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수술실 CCTV, 투명사회와 불신지옥

시론

미국 연수 시절에 살던 곳의 쇼핑몰 앞에 자동차 수리점이 있었다. 그곳의 안내판에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Wait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100달러, Watch (수리하는 모습을 감시하고 있으면) 120달러, Help (도와주겠다고 나서면) 140달러”. 제대로 고칠까 의심이 되어 고객들이 엔지니어가 일하는 장면을 직접 봐야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때부터 고객과 회사 간에는 믿고 맡기는 “신뢰”관계가 아니라 부탁한 만큼 눈으로 보여주는 “계약”관계가 성립이 된다. 그 자동차 수리점은 고객이 신뢰해 주면 더 잘해줄 수 있다는 것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신뢰한다고 하는 것은 내 눈에 직접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완전히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잘 알고, 모든 상황을 조절할 수 있다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핸드폰에서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내 손안에 진실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므로 타인을 신뢰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또한 신뢰라는 것은 모호하고 불분명한 상대를 내가 먼저 믿어야 하는 첫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나중에 배신당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쉽게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투명할 것을 다그친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우리나라에는 이미 1600만 대 이상의 CCTV가 설치되어 있으며, 2015년 어린이집 CCTV, 2020년 응급실 CCTV, 2023년에는 전 세계 최초로 수술실 CCTV가 법제화되었고, 내년에는 노인 돌봄 시설 요양원에도 CCTV 설치가 법제화되어 원하는 것을 낱낱이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투명사회”의 끝판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럼 개인의 뜻대로 진실을 다 볼 수 있는 투명사회에서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일까?

 

모든 것이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모든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상황이 있기까지의 긴 맥락과 복잡한 상호 관계를 볼 여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사회는 불신과 의심의 사회, 신뢰가 줄어들기에 통제에 기대려는 사회다”라고 하였다. 우리 사회는 이미 투명함을 강제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보이지 않는 어떠한 가치도 인정하지 못하여 서로를 못 믿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투명하면 환자, 의사 모두에게 득이 될까?

 

전신마취 아래에서 수술할 때 집도의가 절개부터 봉합까지 전부 다 하지는 않는다. 이는 집도의가 핵심 수술 과정에 좀 더 집중하고 피로도를 감소시켜 수술의 효율을 높이기 위함이며, 전공의 교육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환자 관점에서 어디까지를 집도의가 “집도”하였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CCTV 영상에서 집도의가 직접 시행하지 않은 어떤 부분이라도 환자들이 대리 수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는 전신마취를 시행하는 마취과 의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마취과 의사가 다른 수술방의 환자 상태를 보기 위하여 잠시 자리를 비우는 CCTV 영상을 본 환자들은 의사없이 간호사가 대리 마취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만약 전신마취 환자 한 명당 마취과 의사 한 명이 옆에서 지키고 있어야 한다면, 지금보다 전신마취 수술 건수를 급격히 줄여야 한다.

 

수술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술이 의료진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장면들의 연속이다. 우리나라 국방부 내부 전산망이나 미국 펜타곤의 보안 시스템도 해킹된다. 하물며 일개 병원에서 보관한 수술 영상들이 잔혹하거나 충격적인 영상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유명인의 사생활을 팔아넘기는 파파라치들에게 유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는 지난 9월 5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가 의료인의 직접 수행의 자유, 인격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여 의료인에게는 방어진료를 하게 만들고 그 피해가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밝히면서 헌법소원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최근 언론매체에서 수술실 CCTV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의사가 모든 것을 투명하게 감시당하는 파놉티콘 감옥의 죄수가 된 것이 아니며, 수술실 CCTV는 다수의 약자(환자)가 소수의 권력자(의사)를 감시하는 시놉티콘이다” 라고 하거나 (중앙일보 칼럼, 김승현), “환자 인권보호와 비윤리적인 의료 행위를 근절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경향신문 칼럼, 차준철)는 등의 주장이 주류를 이룬다.

 

2016년 개인 성형외과의원에서 안면윤곽수술을 하다가 환자가 사망하는 과정이 보도되면서 투명사회, 불신지옥으로 가는 가장 첫 번째 문이 이미 활짝 열렸다. 더 투명하게, 더 많은 것을 CCTV로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로 가는 문을 이제는 닫을 도리가 없다. 모두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기를 원하고, 투명하여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그 무엇도 신비롭지 않은, 적나라함만 남은 사회, 그것이 미래가 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