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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4>

소설

민혁이 술값을 계산하고 나오자, 박 교수는 그새 담배 한 대를 더 태우고 있었다.
“프로토타입을 끼던 환자는 젊어서부터 술, 담배를 입에 달고 살았다더군. 늘그막에 구강암에 걸려서 혀 절제술을 받았는데, 피부판 이식술과 3D 프린팅으로 인공 혀를 재건할 수 있다고 했더니 자기는 울퉁불퉁한 혀는 싫다더군. 그래서 프로토타입이 탄생한 거지.


”박 교수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민혁을 데리고 자신의 연구실로 갔다. 1층은 학부생 실습이 진행 중인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2층으로 통하는 계단으로 올라갈 때쯤 순찰을 하던 나이든 경비원이 박 교수를 알아보고는 다가와 먼저 인사를 했다. 복도 끝에 연구실을 향해 걸어가자 자동으로 복도 천정에 등이 켜지면서 어둠이 물러갔다.


박 교수는 민혁과 함께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상아색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신문에는 ‘씹고, 말하고, 소통하고’란 제목의 칼럼이 펼쳐져 있었다.


“어때, 사진 그만하면 봐줄 만한가?”
“네, 잘 나왔네요.”


“하하 그런가? 내가 머리숱이 좀 없어 그렇지. 사진발은 괜찮지.”
연구실 우측 벽면의 책꽂이 옆 철제 캐비닛 쪽으로 다가간 박 교수는 맨 위 칸 서랍을 열고 은색 철제 가방을 꺼내왔다.


“혀 보형물에 삽입해 놓은 칩에 순간적으로 강한 전기자극을 흘리면 떨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네. 물론 칩은 망가지겠지만 말이야.”
민혁이 소파에 앉자 박 교수는 칩이 삽입된 위치에 전기자극을 흘릴 수 있게 핀을 꽂고 장비를 작동시켰다.


“혹시, 너무 센 전기가 흐른다 싶으면 얼른 왼손을 위로 치켜들게.”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전원 스위치를 켜자 검은색 다이얼에 불이 들어왔다. 박 교수는 민혁의 얼굴을 살피며 조금씩 다이얼을 시계방향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기신호의 세기를 나타내는 바늘이 녹색을 지나 황색에 이르기까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바늘이 빨간색 부분에 이르자마자 민혁이 비명을 지르며 왼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박 교수가 황급히 다이얼을 처음 상태로 돌려놨다. 혀 보형물이 민혁의 입안에 떨어졌다. 민혁이 입안에서 보형물을 꺼내 박 교수에게 건넸다. 강한 전류가 흘러서 바이오 플라스틱은 이미 변색해있었다. 박 교수는 프로토타입의 혀 보형물을 파란색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이건 실패작이야.”
혀가 없어진 민혁은 휴대폰에 글을 썼다.
(교수님, 제 원래 혀는 언제 다시 제작할 수 있을까요?)

“자네 주려고 프로토와 B타입의 단점을 개선한 C타입의 혀 보형물을 만들어놨네. 한 번 착용해 볼 텐가?”
민혁이 반색하며 박 교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C타입에 들어가는 칩을 혀에 이식하려고 갑부들이 줄을 섰어. 미국에서 바이오칩을 생산하는 ‘ODI’사를 인수해서 국내에서 우회 상장시킬 예정이라네.”
(저는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요?)
민혁이 휴대폰에 글을 써서 박 교수에게 보였다.


“돈? 자네나 나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지 않았나. 공무원 월급 빠듯한 거 나도 알아. 앞으로 자네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야. 그때 도와주게.”


박 교수는 철제 캐비닛에서 C타입의 보형물을 꺼내 민혁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든 민혁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이며 연신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하자 박 교수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M치과병원 1층 카페에서 민혁은 박 교수를 기다리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C타입의 보형물을 순순히 건네준 박 교수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선물로 이름을 새겨 넣은 만년필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주변에 입원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며 환담을 하고 있었다. 카페에 설치된 TV에서는 소말리아해역에서 인질이 된 한국 선박에 대한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이 방송되고 있었다.


“자네 지난주 방송된 명의 봤나?”
“명의에 누가 나왔는데?”
“여기 M 병원 박병삼 교수가 나왔어. 혀에 무슨 칩을 심으면 말더듬이가 달변가로 변한다는데.”
박 교수 얘기에 민혁은 고개를 들어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기 시작했다.


“변호사 하는 내 친구도 거기서 돈 주고 칩을 심었다는데.”
그리고 그의 귀에는 이런 말이 들려왔다.
“어디 변호사뿐이야. 유명한 사람들이 그거 심으려고 돈다발을 들고 줄을 섰대 글쎄.”
“세상 참 요지경 속이야.”


민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신 것은 그때였다.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삶이 자신을 늘 행복하게 한다던 박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세 치 혀를 잘 다스려야 한다니까. 사랑도 돈도 명예도 다 그놈이 좌지우지하는 거 아냐?”
“에이, 커피 맛 떨어지게 그놈의 혀 얘기는 그만하고 어서들 일어나세.”


그때 박 교수가 민혁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왔다. 민혁이 의자에서 일어나 박 교수에게 인사를 했다. 박 교수의 시선은 TV 속 인물에 머물러 있었다.


“이번 청와대 대변인 말 잘하지 않아? C타입의 칩을 혀에 심은 수많은 고객 중 한 분인데……. 첨에 우리 병원에 왔을 때 말을 어찌나 더듬거리던지. 어떻게 저런 분이 대변인이 됐나 싶을 정도였다니까.”


“정말 대답하십니다. 교수님!”
민혁이 박 교수 앞에 만년필이 담긴 선물을 건넸다. 박 교수가 상자를 열어보았다. 몽블랑 만년필에 박 교수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저의 조그만 성의표시입니다.”
“자네가 뭔 돈이 있다고……. 이니셜을 새겼으니 안 받을 수도 없네만. 담부터 이러면 화낼 걸세.”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