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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력은 웅변보다 경청에서 나온다

김여갑 칼럼

1992년 “2000년대 치과계를 위한 제언”에서 “신년에 계획을 세우고도 아무 결실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뒷걸음치며 가는 치과계를 보면 2000년대를 예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것 같기도 하지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줏대가 없는 집안은 안팎에서 흔들어대는 사람도 많고 불평도 많아지고 궂은 일도 많이 생긴다고 하는데, 수립된 안(案)이 최선책이 아니더라도 대안도 없는 반대를 하지 말고, 일의 공백을 줄이고 작은 일이라도 성사시켜가며 일하는 재미와 보람을 갖자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한 원로분이 “입안의 치아처럼 함께 하는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이 마음에 와 닿았었다. 각 치아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도 각각의 기능을 가지고 조화를 맞추고 있는데, 이 사회에는 갈등을 만들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들에게는 필자가 말하려는 것도 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일을 잘하기 위하여서는 서로를 알고 이해해야하는데 그 기본은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소통을 잘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소통의 기본은 경청(傾聽)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아도 네가 왜 그러는지 다 알아”라고 확실하지 않은 것을 성급하게 미리 자기 편하게 생각하는 지레짐작이 아니고, 들어서 상대방의 입장을 알고, 이해해야 소통이 가능하다. 궁예질이라는 말이 있다. 궁예가 말년에  관심법이라고 하여 정적 제거를 위해 제멋대로 추측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던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권력자가 이렇다면 공포시대가 되는 것이다.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빠른 스포츠카를 타고 다녀도 꽉 막힌 길에서는 어쩔 방법이 없다. 멈출 수밖에. 막힌 길이 뚫린 후에야 나아갈 수 있다. 필자도 차가 막히면 답답해하는 편인데 운전하다가 느낀 점이 있다. 빨리 달리는 차 앞에는 항상 느린 차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출근할 때 오늘은 서두르지 않고 먼저 가겠다는 차는 다 먼저 보내겠다고 생각했더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몸도 혈액순환이 잘 되어야 하는데 막히면 문제가 생긴다. 때로 돌연사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혈액순환에 장애를 주는 원인의 절반이상은 해결될 것 같기도 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치과의 밑이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어서 날씨가 영하 10도 내외로 추워지면 아침에 찬물 수도관이 얼어서 하루 종일 찬물이 나오지 않는다. 올 겨울에도 몇 차례 이런 일이 있었다. 찬물 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려도 뜨거운 물이 나온다. 물이 나오긴 하지만 너무 뜨거우니 쓸 수 없다. 무심코 칫솔질을 하고 입가심을 하려다가 당황한 적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한 쪽만 뚫려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찬 것, 뜨거운 것이 모두 뚫려야 한다. 문제가 또 있다. 필로티 공간이 넓어서 어디서 막혔는지 찾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당연히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눈은 둘, 귀도 둘, 입은 하나이니 많이 보고, 많이 듣되, 적게 말하라는 뜻이라고 우리는 풀이한다. 듣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아라비아에는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라는 속담도 있다고 한다.
 

경청의 청(聽)자를 분석해보면 왼쪽에 귀 이(耳) 자 밑에 임금 왕(王) 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열 십(十) 자 밑에 눈 목(目) 자를 옆으로 눕혀 놓은 글자가 있고, 그 아래 한 일(一) 자와 마음 심(心) 자가 차례로 놓여 있다. 듣는 다는 것은 왕 같은 커다란 귀로 집중해서 들으라는 의미이고, 열 개의 눈이라고? 우리는 두 개의 눈밖에 가지고 있지 않지만 상대를 이해하기 위하여 말하는 사람의 입술 뿐만아니라 표정이나 눈빛, 태도 등의 몸짓 등을 열 개의 눈으로 보듯이 그만큼 집중해서 보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안테나가 주파수를 잡기 위하여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몸의 방향도 상대방에 맞추려 노력하여 상대방의 말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옛날 군대에서 주목(attention)이라는 구호를 생각하게 한다. 들을 청(聽)의 마지막 조합은 바로 일심(一心) 즉 한마음이다. 들을 때는 상대와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소통의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와 한마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잘 들으려면 상대방이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암(癌)이라는 한자를 보면 중앙에 입 구(口) 자가 세 개나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산(山)에 막힌 모양새로 되어 있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들을 풀어내지 못하고 가둬 두면 스트레스가 되어 결국 암에 걸릴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서로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서로를 위하여 이것을 몇 번이고 강조하고 싶다. 
 

필자 스스로도 아직도 내가 생각한대로만 한다는 집사람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못하고 있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내 목소리가 커질 때가 있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집사람이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덮어 씌워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소통이 잘 이뤄지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알 때는 죽을 때라는 말도 있는데, 나도 나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일부 받아들이고, 의식적으로 수긍하면서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자(莊子)는 성인(聖人)은 꼭 그러한 것도 그렇다고 고집하지 않는 반면 보통 사람은 꼭 그렇지 않은 것도 꼭 그렇다고 고집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하여 무력을 쓴다고 하였다. 현실에서는 이 무력에 고소, 고발이라는 것도 포함이 되어있을까? 우리가 성인이 될 수도 없어서 쉽지 않겠지만 속이 비어 있는 악기나 종(鐘)이 속에서 공명(공명통)이 되어 좋은 소리를 내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공명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하였다. 사람도 마음을 비워야 참된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였다. 편견과 고집 즉 굳어져 있는 마음을 잠시 비우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떤가? 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고 하였으니.
 

모두 듣는 것의 중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지도력은 웅변보다 경청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통하는 말인 것 같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