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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ESG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33)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요새 ESG라는 단어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옵니다. 기업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듣자 하니, ESG는 사회가 요구하는 경영의 방식이라고 하고, 사회가 점점 이런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합니다. 치과의사는 많은 경우 자기 병·의원을 경영하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치과의사도 ESG에 신경을 써야 하는 걸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더라고요.  익명

 

먼저 ESG의 의미를 알아보아야겠지요.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어인 ESG는 투자자, 특히 자산운용사가 투자 대상을 결정할 때 회사를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지금까지 기업이 이런 부분에 관심을 두고 운영을 해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기업은 사회봉사, 환원 부문을 운영해 왔으며, 직원들이 봉사에 참여하고 환경을 보호하며 사회의 여러 일에 기부금을 내는 등의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ESG는 기업이 지금까지 해온 이런 노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볼 때, 투자 대상을 물색하면서 기업에서 따져야 하는 것은 재무제표였습니다. 즉, 투자했을 때 당장 많은 수익을 내기만 하면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경영을 하든 상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최근, 투자자들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투자운용사 중 하나인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는 여러 기업에 보내는 연례 서한에서 ESG 투자 원칙을 천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수탁자로서, 블랙록은 고객들이 [기후 리스크와 같은 자본 시장의] 변화를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저희는 지속가능성과 기후 변화를 반영한 포트폴리오가 투자자들에게 더욱 우수한 위험조정 수익률을 제공한다고 확신합니다.”


국가 규모의 은퇴 자금을 운용하는 연기금 중 가장 큰 것은 일본의 후생연금이죠. 2014년 후생연금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취임한 미즈노 히로미치는 ESG 투자를 앞세우면서 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후까지 연금을 낸다고 합시다. 하지만 연금을 받을 시민의 손주들이 밖에서 뛰놀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것이 연기금의 역할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ESG 투자는 기업이 비재무적 요소를 관리하도록 요청합니다. 대표적인 요소로 꼽힌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각각 살펴볼까요? 환경에선 탄소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며 자원 소비를 감축할 것을 요구받으며, 동종 기업 대비 에너지 사용량, 폐기물 재활용 비율 등을 기업의 측정 지표로 활용합니다. 사회에선 기업 내부의 문제와 외부의 문제를 다루며, 내부에선 노동 조건, 고용 평등 등의 문제를, 외부에선 지역사회 기여와 제품 활용에 대한 기업 책임 등을 통해 기업을 평가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배구조에선 이사회 구조, 주주 권리 보장, 사회적 논쟁 등을 통해 기업 운영의 신뢰성, 투명성 등을 지표로 다룹니다.


이런 ESG의 틀은 겉치레로 그치기 쉬운 봉사 활동을 기업에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ESG는 기업이 단기 이익을 좇는 대신, 오랫동안 돈을 잘 벌 수 있는 구조를 확립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것이 기업, 투자자, 사회 모두에게 이익이 되며, 결국 사회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끌 것이라는 계산 때문입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의료기관은 투자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외부 투자기관이 병·의원에 ESG 경영을 요구할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서울대학교 치과병원을 포함한 몇몇 병원은 ESG를 경영 방침으로 천명했습니다. ESG가 사회 전체가 움직이는 방향성이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겠지요.


ESG 관련 내용을 소개한 『돈이 먼저 움직인다』라는 책은, ESG를 투자 관점에서 접근하며 자본이 먼저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습니다. 돈이 이미 움직이고 있으니 곧 지식과 법도 이쪽으로 따라오리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병·의원과 의료인에게도 ESG는 당면 과제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의료윤리는 그동안 환경이나 지속가능성과 같은 요소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눈앞의 환자에만 관심을 가지거나, 인구 차원의 보건적 목표가 지니는 유불리만을 따지는 것이 지금까지 의료윤리의 틀이었지요.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등장한 여러 논의나,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사회문화적 변화는 의료윤리에게 지속가능성을 묻고 있습니다.


임상 진료는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의료인은 당장 앞에 있는 환자의 질병과 건강만을 따져 움직일 것을 요구받지요. “살려야 한다”라는 명령이 의료인 모두를 사로잡고 있는 한국에선 더 그렇습니다. 이런 한국 의료의 정신은 한국 특유의 관치 의료 제도와 결합, ‘지금’ 환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해 주어야 한다는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당장’을 중시하는 결정은 우리 치과의 여러 영역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때로 과잉진료라는 비난을 받는 치료 결정은 당장 좋은 것을 요구하는 환자와 그에 부응하는 치과의사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물일 겁니다. 우리 치과의 풍경에선 주기적인 구강 관리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숙제인데, 그것은 당장 아픈 부분을 해결하는 치료 행위에만 수가를 부여해 온 국가의 치료 관리 전략의 결과물이겠지요.


치료에서 ESG를 추구한다면, 이런 원칙과 목표를 살피고 알린다면 우리의 치과 풍경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틀을 진료에 적용하면 환자에게 장기적으로 이득이 되는 치료 결정은 무엇인지, 환경과 사회에 이득을 돌려줄 수 있는 치과의료 제도는 무엇인지, 신뢰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치과 경영 방식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일이 될 텐데요. 이것이 지금까지 해왔던 진료 접근법이나 선택을 완전히 바꾼다기보다는, 지금 하는 방식을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환자에게 우식이나 치주염의 치료 필요성을 설명할 때, 정기 구강 검진이 중요함을 요청할 때, 지역사회 단위의 구강보건 사업을 계획하고 홍보할 때 ESG를 통해 접근하면 더 쉽고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겠죠. 또, 지금 청년층이 요구하는 공정에 반응하며, 직원들의 요구를 고려하는 경영 환경을 표명할 때로 ESG는 좋은 틀이 되어 줄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치과도 ESG를 말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