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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작합니다

스펙트럼

원내생 시절 이은욱은 Flap을 잘 못 여는 선생님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니... Bone contact 하면서 blade 깊게 넣고... Periosteal elevator로 확! 제끼면 될 것 같은데 왜 이리 못하시지...? 내가 해도 저거보단 잘하겠다!’ 시간이 흘러, 이제 2개월 차 치과의사 이은욱이 Surgical Extraction을 합니다. 딴 건 잘 모르겠지만 하나는 알 것 같습니다. 제가 Flap을 열 때 옆에 계신 치과위생사 선생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시겠지요. ‘와... 내가 해도 저거보단 잘하겠다!’

 

37개월의 길고 길었던 공보의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거제도에서 참 많은 경험을 하였지만 지루한 건 사실이었습니다. 치과 진료라고 해봐야 불소와 스케일링이 99%, 그나마 보람찬 장애인 진료는 코로나 때문에 2년 가까이 못 하였습니다. 게다가 도서 지역 보건소에 있다 보니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 있다는 느낌들. 다들 공보의는 우리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하지만, 사실 잘 공감 못 하였습니다. 그런 지루한 공보의 생활이 드디어 끝나고 이제 진짜 치과의사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많은 친구들은 함께 서로의 시작을 축하하였습니다.

 

저는 경산에 취직하였습니다. 입학 동기가 페이닥터로 일하고 있던 치과에서 구인하기에 면접을 갔습니다. 다행히 절 좋게 봐주셔서 잘 취직하였습니다. 경산이란 정말 정말로 생각도 않던 지역이었는데, 사람 일은 참 모르는 모양입니다. 일을 시작하고, 첫 2주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각종 사고를 치고, 부끄러워 병원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벌써 2개월이 지났습니다. 진료는 여전히 어렵지만, 조금은 안정된 기분입니다.

 

저는 치과의사를 시작하지만, 인생의 2막을 시작하는 친구도 많습니다. 슬슬 코로나가 끝나가서 그런지 결혼 소식이 쏟아집니다. 이번 주도 친한 친구 하나가 결혼합니다. 결혼은 뭔가 저-멀리 하늘 높이의 어-른들의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둘 가다 보니 어느새 솔로로 남아있는 친구가 적습니다. 결혼한 친구들도 제가 처음에 병원에서 잔뜩 사고 친 것처럼 잔뜩 사고를 치겠죠.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고, 이제 시작해봤으니깐요. 하지만 점점 안정되면서 모든 것은 일상이 되어가고, 그러면 우리는 어른이 되어있겠죠. (사실 지금도 아저씨 나이지만... 자꾸 아직은 뭔가 어린 것 같습니다.)

 

MZ 세대의 특징은 평생 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 것이라고 어느 신문기사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반영하듯, 새로운 길을 시작하는 친구도 꽤 있습니다. 공무원, 군무원, 공기업 등 조금 늦었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당당히 합격합니다. 취업 걱정은 20대 때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끝이 없습니다. 주말에 만난 친구 둘 다 이직 걱정을 하더라구요. 물론 실패하여 다시 취업 시장을 전전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또, 33살. 많이 늦은 나이지만 올해 대학을 다시 가서 20살 동생들과 같이 공부를 시작한 친한 친구도 있습니다. 참 다양하지 않나요? 문득 생각해보니 모두의 시작인 듯 합니다. 꼭 희망찬 시작이 아니더라도요.

 

시작이란 방금 산 희망 가득한 복권 같습니다.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 이 복권이 꽝일지라도 긁지 않은 지금은 행복합니다. 다들 힘들다곤 말하지만, 그래도 시작하는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다들 작은 행복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오늘은 왠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잔뜩 한 것 같습니다.

 

저 혼자 시작하는 시기라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다들 시작하는 시기라 다 같이 좀 들떴습니다. 저랑 나이 차이 많이 나시는 선배님들도 또 무언가의 시작을 하고 계신다면 아마 같은 마음이겠죠. 복권이 당첨되길 기도하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