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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과 번아웃

스펙트럼

지난 번에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칼럼을 쓴 이후로 여러가지 일들이 많았습니다. 가족의 문제도 있었고, 기대했던 개인적인 일도 끝내 안되면서 어떤 회의감이라기보다 무기력함이 지난 한달을 지배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글은 거기에 대한 고민에서 쓰는 글입니다. 우울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이 나지 않고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느낌들에 다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은 느낌들이 저를 지배하였습니다. 알아보니 우울증이 아니라 번아웃 증상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꾸역꾸역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쉴 때 잘 쉬어야 에너지를 얻고 일을 할 때 더 능동적으로 할 수가 있는데, 번아웃에 빠지면 쉬는 것이든 일이든 다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하기 싫어집니다. 우리는 일을 안하는 것을 쉬는 것과 동의어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제대로 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정말로 기뻐하면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활동을 해야 쉬는 것인데, 한국 사회에서 가정을 둔 부모들의 경우 꾸역꾸역 일과 가정을 다 챙기며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을 안하면 쉬는 것으로 착각하기에 스마트폰에서 배터리가 계속 나가듯이 몸이 방전되는 것입니다.

 

나름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어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일과 일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번아웃의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잘 쉬고 잘 놀면 회복됩니다. 그래야 일을 더 잘합니다. 즉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 꾸역꾸역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놀아야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미뤄두거나 또는 마감이 다가오는 일들을 대략 세어보니 20가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는 1-2년 이상 미뤄둔 일도 있으며, 또는 당장 다가오는 수업이나 회의 준비 등의 단기적인 일도 있습니다. 어떤 한가지 일을 하더라도 나머지 19가지가 떠올라서 한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을 안하고 있으면 안하는 대로 20가지가 떠오르면서 기분이 안좋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쉬려고 해도 제대로 쉴수가 없습니다.

 

‘인생은 고통이다’ 칼럼에서 본질적인, 할 일을 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당장의 도망치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서 의미 없는 웹서핑을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비본질적인 고통을 느끼고 결과적으로 더 고통스럽게 됩니다. 이러면 쉬면서 충전할 수 없게 됩니다. 해결책은 마음에서 20가지 일들을 떠올리지 않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사실 펑크가 날까봐 걱정되는 마음에 떠올리는게 맞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러면 결국 20가지 중에 아무것도 못하게 되거나 더 적은 중요하지 않은 일들만 간신히 하게 됩니다. 한 가지 일을 할 때는 그 일에만 집중하며 나머지 19가지에는 신경을 꺼놓으며 어떤 일이 펑크가 나도 어쩔 수 없다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내가 모르는 무의식적인 우선순위가 있기에 어떻게든 중요한 일은 하게 되며, 펑크가 났다고 엄청나게 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인지를 남이 해서 알려주었을 때 그때 해도 됩니다.

 

거꾸로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오히려 펑크가 날까봐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을수록 역설적으로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많은 자기계발서나 주변인들은 우선 순위에 따라서 못하는 일은 못한다고 거절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것은 아니며 무엇이 못하는 일인지 나조차도 불확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펑크가 날 일 또는 하지 않을 일을 정하는 것은 저같은 소심한 성격의 사람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 중 어떤 일들은 불가피하게 마감을 못지키거나 결국 못할 수도 있다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현재의 정신건강을 지키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거나 고통스러운 분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