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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는 멋 - 2. 숯 골 내(炭洞川) ‘숲향기길’

수필

금병산(錦屛山)은 이성계가 조선 창업의 큰 뜻을 품고 8도를 돌며 기도하다가 “비단 병풍을 갖추고 치성하라.”는 현몽을 얻어 찾은 곳이라고 한다. 최고봉이 372m로 대전 유성구와 세종 금남면에 걸쳐 열두 봉우리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비단 병풍 아늑한 품 안에 대한민국 군사교육ㆍ훈련시설인 자운대가 둥지를 튼 지 어언 27년이다. 수운교 도솔천을 돌아 소하천을 거슬러 눈부신 억새밭을 지나면, 사방댐 위로 탄동천 맑은 물 7.4Km의 발원(發源)지를 만난다. 탄동교에서 물 따라 한국기계연구원과 애경ㆍ대림ㆍ쌍용ㆍ한국타이어ㆍ호남석유 및 화학연구소를 거쳐 신성교에 이른다. 여기서 탄동천과 갑천이 합류하는 2.94km가 ‘숲향기길’이다.

 

갑천은 다시 흘러 저 아래서 금강과 합류한다. 도룡동 집에서 출발 국립중앙과학관까지 남행하여 우회전한 뒤 만나는 매봉교에서 신성교까지가 바로 ‘선택 2호’의 하이라이트, ‘숲향기길’이다. 신성교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연구단지 네거리를 넘어 집에 온다. 합계 9,000보로 건강을 위한 하루 권장량을 너끈히 넘긴다.

 

‘숲향기길’의 춘하추동은 벚꽃ㆍ녹음ㆍ단풍ㆍ갈대다. 그 사이로 탄동천이 흐른다. 물줄기가 완만한 곡선이 오선지라면, 드문드문 모래톱은 음표다. 부드럽게 감기는 굽이마다 저 상류 사방댐에서부터 머금고 온 하얀 모 래를 조개가 해감하듯 부려놓고 간다. 유체역학 이론대로 거리가 짧은 쪽은 흐름이 느리니까, 좌회전이면 왼쪽 우회전이면 오른쪽이다. 손바닥만 한 모래사장에도 한 움큼의 갈대가 뿌리를 내리는데, 소곤소곤 흐르는 숯골 내 갈대는 여느 갈대처럼 우거지지는 못해도 성기어서 더 귀티가 난다. 물길 동서로 인도가 있고 서쪽은 자전거도로까지 나란하다.

 

잊을만하면 만나는 벤치며 정자는 오선지의 쉼표다. 절간처럼 조용하고 행인도 드물어 무념무상 걸어도 생각에 잠겨도 딱 좋은 이유는 양편 건물 모두가 한국의 브레인 연구기관들인 때문이다. 매봉교에서 차례로 국립중앙과학관ㆍ원자력안전ㆍ조폐공사ㆍLG데이콤ㆍ국제지식재산ㆍ생명과학ㆍ지질자원ㆍ에너지자원 등 연구소와 위성센터ㆍ천문대도 있다. 신성교와 교차하는 대덕 큰길가에는 좌에 한화ㆍKT&G가 우로는 단지 입주 1호 표준연구소와 LG생활건강ㆍKTㆍKORADㆍNRFㆍ융합기술연구생산센터ㆍUST대 학원대학ㆍETRI가 있다. 서쪽으로 KAIST와 충남대학이 연결되고, 그 북에는 원자력연구원 등 전부 부르기에도 숨이 찬 연구기관과 벤처기업이 모여 주민 인구 대비 박사 수가 전국에서 으뜸이다.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예과 2년 때 군사혁명 1주년 기념 경복궁 산업박람회(1962). 미국관에 존 글렌 중령의 우주복 모형이 걸렸는데, 우리 공산품은 탈곡기와 재봉틀 그리고 방앗간 발동기가 고작이었다. 겨우 수입상품을 대체하고 쌀 자급도 덜된 1973년 12월, 박정희는 선박ㆍ해양개발ㆍ기계기술ㆍ석유화학ㆍ전자기술 등 5대 전략기술연구소 설립을 위한 육성법을 제정하였다. 1968년 고 최형섭 장관이 제안한 중화학공업의 두뇌, 연구단지계획이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대한민국 경제 기적이 그저 미국ㆍ일본 따라 하기(Fast Follower)였을 뿐이라고 믿는가?

 

고속도로공사 시작과 함께 이미 연구 단지를 준비하다니. 일어서서 허공을 향하여 크게 외치고 싶다. “니들이 대붕의 뜻을 알아?”라고. 단지 조성 사령관이던 오원철 단장에 이어 공신(功臣) 3인방의 막내로, 청빈했던 고 안경모 장관은 퇴임 후 여생을 도룡동 ‘녹원 식당’의 카운터를 지키셨다. 필자의 추임새가 마음에 드셨는지, 우리 부부가 가면 2층에 따라 올라와 대통령 모시고 헬리콥터로 전국을 누비던 회고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셨다. “장관님, 존경합니다. 그립습니다.”

 

 

 

 

임철중 치협 전 의장

 

- 대전 문화예술의 전당 후원회장
- 치문회 회원 
-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역임
- 치과의료문화상 수상
- 저서 : 영한시집《짝사랑》, 칼럼집《오늘부터 봄》《거품의 미학》《I.O.U》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