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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되기

황충주 칼럼

서양 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은 어린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질문하는 내용이 다르다. 서양 사람들은 “이름이 무엇이니?”라고 아이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몇 살이니?”라고 상태에 대해 질문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일로 의견 충돌이 생기면 그 핵심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보다 “너 나이가 몇 살이냐?”, “왜 반말을 하느냐” 등을 따지기 시작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사회 환경이지만 나이 하나만으로 존경받고 대접받는 것은 옳지 않다. 대접받으려면 나이가 든 고귀함을 지녀야 하며 나이가 많다는 것 하나만 가지고 자기주장을 고집하면 추해 보이게 된다.


인간이 태어나 20대가 되기까지 성장하고 그 이후에는 성숙을 거쳐 늙어가게 된다. 나이 든 사람을 노인이나 어른이라고 하지만 늙으면 노인이 되는 사람이 있고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어른이 노인일 수는 있지만, 노인이라고 해서 다 어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어른일까?


2차 대전에 참전한 영국 육군 예비역 대위 톰 무어는 2020년 4월 8일 자신의 100번째 생일인 4월 30일을 앞두고 ‘뒷마당 100회 걷기’에 도전하며 1천 파운드(약 157만 원)를 목표로 코로나 성금 모금을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로 비상이 걸린 NHS(영국 국가보건서비스)에 보낼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머리 부분 피부암과 낙상으로 인한 엉덩이 골절로 투병, 거동이 불편해 보조기구에 의지해야 한 발씩 내디딜 수 있는 그는 왕복 25m의 뒷마당을 생일 당일까지 모두 100번 걷는 것을 목표로 했고, 결국 도전에 성공했다. 무어 경은 지난해 5월 NYT의 인터뷰에서 참전 당시 국가가 자신을 비롯한 군인을 지원했듯이 자신도 의료진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우리는 최전선에서 싸웠고 일반 국민은 우리 뒤에 있었다. 지금은 의료진이 최전선에 있다”라면서 “우리가 도움받았던 것처럼 이들을 뒷받침하는 게 내 세대의 일”이라고 말했다. 무어는 결승선에 이르기 직전 “지금 힘들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에게 햇살이 다시 당신을 비추고 구름은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해 영국인들에게 감동을 줬다. 보행기에 의지한 채 걷는 그의 모습에 감동한 150만 명이 넘는 전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한 달여 만에 최종 3,890만 파운드(약 580억 원)의 성금을 기록하게 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무어 경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고, 예비역 육군 대위였던 무어 경은 ‘명예 대령’으로 임명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올해 2월 코로나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고 호흡에 어려움을 겪어 치료받던 중 101세 나이로 별세하여 2월 27일 국군 장으로 치러졌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무어 경의 가족만 참석한 장례식은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생중계됐고 무어 경을 위해 온라인에 마련된 추모 페이지에는 수천 명이 서명하고 애도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런 분이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어른이다. 노인과 어른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 노인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 어른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하는 음식이 있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는 사람과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다. 노인은 상대를 간섭하고 잘난 체하며 지배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스스로를 절제할 줄 알고 알아도 모른 체 겸손하며 따듯한 사람이다. 노인은 받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성숙해져 배려하고 베풀어 주변 사람들에게 인생의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 박사의 자기개발서인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현실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삶의 영역을 통과하는 데 필요한 지도와 같으며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지도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수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지도가 진실하고 정확하면 기본적으로 우리의 현재 위치를 알게 될 것이고, 가고 싶은 곳이 정해질 때 그곳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어른이 되려면 평생 자기 훈육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2020년 발표된 고령자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만 65살 이상 고령자 비중이 전체 16%를 차지했고 이런 추세라면 2025년에는 20%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가 된다. 저출산, 고령화 때문에 유소년 인구 비중은 큰 폭으로 감소하는 데 비해 노인 인구 비중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다음 세대를 짓밟으며 자신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려 드는 노인은 주변에서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특징은 책임 없는 권리만 주장하며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있다. 우리 사회에 ‘노인은 많으나 어른이 적다는 것이 현실이다. 더욱이 어지럽고 혼탁한 이 시대에 한경직 목사님,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 스님 같은 큰 어른이 안 계신다고 입을 모아 한탄한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구든 나이를 먹기 마련이다. 오늘날 사회변화로 인해 젊은이들의 삶 속에 비치는 나이 든 사람은 공경과 존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거추장스러운 짐이나 적폐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어떻게 하면 우리의 존엄과 자존을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는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과제이다. 고령화 시대에 노인만 가득하면 사회가 병약해지지만 어른이 많아지면 세상은 더욱 밝아지고 윤택해질 것이다.


기왕에 나이를 먹는 것, 나이를 훈장으로 여기는 노인이 되기보다 함께 사는 사람들의 그늘이 되어주는 어른으로 살기를 힘쓰면 더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