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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대

이미연 칼럼

서울에 갈 때는 경복궁 근처를 자주 지나치는데, 한동안 토목공사를 하는지 복잡하더니 공사가 마무리된 뒤에도 길이 둥글게 휘어 지나가기가 낯설고 불편했다.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광화문 앞 월대 때문이었다. 월대(月臺)란 전통 건축에서 건물의 격을 높이기 위해 터보다 높게 쌓아올린 기단이다. 궁궐에서는 정전과 침전에 위엄을 주기위해 월대를 쌓았고, 전각 앞 공간이 평평하게 확장되어 하례식 등 사람이 모이는 행사에 실제 활용가치도 높았다고 한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은 조선 초기부터 임금이 친히 나가 백성과 소통을 도모하던 공간으로, 이곳에도 월대가 축성되었다가 일제 때 전차 도로를 만들며 훼손하여 땅에 묻혔던 것을 금번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옛 왕정국가의 유물, 오래되지도 않고 19세기말에 재건된 것을 굳이 현대에 복구할 필요는 무엇일까. 제법 큰 비용과 상당한 불편도 감수하면서 말이다.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의 해체와 경복궁 복원의 경우가 비슷하다고 보인다.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의 혈세와 노고로 건축한, 조선총독부보다 대한민국 중앙청으로 쓰인 역사가 더 긴 근대 건축 유산을 굳이 부수지는 말자는 의견과 악의적으로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전통을 욕보이려 한 일제의 잔재를 청산함이 옳다는 주장 모두 일리가 있었다. 그 후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과 밝은 미래를 지향하겠다는 선언으로 경복궁 복원이 진행되었으며,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외국인 관광객조차 조선의 법궁으로서 경복궁을 인지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고유한 전통을 알 수 있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일체의 노력은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함이며, 바른 역사 세우기의 궁극적 지향점은 구성원의 정체성 확립과 미래 세대를 위한 비전 제시가 아닐까 한다. 
 

우리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역사 세우기도 그래서 중요하다. 내년은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의 설립을 원년으로 하는 대한치과의사협회의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지난 2022년 4월 23일 제주에서 열렸던 제71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는 일제강점기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최초의 치과의사단체인 한성치과의사회를 우리 회의 효시로 결정하였으며, 2023년 5월 16일 제33대 집행부 초도이사회에서 치협창립 100주년 기념식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행사 준비에 돌입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기념식을 불과 1년여 앞둔 현재 여전히 준비가 미진하다니 우려가 크다.
 

우리보다 앞서 창립 100주년을 맞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08년 11월 코엑스에서 3일간 전야제를 시작으로 기념식과 다양한 심포지움, 소아암환자 후원을 위한 건강달리기대회, 100주년 기념전시를 진행하였으며, 공영방송의 여러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100주년을 알리는 방송을 하고, 엠블럼과 포스터 등의 제작물로 대국민 홍보를 진행하였다. 기념일을 앞두고 전국 시도의사회·대형병원·학회가 주체가 되어 개최한 의사의 날 행사·의료봉사·사진전시회·건강걷기대회 등은 100주년 행사 알리기에 크게 기여를 하였다. 
 

100주년을 코로나 비상시국과 경제침체가 뒤이은 2023년에 맞이한 대한간호협회도 행사 알리기에 열심이었다. 100주년 홍보 홈페이지를 별도로 구축하여, ‘간호백년 백년헌신’이라는 슬로건 아래 대한간호협회의 역사와 코로나 기간동안 간호 활동상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적극 홍보하고 국민들에게 간호사법 입법지지를 호소하는 계기로 삼았다. 많은 참석인원으로 인해 장충체육관에서 치러진 100주년 기념대회는 식전행사와 100주년 기념대회, 간호법 제정추진다짐대회와 축하공연으로 이어졌고 대한간호협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다. 그 외에도 100주년 열린음악회, 간호사진전, 기념우표발행 등의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우리의 준비는 어떠한가. 협회 안팎으로 어지러운 일들이 많아 집행부가 어렵기는 하였을 것이나, 2년 전 결정된 일에 아직도 대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은 집행부의 준비가 너무 안이하지 않나 생각된다. 협회가 직접 학술대회를 개최하지 않아 대관이력이 전무하다보니 코엑스와 같은 업장과 교섭이 어렵다손 치더라도, 치과계에 두루 도움을 청했어야 옳다. 그간 꾸준히 국제학술대회를 유치하며 협회와 공동학술대회 개최에 앞다투어 지원하던 지부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설마하니 지부행사 흥행 외에 우리 치과의사들의 역사와 미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심지어는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따로 챙기겠다며 협회와 선을 긋고 별도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지부가 있다는 말이 들리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부에서 임원을 하고 있는 분이라면, 동료를 선도하는 리더로서 모범을 보이고 선배로서 후배들의 앞길을 열어주어야 할 자리에 있다는 자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위치에서 내 것 네 것만 가리고 ‘우리’ 일을 나몰라라 한다면, 앞으로 어느 후배에게 분회와 지부와 중앙회에 가입하라고 설득할 수 있겠는가. 시내에도 초가집이 즐비하고 김첨지의 인력거가 빗길을 내달리던 암울한 식민지 조선에서, 당시 한국인의 위생과 100년 후까지 이어질 한국 치의학의 영속성을 고민하며 모인 한국인 치과의사들의 각오를 생각해본다. 그들이 한성 사람들끼리만 어디 한 번 잘 살아보자고 모였을 리는 없지 않은가. 백 년 전 한성치과의사회의 선조가 가졌던 협동심과 비전을 어째서 계승자를 자처하는 우리는 갖지 못하는가.
 

우리가 선 자리에서 앞으로 백 년, 우리는 치과의사 후예들에게 자랑스러운 월대를 남겨줄 수 있을까. 우리 후예들의 권익과 국민 앞에서의 명예와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정체성을 남길 수 있을까. 바깥이 어지러운데 내부조차 합심하지 못하는 듯하여 걱정이 크다.
 

각 지부와 분회를 대표하고 있는 대의원들도 적극 힘을 모아주시기 부탁한다. 한성치과의사회가 설립된 1925년을 우리 회의 창립 원년으로 결정한 제71차 대의원총회에서,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 일동은 ‘근대 치의학 한 세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4.3의 뼈아픈 눈물을 평화의 대동 물결로 승화시킨 위대한 땅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새로운 100년을 만들어가기 위해 2022 제주 선언을 한다”고 선포하셨던 그 다짐을 모쪼록 지켜주시길 바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