 왠지 와 닿지 않고 비호감인 경우가 있고 반면에 말은 좀 어눌하지만 그 뜻이 잘 전달되고 왠지 전달되는 말에 믿음과 동감이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 앨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