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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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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아내를 시작으로 아기와 저까지 온 가족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입니다. 변이를 거듭하며 독성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저희 가족에게는 이번이 첫 감염인지라 증상도 우려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양성판정을 받은 아내가 격리하는 동안 아기와 둘이서 이틀을 무사히 지냈지만, 3일째 되는 새벽에 발열과 함께 보채는 아기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응급실을 고민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평소에도 11개월 아기를 데리고 갈 만한 병원이 적은 탓이었습니다. 또 해열제를 먹이며 대증요법으로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데, 두 종류의 아기 해열용 상비약이 모두 최근 식약처 회수조치가 내려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보채다 지친 아기를 품에 안아 재우며 쉬지 않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정보를 모았고, 날이 밝자 가까운 소아과를 우선 방문하여 부자 모두 양성 확인을 받았습니다.

 

약도 넉넉히 받았고 온 가족이 양성이니 격리중인 아내도 귀가하여 일단 급한 불은 껐다고 안도하는 순간, 제 몸이 불덩이가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이틀을 앓아누운 동안 아기는 발열과 해열을 거듭하며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으로 아기를 간호한 아내는 녹초가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별일 아니었겠지만, 당시 저희 부부에게 아기의 숨소리가 큰 걱정이었습니다. 대면진료가 가능한 근처 소아과는 규모가 작아 방사선촬영이 불가능하고, 촬영 및 검사가 가능한 시내 큰 소아과는 코로나 양성 시 대면진료가 불가하다니 선택지는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응급실에서 만난 소아과 전공의는 ‘증상이 악화되면 다시 오라’며 저희를 돌려보냈고, 그나마 방사선사진을 찍어봤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피곤했는지 간만에 곤히 누워 자는 아기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에게 장난으로 ‘너 정도면 부모도, 환경도 잘 뽑은거야’ 라고 말하곤 했는데,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공부를 더 하겠다는 제 고집으로 지방에 머물며 얼마 되지 않는 급여에 맞춰 아등바등 살아가는 와중에 이같은 의료 공백까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 애들에게 좋은 세상 물려줘야죠’ 라는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상투적으로 써왔던 의료 선진국이라는 표현에 걸맞지 않는 일부 의료 환경과 그 발전 방안을 생각하고, 아직 갈길이 먼 치과의료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아내와 아기에 미안한 마음은 큰 빚으로, 그리고 계속해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할 숙제로 남았습니다.

 

간호법과 의료법 이슈가 뜨겁습니다. 치의신보의 애독자 대부분은 정치적인 맥락과 복잡한 여론까지도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저를 비롯한 제 주변의 많은 치의들은 매일의 삶에 치여 그만큼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필부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논쟁을 통해 저희 부부가 겪은 불안한 경험을 큰 틀로 보아 완화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하기를, 진통을 겪고 난 뒤 우리 치과의료의 환경이 환자-치과의사-보조인력 그 누구에게도 공백 없는 선진의 형태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