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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와 조선 황실의 치아상태

배광식 칼럼

한국일보사의 영자신문 코리아타임스(The Korea Times)는 1950년 11월 1일, 6.25 사변에 유엔군으로 참전하고 있던 외국 군인들에게 나라 안팎 뉴스를 신속하게 보도하고, 한국 실정을 해외에 알리자는 취지로 창간된 신문이다. 1960년대에는 우리 고교생이나 대학생들이 영문독해실력을 늘리기 위해 집에서 구독하기도 하였다. 이제 인터넷 매체(https://www.koreatimes.co.kr/)를 통해 접할 수도 있으니 굳이 종이신문을 구독하지 않아도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코리아타임즈 2021-11-13 09:24자로 포스트된 ‘조선의 온전한 치아와 나쁜 치아(Perfect and poor teeth in Joseon)’ 제하의 오피니언(Opinion) 컬럼의 글(https://m.koreatimes.co.kr/pages/article.asp?newsIdx=318672)은 고종황제 및 조선 왕실의 치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고종황제는 1903년 11월 2일에 처음으로 미국인 치과의사의 진료를 받았다. 잘 씻기지 않은 조개를 먹다가 돌을 씹어 치아가 파절되었고, 이미 동요가 심했던 치아를 발거해야만 할 형편이었다. 황제로서는 다행인 것이, 마침 일본에서 미국인 치과의사 싸우어즈(James Souers)가 내한해 서울에 머무는 중이어서 바로 궁전으로 왕진을 올 수 있었다. 독일인 궁정내과의사 리챠드 분쉬(Richard Wunsch)의 감독 하에 싸우어즈가 황제의 치아를 발거하였고, 싸우어즈가 손수 제작한 금보강재(gold brace)로 엮은 도재로 보철을 하였다. 고종으로서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어서, 많은 이들이 수라간의 궁녀와 기미상궁들이 유배를 갈까 걱정했다. 그러나 다행히 싸우어즈의 치료에 아주 만족한 고종은 그녀들의 부주의를 용서하였고, 싸우어즈에게는 1,000엔(yen)의 거금을 하사하였다.

 

그 후 고종은 수년간 이를 앓고 있었고, 1917년 10월에 일본인 치과의사를 덕수궁으로 불러서 치통치료를 하였다.

 

고종이 1919년 1월 21일 붕어하자 사람들은 그가 독살된 것으로 추측하였다. 시신이 엄청 부어올랐고, 치아가 저절로 탈락하였으며, 그의 목에서 복부까지 검게 변해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고종은 여러 번 독살 위기를 겪었었다. 1898년 8월에 벼슬이 떨어지고 유배형을 받은 전직 관리가 내시를 사주하여 치사량의 아편을 황제의 모닝커피에 몰래 섞어 넣었는데, 마침 고종은 그 자리에 없어서 커피를 마시지 않았고, 선종세자가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고 심하게 앓다가 회생하였지만 치아가 18개나 빠졌고, 발기불능이 되었다. 궁정에 초청받았던 미국인 여성들의 증언에 의하면, 황실의 남자들뿐 아니라 황실의 여자들도 이가 나빴다.

 

1892년, 주한미국공사 오거스틴 허드(Augustine Heard)의 어린 딸 헬렌 허드(Helen Heard)가 민비를 접견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민비에 대해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황비는 자그마했고, 예쁘지는 않았지만 우아한 매너를 가졌다. 사그사근하고 말하기를 좋아했으며, 분과 크림으로 화장을 짙게 해서 백짓장처럼 하얀 얼굴이었다. 커다란 트레머리를 했는데, 그 주위에 온갖 중국 보석으로 장식한 것이 잘 어울리고 진기해 보였다. 그러나 황비의 치아는 끔찍하게도 검고 치열이 불규칙하였다.’ 후에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과 결혼해 영부인(1933-1945)이 되었던, 져널리시트 엘레아노어 프랭클린(Eleanor Franklin)은 1905년 말 한국을 방문해 엄비(엄선영)를 만났고, 익살맞게 묘사하였다.

 

‘엄비는 젊지 않았으나, 황제의 총애를 받고 모든 일에서 황제를 쥐락펴락하였다. 황비는 그녀의 못생긴 자매들 중에서도 특히 못생겼는데 황제가 쥐여사는 것이 결정적 미스테리이다. 황제가 똑똑하다면 쉽게 이해하겠는데 황제는 그렇지 못하고, 그는 예쁜 궁녀들 무리의 시중을 받고 있다. 엄비는 작고 사팔뜨기인데다가 마마자국이 있고 이가 빠졌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못생긴 시들시들한 여인이다. 그러나 황제의 총애를 받으려면 엄비를 반드시 통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무지몽매한 여성의 승리이다.’

 

한반도에서 충치의 원인 중에 부분적으로는 서양음식이 들어온 때문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훨씬 전에도 조선 궁정에서는 치아문제가 많았다.

 

정종(재위 1506-44)은 자주 치통을 겪었고, 1544년 여름에는, 잇몸이 붓고 피가 나며 치아가 흔들린다고 불평하였고, 먹기가 불편하다고 하였다. 그는 여러 약초를 혼합한 페이스트를 사용하고 뽕나무 가지를 씹도록 처방을 받았다.

 

왕의 치료는, 일반인의 치료에 반해, 비교적 구미에 맞는 것이었다. 첫 번째는 아니지만, 비교적 초창기에 한국에 머문 미국인 치과의사 데이비드 한(David E. Hahn)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치통을 쫓기 위해서 소금과 죽은 쥐를 사용하였다. ‘쥐를 소금에 절이고, 치통이 있는 사람이 오면 쥐에서 소금을 채취해 치아주위에 문지른다.’"

 

이상은 작가 로버트 네프(Robert D. Neff)의 글이다. 이글에는 고종황제의 사진, ‘노인과 어린이’의 사진이 실려 있고, 후자는 ‘카메라를 든 형가리의사 보조끼 데죠 1908(Korea in 1908 through the Eyes of Hungarian Doctor, Dezso Bozoky, 2019.10.1.-12.1.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되었던 사진으로, 노인과 두 어린이가 서 있는데 뒤편 널빤지 담장에 광고판이 있어, 붉은 판에 세로 두 줄 검은 글씨로 ‘래온 니갈분’(우측) ‘ライオン齒磨’(좌측)라 쓰여 있다. 라이온 치마분(Lion Tooth Powder)의 광고이다.

 

로버트 네프는 ‘조선에서 온 편지: 미국 외교관 부인의 눈을 통해본 19세기 한국(Letters from Joseon: 19th-century Korea through the Eyes of an American Ambassador’s Wife, 2013.11.30. Seoul Selection USA, Inc.)’의 저자이고,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Korea through Western Eyes, 2013.3.1. Seoul National University Press)’의 공저자, ‘짧은 만남: 서양인의 초기 한국 보고서(Brief Encounters: Early reports of Korea by Westerners, 2017.10.31. Seoul Selection USA, Inc.)’의 공저자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