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무는 대형사고들을 보면서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자괴감에 어깨가 처지는 요즈음입니다. 그럼 한국인의 DNA는 그렇게 형편없이 부정직하고, 쉽게 잊고, 편가르기 좋아하고, 급하기만하고, 무책임함이 넘치는 그런 것들로 꽉 차있을까요? 우리가 우수한 것, 다른 민족이 도저히 따라 오지 못 할 그 무엇은 없을까요? 제가 가진 주관적인 잣대와 오랜 외국 생활에서의 경험으로 말씀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는 흥입니다. 둘째는 머리입니다. 셋째는 감성입니다. 옛날 학창시절 연고전 끝나고 동대문에서 광화문을 거쳐 신촌까지 어깨 동무를 하고 뛰던 기억 나세요? 그게 우리 힘의 원천입니다.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만들어 내었던 시청앞 광장, 세계를 들었다 놓은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 것들은 한국인의 흥을 바닥에 한자락 깔고 있습니다. 세계가 놀라는 것은 어떻게 별거 아닌 듯 보이는 한국인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겁니다. 시청앞 광장 응원은 한국인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말춤이라고 했지만, 싸이 춤의 밑바닥에는 탈춤의 흥이 깔려 있는 겁니다. 우리만큼 흥이 있는 민족, 흔하지 않습니다. 둘째로는 머리와 재능 입니다. 눈썰미가 있어서 흉내 내는 것을 잘하는
지난 추석연휴 저는 서울대학교 치과대학동창회가 주관하는 키르기스스탄 의료봉사 일정에 일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이 행사는 박건배 동창회장님의 인솔하에 학부생 1명과 동문 가족 2명이 포함된 총 16명의 동문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북부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한 정도인데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역이고 인구는 550만에 불과합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과 접해 있고 구 소련에서 91년 독립한 상태입니다. 역사적으로 동서양 교류의 핵심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요충지이기도 합니다. 문성일(83년 졸) 동문께서는 1995년부터 이 나라에서 전문인 사역자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김정태(72년 졸), 김은우(95년 졸) 동문도 각각 2003년과 2006년부터 현지 치의학 발전과 선교를 위해 헌신 중입니다. 동창회에서 키르기스스탄 의료봉사를 하게 된 것은 이러한 동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일환으로서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이번 의료봉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첫째, 현지 치과의사들에게 세계적 수준의 한국 치의학을 소개하는 학술강연의 장을 마련한다
어느 날 퇴근을 하니 남편이 저녁 시간에 6세 큰 아들이 한 말을 들려주었다. 아파트 정문에 화요일마다 오는 한방족발을 사서 저녁으로 아이들과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아이가 대뜸 “아빠,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묻더란다. 남편은 정말 맛있나 보네 생각하며 “돼지발을 감초, 계피 같은 한약재를 넣어서 냄새도 없애고 된장도 넣고……”하면서 열심히 설명을 했더랬다. 차분히 설명을 다 듣고 아들 녀석이 하는 말 “아빠… 그럼 돼지는 어떻게 걸어요?” “…….” 그 날 나는 오랜만에 실컷 웃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어린 아들의 천진함에 지금까지 미소 짓게 된다.아이들은 말하는데 꾸밈이 없다. 상대방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내의 정보를 순서화해서 인과관계를 형성한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듣고 어떻게 생각할까를 미리 짐작하지 않고 자신이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에 의해서 그런 말하기는 유아기에만 허용된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 관계에서 우리는 때로 분위기에 맞게 우회적으로 거절하거나, 자신을 더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과장해서 말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아닌 척하기도 한다. 암묵적으로 공인되는 ‘
일본 센다이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구리하라(栗原)에는 신문 기자출신의 사이또 다이껜 주지가 관리하는 대림사란 절이 있다. 그곳에는 안중근 의사와 치바 도시치의 위패와 기념비가 있다. 대림사에서는 81년부터 해마다 9월이 오면 이들에 대한 추모예식이 계속 행해지고 있다. 올해는 34회로 안의사 순국 104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한일 친선 교류회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안의사는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분이다. 일본 헌병 상등병이었던 치바 도시치는 안의사 전담 간수로서 5개월간 수감생활을 같이 하면서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그분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화되어 마지막 날 형장으로 끌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경례까지 올렸다고 한다. 수감 중 안의사는 동양평화론 등을 집필했고 또 많은 유묵을 남겼다.보통 옥중 육필을 받은 사람들은 형무소장, 간수, 형사, 판사, 검찰관, 교화승 등 일인들이었다. 치바도 평소에 유묵을 하나 얻고 싶어 했었다. 사형집행 전날 “내일 오전에 형 집행이 있을 것 같다”는 정보를 흘려줬기 때문이었는지 안의사는 원하는 유묵을 써 줄 터이니 화선지를 준비해오라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종이가 없어 명주천
월출산 남쪽, 천불동 기슭에 골짜기가 있다. 땅이 후미지고 그윽하며 물은 맑고도 얕다. 층암이 절벽처럼 서서 우뚝하고, 흰 구름이 골짝을 메워 영롱하니 또한 아름다운 곳이다.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했던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하고 백운동이라고 했으며 백운처사 이담로(1627~1701)선생의 별서가 있다.특히 이곳은 제주 정의현 최초 과거급제자 오정빈의 스승 신명규(1618~1688), 영의정을 지내고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약천 남구만(1629~1711), 대사헌과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창계 임 영(1649~1696), 겸재 정 선(1676~1759)과 사천 이병연(1671~1751)의 스승인 삼연 김창흡(1653~1722), 다산 정약용(1762~1836), 초의선사 의순(1786~1866) 등 조선시대의 저명한 문사들이 즐겨 찾아 많은 시문을 남겼던 공간이다.다산 정약용은 1812년 가을 월출산 아래 백운동 원림에 놀러 와서 하루를 묵었다. 돌아간 뒤에도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잊을 수 없어 재차 초의 의순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3수의 시를 지어 붙였다. 이것이 바로 백운첩이다.백운동 원림은 원래의 모습을 잃고 황폐했다
대리석 바닥에 흥건한 피, 그 옆으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누워있는 시체, 그리고 나타나는 우리의 해결사, CSI, 형사들, 탐정들….오전 진료를 끝내고 점심시간, 나는 미국 드라마(일명 ‘미드’)에 빠져 사건, 사고, 검시 장면 등 밥맛 돋우는(?)화면들을 아무렇지 않게 보며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어려서부터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에 빠져 추리탐정 소설의 길로 접어들어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다 보고 기괴한 애드거 앨런 포의 소설까지 읽으면서 웬만한 자극에는 무뎌지기도 했으나 사이코 패스들을 처리하는 절제되고 훈련된 살인범이 주인공인 드라마 ‘덱스터’, 양들의 침묵 프리퀄에 해당하는 한니발 렉터 박사와 FBI 프로파일러 윌과의 심리 전쟁을 그린 드라마 ‘한니발’ 등은 잔인함과 그 자극도가 밥맛 돋우는 수준을 가끔 넘어서곤 한다.왜 이런 추리물을 소중한 점심시간에 보고 앉아있는 건지 나 스스로도 궁금할 때가 있다. 개원하고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초기에는 진료의 어려움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도 사람들 자체를 상대하면서 오는 피로감에 더 머리 아프곤 했다. 가끔 독특한 사람들을 상대한 경우 내가 치과의사로 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사로서의 내공이 필요한 건 아닌
단국치대 관현악단 덴타모닉스가 지난 8월 30일(토) 서울 압구정동 장천아트홀에서 제31회 정기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저희 덴타모닉스는 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입니다. 취미로 악기를 배워온 학생들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거나, 오케스트라에 입단을 하고 악기를 처음 시작하는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동아리가 1984년 첫 연주회를 시작으로 매년 가을 정기 연주회를 준비해오던 것이 어느덧 서른 한번째 공연을 치렀고, 150여명의 졸업생 선배님들 그리고 60여명의 재학생이 활동하고 있습니다.90세 할아버지가 5살짜리 어린아이 손을 잡고 같이 들으러 갈 수 있는 공연이 바로 오케스트라가 아닐까요? 다른 장르의 음악들도 좋지만 전 세대를 아우르며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특히 관현악은 매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할아버지와 손자가, 아버지와 딸이 함께 공연을 설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따뜻한 기회일까요?그것이 저희 오케스트라의 자랑이자 매력인 것 같습니다. 저희 동아리에서는 학교 재학생들이 주로 공연에 참여하지만 졸업하신 후에 학자가 되신, 치과의사가 되신 선배님들께서도 공연에서 함께 연주하십니다. 저희 동아리를 창단하신 81학번 선배
삼각산은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는 백운대(白雲臺, 836.5m), 인수봉(人壽峰, 810.5m), 만경대(萬鏡臺, 787.0m)가 큰 삼각형으로 놓여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삼각산 또는 삼봉산, 화산으로 불렸고 삼국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불렸다.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왕자인 온조와 비류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산(漢山, 서울의 옛 이름)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이 삼각산을 말한다. 그리고 조선의 수도 후보지를 찾으러 순례길에 나섰던 무학대사의 이야기에도 삼각산이 등장한다. 무학대사가 백운대로부터 맥을 밟아 만경대에 이르러 서남 방향으로 가 비봉에 이르니 “무학이 길을 잘못 들어 여기에 이른다”는 석비가 눈에 띄어 그 길로 방향을 바꾸어 내려가 오늘의 경복궁을 정하였는데, 그곳이 바로 삼각산이다.삼각산이 예로부터 부르던 지명이고, 북한산이 일제 강점기에 지명개편을 하면서 사용된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북한산이라는 이름은 본디 서울의 옛 지명인 한산의 북쪽을 가리키는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의 고증으로 밝혀진 국보 문화재 ‘진흥
제갈공명은 교묘한 계략을 펼쳐 사마의가 이끄는 조예의 군사를 호로곡이라는 좁은 골짜기로 몰아넣는데 성공한다. 사마의의 호기심을 이용하여 말 모양의 수레를 만들어 그 위에 잘 타는 군량을 싣도록 유도하고 입에는 화약을 숨겨두었다. 그 말은 그리스 병사를 숨긴 트로이의 목마가 아니라 호로곡의 목마였던 셈이다. 건기였던 그 때, 천지는 메말라 있었고 공명은 화공을 이용하여 삼국이 마치 솥(鼎)의 세 발처럼 이루고 있던 균형을 마침내 깨뜨리려는 시점에 와 있었던 것이다. 호로곡 위쪽의 촉나라 매복 병사들은 깃털 부채의 신호에 맞추어 활과 노(弩)에 불을 붙여 계곡아래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유인당해 호로곡에 갇힌 위나라 병사들은 출구가 없는 불지옥에서 비명을 지르며 몰살할 수밖에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 때 공명은 이겼다고 생각했으리라. 길고 지루한 살육의 악순환의 고리는 이 불바다 속에서 끊어지고 위나라의 멸망으로 솥의 한 발이 부러져 나가면서 한나라 유방의 피를 이어받은 임금을 중심으로 촉에 의해 대륙의 통일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했으리라.삼국지를 읽으면서 이 대목에서 항상 드는 의구심이 있다. 애초에 공명이 칩거하고 있던 시절에 유비를 삼고초려 시켰던 이유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성, 기립박수! 천 여석은 족히 되고도 남을 듯한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와 그칠줄 모르는 박수……. 작곡가 뮐러가 이곳에 머물면서 울창한 숲과 만년설의 고봉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광에 취해 불후의 명곡들을 작곡했음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지어졌다는 뮐러 기념홀에서 2014년 6월 27일 대한민국 전북치과의사회 남성합창단(무지카 덴탈레)의 아름다운 화음이 신나는 장구소리와 함께 리드미컬하게 울려 퍼집니다.아시아권에서는 한국팀이 유일하게 참가했으므로 관객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 등 서양인들이였고, 우리 합창단의 열창과 화음이 꽤나 높은 수준에 있다손 치더라도 동서양간의 문화 예술적 간극도 있을 테고 또 우리노래에 대한 느낌이나 감정의 공유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상했기에 큰 감동을 선물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더욱이 무지카 덴탈레의 출연 전 객석에서 공연을 지켜본 바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출연팀의 합창실력이 전문 성악가들로 구성된 팀이라 해도 믿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실력파 팀들이었기에 애당초 큰 박수를 생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30개국 60여 출전팀 중 어느 팀보다도 우리합창단이 받은 객석의 반응은 더욱 뜨거운 것이어서
며칠 전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 쓴 일기장을 들여다보니 ‘힘내라고, 너는 해낼 수 있다‘며 자신을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던 나의 싱클레어를 만날 수 있어서 시나브로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아! 그 시절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그런 일로 많이 힘들어 했었네…’학부모 일기를 써야한다는 얘길 얼핏 들었는데, 중학생인 딸아이가 오늘은 학부모 일기장이라며 아빠에게 건넨다. 그러고 보니 지난해에도 ‘나의 초등학교 4학년 그 어느 날’ 이란 제목으로 아들의 일기장에도 일기를 썼었는데, 딸아이의 학부모 일기도 아빠 몫이다. 딸에게 아빠가 일기를 다 써주면 문화상품권이라도 줄 거냐고 우스개 소리를 건네 본다.마냥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아빠의 중학교시절을 떠올릴 때면 두 분의 참 고마운 선생님이 떠오른다. 한 분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빠를 늘 칭찬해주시고 인정해주시던 기술과목을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이셨다. 수업시간에 떠들거나 장난치는 아이들이 있으면 앞으로 불러내서 신고 계시던 슬리퍼를 벗어들고 친구들 뺨을 때리곤 하셔서 친구들 사이에서 원성이 자자했었는데, 그래도 내게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멋진 키팅 선생님처럼 좋은 선생님이셨다. 다른 한 분의 선생님은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