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로맨틱한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그 만큼 우리 일상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 여겨지고, 한두 번 접해 본 사람들조차도 ‘나와는 안 맞는 술이다’라는 게 대부분의 반응이다. 나 역시도 소주와 맥주에 20여년을 길들여져 왔고 와인은 관심에도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생일을 맞아 조그만 레스토랑에 갔다가 추천해 준 와인을 한잔 곁들이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스테이크만 먹기가 좀 아쉬웠던 차라 벌컥 한 모금 들이켰다. 떨떠름하기도 하고 묘한 향도 나는 술이 스테이크랑 너무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참 신기한 경험을 하고 얼마 후 크리스마스를 맞아 뭔가 특별한 게 없을까 하다가 동네 주류백화점엘 갔다. 아는 게 없으니 점원에게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점원 왈 “크리스마슨데 샴페인 어떠세요?” 그 말에 예쁜 상자에 담긴 샴페인 한 병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예쁜 상자가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렇게 시작된 내 와인 사랑은 어느덧 4년이 되어가고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동호회에 얼굴을 내미는 정도가 되었으니 와인과의 인연은
토요일 아침 6시 30분에 눈을 뜨기 시작한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간다. 2013년 2월 참가한 아침 7시 30분부터 시작하는 독서 모임 토행독(토요일의 행복한 독서회)에 참가하기 위해 꿀잠을 자야 할 시간에 눈을 뜨고, 식사를 하고, 독서모임 하는 장소로 출발을 한다. 최근 내가 초대하여 참석한 후배 치과 원장을 제외하고는 각기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20명이 넘는 분들이 매주 한권의 책을 읽고 열띤 토론을 한다.2015년 여름휴가는 수험생 자녀가 있는 관계로 도서관에서 나만의 5일간의 휴가를 보내기로 계획했다. 여름휴가를 준비하기 위해 독서모임에서 읽는 책과 별개로 당시 관심을 가졌던 ‘재능’과 관련된 책들을 인터넷 서점에서 찾아보았다. 수많은 책들의 제목이 나왔다. 그중 30여권의 책을 구매하여 분류하고 마음 가는 책을 골라 여름휴가 때부터 읽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의 독서 습관을 잠깐 말하면 대학 노트를 한권 사서 오른쪽 공간에는 책을 읽고 느낌이 있는 구절을 필서하고, 왼쪽 빈 공간에는 필서한 내용과 관련된 삶과 느낌, 생각을 정리하였다. 여름휴가 때부터 시작한 글쓰기는 재능관련 책을 16권정도 읽고 정리하였다. 지금은 마음(괴로움, 스트레
나는 임상병리사다. 얼핏 생각하기에 ‘임상병리사가 왜 치과에?’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 역시 ‘임상병리사로서 치과에서 무슨 일을 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한다. 사실 처음 치과에 입문할 때 한 치과병원의 광고를 보고 나 역시도 ‘도대체 임상병리사가 왜 필요한 걸까?’라는 의구심으로 호기심에 문을 두드렸다. 심지어 면접을 보면서도 “대체 제가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걸까요?”라고 질문을 했을 정도다.당시 해당 병원에서는 PRP를 도입하여 대부분의 수술과정에서 진행되었고, 이때 채혈과 원심분리 등에서 임상병리사로서 하면 유리한 업무들이 많았기에 임상병리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임상 10년차의 임상병리사가 이렇게 해서 1년차로 치과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때 나이가 32살. 워낙에 건치였기에 치과라고는 사랑니를 뺄 때만 가봤던 내게(사실 아말감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진료와 재료와 기구와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도무지 따라갈 수 없었던 진료내용들…. 처음 몇 달간은 수술만 전담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수술을 많이 한다 해도 수술이 없는 시간에 멍하니 놀 수는 없기에 차차 진료실 일을 돕게 되면서 몸으로 익히는 어시스터가 되어
사람은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그 기분과 환경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 취미가 있다는 것은 반복적이고 똑같은 환경을 풍요롭고 활기차게 만든다. 같은 환경이라도 내가 어떻게 그 환경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을 참 좋아한다. 나의 생각대로 무형의 것에서 유형의 것으로 완성되어 가는 걸 보면,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어릴 때는 십자수를 해서 열쇠고리나 핸드폰 줄을 만들었고, 도장 조각이나 테디베어를 만드는 등 참 여러 종류의 만들기를 해왔던 것 같다. 결혼 전 신랑의 방에는 내가 만든 인형들이 살고 있었고, 지금은 대학교수가 된 동기는 10년 전 내가 만들어줬던 고무도장을 얼마 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었다. 또 중학교 동창 녀석들은 내가 만들어 나눠준 십자수 열쇠고리를 색이 바랜 현재까지 간직하고 있다. 막상 난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인터넷에 보면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선물 1위-정성이 가득한 십자수” 라던데, 내가 선물한 10명 중 단 1명 이라도 그걸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관하고 혹은 추억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주부가 되더니 나의
협회 임원 워크숍차 제주도에 갔다.내친김에 “거문오름”에 오르게 되었다.거문오름은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하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반열에 오른곳이다.제주도 한라산 기생화산중 하나로 숲이 우거져 검게 보여 검은오름이라고 하였다. 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나 세계 자연문화유산에 지정되었고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되여 생태환경 관광문화재로 지정 되었다.분화구내부에 울창한 수림(樹林)이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띄고 있으며 주위의 검은 용암과 어우러져 더욱 검게 보여 음산한 기운을 띄고 있다. 그래서 신령스런 느낌마저 품고 있다.탐방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받아 목에 걸고 탐방 수칙을 교육 받았다. 교사 정년 퇴직 5년이 지났다는 칠십가까이 되는 해설사의 주의사항이 마음을 짓누른다. 산나물과 꽃 나무 등 일체의 채집행위가 금지되고 환경보존을 위해 등산용 스틱, 아이젠, 구두, 우산 등 사용이 금지되고 음식물 반입도 금지된다고 강조한다. 주의사항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기고 자기마음대로 하겠다는 사람이 있어 통제요원과의 사이에 제재를 받고 다툼이 가끔 있다고 했다.자연을 아끼고 품을줄 모르는 사람에게 탐방길에 오를 자격이 있는가 생각해 본다. 초입에 들어서면 삼나무 군락지가 반갑게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고민이었다. 사춘기 때에도, 대학입시 때에도, 재수를 결정할 때에도, 결혼을 할 때에도, 개원지를 정할 때에도…. 이번 고민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해외 이민 하면 생각나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노후를 위해서’는 핑계에 가까웠다. 한국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치과의사로서의 나의 삶이 왠지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충고해주었다 ‘네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없다’고. 맞다. 100% 동의한다. 나는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라는 또 하나의 참으로 따끔한 문구를 애써 한 귀로 흘리고 캐나다 행을 강행했다.우연한 기회였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게 됐고 캐나다 면허 취득을 위한 스터디 그룹을 결성했다.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항해라는 것을 모두 알았지만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항했다. 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둘도 없는 동료가 되었다. 총 5가지의 시험을 치렀다. 1차 시험을 위해서는 해부학, 병리학, 약리학 등 기초학 공부를 20년 만에 다시 해야 했고, 수험료만 500만원에 달하고 이틀 내내 치러지는 3차 시험인 실기시험을 위해서는 프렙에 자신감을 가질 만한 보철과
어쩌다가 TJB 대전방송의 “문화를 생활화 합시다”라는 공익 캠페인에 출연했더니, 가끔 처음 보는 분에게 인사를 받는다. 불과 10여초쯤의 노출인데 미디어의 위력은 과연 놀랍다. 그림의 배경은 대전시립미술관 로비, 고 백남준씨의 비디오 작품 ‘프랙톨(fractal) 거북선’ 이다. 예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등 사기죠”라던 고인의 ‘고등’화술(話術)에 넘어가지 말라. 작품은 초당 대여섯 번 동영상이 바뀌는 4백여 대의 TV 모니터와, 수족관과 박제 거북이 등 백여 개의 오브제로 구성되어, 3,5 x 4 x 6,7m의 크기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1993년 대전 엑스포 당시 제작되었고, 시대현상을 표현함은 물론, 날개형상을 한 거북선의 노가 미래로 비상하는 진취적인 기상을 뽐낸다. 다만 전시공간이 좁아 화면 배치나 오브제의 예술적인 퍼스펙티브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음은 유감이다. 언젠가 넓은 배경을 거느린 활짝 열린 새 항구를 찾아가기 바란다. 현대문명의 배설물들을 마구 쌓아놓은 듯 불규칙한 형태 속에서 ‘시대정신’을 읽으려는 시도를, 혼돈(chaos) 속에서 어떤 로직을 찾아내려는 사색에 은유하여, 프랙톨이라는 제목을 붙였을 터이다.20년 전 치의신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언론인, 영국 사람, 항일 독립투사 배설(裵設.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선생을 아십니까?“하늘은 무심하게도 왜 그를 이다지도 급히 데려 갔단 말인가! (천하박정지여사호 天下薄情之如斯乎)” 배설 선생의 서거를 안타까워한 고종 황제의 조문(弔文)입니다. 황제로부터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했던 배설 선생은 “내가 대한을 위해 싸우는 것은 하느님의 소명이다”라고 했습니다.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민족의 자주와 독립,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생애를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배설 선생은 우리정부가 선생의 항일 언론투쟁을 높이 평가하여 1968.3.1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추서하였고, 1988년 ‘뿌리 깊은 나무’가 선정한 ‘이 땅의 사람들’이란 제목의 근대인물 88명 중 유일한 외국인입니다. 이 책은 배설 선생에 대해서 “대한제국 말기에 어떤 한국사람 못지 않게 대한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가 마침내 이 땅에서 돌아가신 언론인”이라고 찬양했습니다. 또한 ‘대한 언론인회’는 2004.3.24 ‘언론인 명예의 전당’제1차 헌정자 7분 중 첫 번째로 선정하였습니다.일제의 침탈로 국권을 빼앗기고,
서른이 되면 굉장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스무 살이 되면 자유를 만끽하며 꽃다운 20대를 보낼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여전히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취업에 대한 걱정으로, 스펙과 학점에 대한 준비로 20대 초반을 보냈다. 취업, 입학 등의 수많은 경쟁의 회오리를 지나 보내면 바래왔던 자유와 행복이 있을 줄 알았다.‘송지은’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 제목처럼 ‘예쁜 나이 25살’에 치전원에 입학한 후 또 다른 치열한 경쟁과 수많은 시험 관문을 매번 통과하고 보니 벌써 29살… 내가 상상했던 서른 즈음의 나는 10대, 20대 때의 나와는 다른 훌쩍 성장한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지만, 현실은 눈앞의 과제와 시험들을 힘겹게 헤쳐 나와 지치고 상처투성이인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자유와 남들이 말하는 행복을 여전히 원하지만, 그건 또 다른 나의 10년 뒤 모습일 뿐이었다. 그래도 25살에는 꿈을 위해 열심히 나아가는 나를 응원하며 나의 행복은 5년 쯤 뒤로 미루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생활과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주어지지 않는 일상에서
“이제 시작인가?” 본인은 며칠 전에 군의관 신분으로 전역을 하였다. 치과대학 6년, 전공의 과정 4년, 군의관 3년 후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물론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지는 7년이 되었으므로, 병아리 치과의사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정해진 커리큘럼에서 정해진 환자만 보았고, 정글이라고 불리는 사회에서의 치과의사의 생활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불안하고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비단 나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금 시기가, 치과대학을 졸업한 분들과, 공보의 또는 군의관을 마친 치과의사들이 막 사회에 적응을 하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많은 사회 초년생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또한 주변의 지인도 같은 생각을 한다. 그 동안은 정해진 과정에서만 충실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각자의 다양한 살길을 찾아가야 하고, 중요한 건 거기에 책임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머뭇거리고 혼란을 겪는 건 당연한 것 같다. 우리는 그 동안 제대로 된, 중요한 나만의 결정을 내린 적이 없으니까, 더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살길에 대해 조금이나마 같이 고민해보고 서로 격려해보자는 취지에서 이 주제
의료는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회복하는 목적을 가지고 시행되는 선의의 행위로 인식되어 왔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행위를 하는 의사는 국민들로부터 존중을 받아왔고, 의료행위는 의사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졌다. 의료인은 전문가로서 직업윤리를 가지고 전문적 기술과 지식으로 환자를 진료하였고, 이 과정에서 신체침습행위가 있더라도 정당한 행위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권리의식 신장, 의료행위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 의료기술에 대한 지나친 기대 등의 환자 측 요인과 상업화 및 전문화된 의료공급체계, 의사의 윤리의식 저하와 의료법리에 대한 무지 등의 의료공급자 측 요인 그리고 사회적 불신풍조의 만연, 분쟁해결을 위한 장치의 결여 등과 같은 사회제도적 여건이 맞물려서 의료사고 및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 의료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없는 실정이었다. 서로에 대한 ‘약간의’ 신뢰만 있다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사고라는 장면 안에서 의사와 환자는 다소 극단적인 ‘색안경’을 끼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사고란 의료행위가 시작된 때부터 끝날 때까지의 전 과정에서 야기된 예기치 않은 불상사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