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시론 강병철 <본지 집필위원> 오늘 내 환자는 재수 좋은 사람입니다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에서는 인턴, 레지던트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진료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연구해 왔다. 잠을 자지 못하면 혈중 알콜 0.1%인 상태에서 수술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나라 혈중 알콜 농도 0.05% 면허정지: 5년에 3회 음주운전으로 적발되거나 혈중 알콜농도 0.1% 이상 2회면 구속된다.) 외과 시술할 때 잠을 6시간 이하로 잔 경우에는 합병증이 83%나 증가했다고 한다. 과로와 수면부족 때문에 주의하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의료과실이나 부작용이 증가한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환자를 바꿔서 수술하거나, 엉뚱한 부위를 수술로 제거하거나, 다른 시술을 하기도 한 결과들이 과로와 수면부족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가 어제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치료 받으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환자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혈중 알콜 농도 0.1%로 2회 적발되면 구속이므로, 전날 과음하고 잠을 제대로 못자고 그 이튿날 치료를 하면 치과의사 면허정지가 되고, 그러한 일을 두
월요 시론정재영 <본지 집필위원> 예술인이자 과학자인 치과의사 (5)-무대와 역할 치의학이란 예술과 과학이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의에 근거하면, 치과의사는 예술가 역할과 과학자 역할의 이중성을 가진 직업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필자가 ‘월요시론’를 쓰는 일은 문사(文士)라는 기능을 가진 치과의사를 의미한다. 문사란 詩論과 時論과의 다른 글자 모습처럼, 문예인 입장보다는 언론인이라 불리는 역할에 더욱 가깝다. 즉 언론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치과의사들의 호칭은 원장님, 선생님, 박사님, 교수님, 등이 있다. 이것은 곧 그 역할을 지칭하는 것이다. 얼마 전 치과계 모임의 책임을 맡은 일로 협회장님을 모신 일이 있었다. 필자는 그 분이 단상에 가실 때나 말씀을 마치고 내려오실 때 협회의 수장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정중한 예의를 갖추어 드렸다. 협회장님은 개인적으로는 학교 후배이지만, 그 자리는 모든 치과의사를 대표하신 분이기에 내가 소속한 단체의 수장님으로 최고의 예를 갖추어 드려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주강사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분은 국가의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을 하신 분으로 합당한 예의를 갖추어야 할 장소였다. 연극으
월요 시론허택 <본지 집필위원> 지령 2000호 발행을 축하하며 2012년 임진년 벽두부터 치과계에 경축해야 할 사건이 생겼다. 경사스럽고 의미 있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바로 치의신보가 1월 9일자로 지령 2000호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2011년 12월 15일이 치의신보 창간 45주년이었다. 1966년 창간돼 거의 반세기 동안 파란만장한 역사를 관통하면서, 대한치과의사협회라는 전문기관의 대변인 역할을 성공적으로 이행해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접어들어 디지털 미디어시대로서 활자문화의 상실이라는 세기적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다. 근간에는 출판계뿐만 아니라 언론계에서도 신문의 미래 불확실성에 대해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자주 만나는 지방신문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필자는 그들이 10여년 안에 직업전환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을 토로하는 것을 들었다. 즉 IT의 혁신적 발전으로 10여년 안에 지방신문들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신문의 소멸. 얼마나 엄청난 문화의 혁명적인 변화인가! 그들과의 대화에서 심각한 현실적 상황을 읽을 수 있었다. 인류역사 상 문화, 문명의 예측할 수 없는 발전방향에 당혹감을
월요 시론오성진 <본지 집필위원> 내가 아는 지식 만일 “이 사회에서 지켜야 할 제일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일본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을 첫 번째로 꼽는다. 미국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고 한다. 두 가지 생각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공통점이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질 때, 질서도 없어지고, 사람들은 어째야 좋을지 모르며 우왕좌왕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생각은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말은 듣기에는 참 좋은 말이다. 그리고, 참 깨끗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베푼다는 말은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앞의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이고, 뒤의 것은, 나누어 줌으로써 같이 살고자 하는 뜻이 엿보인다. 살면서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되는데, 사람이 일부러 악한 생각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경우는 많지 않
월요 시론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UD치과 문제와 대학의 역할 지난 달 4일 치과대학장 협의회에서 박준봉 회장은 “예비 치의들의 소통 및 심성교육을 강화하고, 인성교육이 절실하며 인문학을 강화하겠다”며 그러지 않으면 치과계의 붕괴가 닥쳐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간 UD 등의 불법 네트워크 치과의 잘못된 행태를 인지하고 염두에 둔 듯한 이 발언은 늦게나마 대학이 교육을 통해 보다 올바른 사회 및 치과계 기여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협회와 UD와의 전쟁 중에도 대학은 원거리에서 초연한 자세로 방관해 왔다. 한마디로 제자에 대한 대학 은사와 지성으로서의 준엄한 꾸짖음이 없었다. 업계간의 일이라며 대학병원은 빠지려고 했다. UD의 불법과 허구를 파헤친 PD수첩 촬영 후일담에서도 협조적인 치대병원 교수를 섭외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들린다. UD가 신문광고로 보통 개원의들이 하는 아말감, 레진, 디펄핀이 해롭다고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부리는데도 대학은 학문적 반박은 고사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다만 일부 교수가 제자에게 전화를 해서 UD에서 퇴사를 권유했다거나, 공직치의 지부에서 성금을 지원했다는 보도는 현 사태를 주시하고 바르게
월요 시론박상섭 <본지 집필위원> 의료법은 개정돼야만 한다 연말 치과계는 물론이고 의료계 전체의 최대 관심사였던 의료법 개정안이 한나라당의 한미 FTA 강행 처리에 대한 야당의 반발로 국회의 기능이 마비되면서, 법안 발효까지 가기 위한 모든 일정이 불투명해져 버린 상황이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의료인 1인 1개소 개설과 면허대여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기존 의료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독버섯처럼 세를 확장해 왔던 불법 네트워크 병의원들을 법적인 테두리에서 규제할 수 있을 것으로 우리 의료인들은 기대해 마지 않았다. 의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필자가 굳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국민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었다. 기존에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된 바 있었던 치과 기공물 제작시 발암물질 사용과 돈이 되는 진료만을 추구하는 의료행태 외에도, 최근에는 어르신들을 현혹하는 파렴치한 상술과 미백치료시 공업용 과산화수소 사용 등의 문제가 추가로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사회적 기부를 허울좋게 내세우는 불법 네트워크 관계자들의 뻔뻔함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김세영 협회
월요 시론박인임 <본지 집필위원> 패치 아담스 헌터 아담스는 바보라는 뜻을 가진 패치 아담스로 불린다. 아담스는 자살충동을 이기지 못해 힘들어하다 스스로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되는데 거기서 여러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손가락 네개를 내어 보이며 몇 개 인가를 계속 물어 보면 네개 라고 하면 미쳤다고 소리치는 아더. 하지만 그를 직접 개인적으로 만나 보면 그는 오히려 인생에 있어서 문제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해결책을 볼 수 없어.”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두려움과 순응과 게으름 때문에 문제 너머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 사람인 루디. 그는 다람쥐 때문에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아담스는 그를 위해 같이 싸워주면서 다람쥐의 환상을 이기게 해 준다. 아담스는 의사의 무관심한 상담을 뒤로 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해 환자의 삶의 질을 높히는 진정한 의사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한다. 의사의 권위만을 생각하며, 환자의 이름을 부르기보다는 병명으로 부르면서도 아무 거리낌이 없는 교수를 보면서 아담스는 환자의 이름을 물어본다. 그
월요 시론서은아 <본지 집필위원>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심리학 (5)-변형적 내면화의 장 제공- <1969호에 이어 계속> 아기가 어머니의 예민한 반응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면 아동은 현실을 배우게 된다.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의 깨달음은 어머니의 실패에서 시작되는데, 어머니는 아동의 요구에 맞춰주는 것에 조금씩 실패할 수 밖에 없으며, 엄마의 이 실패를 통해 아동은 자신이 할 수 없는 것과 창조할 수 없는 것을 배운다. 아이는 자신의 내부에서 발생한 분리 욕구에 힘입어 이러한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제는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어머니가 아니라 실제로 표현되는 욕구에 반응해주는 어머니가 된다. 이것을 “적응의 점진적 실패"라고 명명하며 아동의 분리발달의 본질적인 요소로 지적된다. 유사한 개념으로 “변형적 내재화"라는 개념으로도 설명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 좌절됐던 자기대상 관계를 대상과의 전이관계를 통해 다시 경험하면서 멈췄던 발달을 재개시키는 과정이다. 즉, 점진적으로 실패를 경험하면서 보다 현실적으로 모두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이같이 자신을 반영해주는 변형적 내면화로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야망
월요 시론 정원균 <본지 집필위원> 대한치과의사협회에 드리는 간곡한 당부 최근에 미국의 포브스(Forbes)라는 잡지에서 미국인이 존경하는 직업을 조사했더니 그 으뜸이 단연 ‘소방관’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 국내의 어느 포털사이트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소방관이 사회복지사와 더불어 가장 존경스러운 직업으로 꼽혔다고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러한 직종이 존경을 받는 것은 이들이 희생적으로 사회의 공익에 헌신하고 있다고 국민이 믿기 때문이리라. 그러면 작금에 우리나라의 치과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평판은 어떠한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생활인이 사회적 존경을 의식하며 이를 위해 생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소방관이나 사회복지사는 그저 자신의 생업에만 충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직업적 속성과 사명이 곧 사회적인 가치와 연결되기 때문에 이를 성실하게 감당했을 때 그에 대해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하물며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치과의사의 직업적 사명이 이에 미치지 못하
월요시론강병철 <본지 집필위원> 커피 3ml 마시면 죽는다?방사선에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과 우리의 의무 우리가 60℃의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체온과 같은 37℃로 식어 온도는 60-37=23, 즉 23℃만큼 온도가 내려간 것이다. 물 1㎖를 1℃ 내리면 1칼로리 가 방출되므로, 커피를 아주 조금 즉 3㎖를 마시면 23x3=69cal 만큼의 에너지가 우리 몸에 흡수되게 된다. 몸무게 70kg인 사람의 몸 전체에 4 Gy의 방사선을 조사하면 조사받은 사람의 50%는 30일 이내에 사망한다. 이것이 치사량(Lethal dose)인데 LD 50/30 =4Gy이다. Gy는 에너지로 표시하면 Joule로 표시할 수 있고 Joule은 다시 칼로리도 표시할 수 있다. 70kg인 사람이 몸 전체에 4Gy를 한 번에 조사받을 때의 에너지 흡수량은 70kgX4Gy(Joule/kg)=280Joule 이고 4.18 Joule이 1cal이므로, 280/4.18=67cal이다. 즉 50 %의 사람이 30일 이내에 사망하는 방사선 피폭량 4Gy가 70kg인 사람에 조사되면 67cal의 에너지를 몸에 흡수하게 되는 것이다.
월요시론허택 <본지 집필위원> 자신에 대한 글쓰기 10월 24일 전 세계 동시에 스티브 잡스의 전기가 출간됐다.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됐고 출판계가 들썩였다. 스티브 잡스! 21세기 디지털계의 혁명가인 그가 왜 생의 최후에 비록 대필이지만 아날로그적 전기를 남겼을까? 스티브 잡스가 왜 삶의 흔적을 글로 표현했을까? 만일 스티브 잡스가 말년에 글을 적을 수 있는 건강만 유지됐다면 친필로 자서전을 남겼을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스티브 잡스의 혁명적인 IT 발명으로 21세기 들어와서 문장의 상실이나 종이책의 종말까지 염려스럽게 예언됐다. 필자가 소설가로 등단한 후 간혹 왜 소설을 쓰게 됐는지 주변에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한 번쯤 일기체의 글쓰기를 해보라는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우선 스스로 깜짝 놀랄 것이다. 글쓰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살아오면서 어떻게 말을 하고 글을 읽어왔는지, 어떻게 문장을 만들어야 할지,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어떻게 표현하고 정리해야 하는지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어느 소설가의 의미 있는 한 마디. “스티브 잡스도 결국 생의 정리를 글로 쓰인 책으로 했던 거야. 아직 책은 인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