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수행자가 연꽃 향기를 맡고 있으니 천신이 내려와 ‘남이 주지도 않은 향기를 맡는 것은 향기를 훔치는 나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 수행자는 ‘꽃에 상처 주거나 꺾지도 않고 떨어져서 향기를 맡을 뿐인데 그것이 왜 훔치는 행위인가?’하고 납득하지 못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연뿌리를 파내어 연꽃을 손상시키자, 그는 천신에게 ‘왜 저 사람에게는 도둑이라고 하지 않느냐’라고 따졌다. 그러자 천신은 ‘나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말한다. 늘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려는 사람에게는 털끝만큼의 잘못도 구름처럼 커 보인다.’라고 말했다.”
<자타카>나 <잡아함경> 등에 나오는 위 이야기는 ‘수행이 깊어질수록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새겨들어야 할 귀중한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연뿌리를 파내어 연꽃을 손상시켜버리는 사람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말해볼까 싶습니다.
수행자가 많으면, 부처가 많아지면 불국정토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아무리 수행자가 많아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어도, 이 사바세계에 단 한 명이라도 연뿌리를 파내는 사람이 남아 있는 한 불국정토는 요원한 일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 한, 천국이 도래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뿌리째 파내가 버리는 어린 양이 단 한 명만 있어도 말이죠. 앞서가는 사람의 수준이 아니라 뒤쳐진 사람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라는 것은, 독일의 식물학자 유스투스 리비히(Justus Liebig, 1803~1873)의 ‘최소율의 법칙’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정확히 일맥상통합니다.
‘필수 영양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다.’ 최대가 아니라 최소가 성장을 결정한다는 이 이론은 비단 식물의 성장에 국한된 법칙이 아니라 개인, 조직과 사회, 국가 발전의 전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법칙이기도 합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개인이나 조직의 리더들이라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법칙입니다.
현재 인류의 의식 수준을 초월해 한계를 뛰어넘은 선각자들이 이제까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세상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긴 했지만, 혁명적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최소율의 법칙’ 때문일 것입니다. 인류 전체의 가장 의식 수준이 낮은, 바로 그 사람의 수준이 한 단계 오를 때, 그때 바로 인류 전체의 의식 수준이 비로소 한 단계 오르는 것, 그것이 바로 ‘최소율의 법칙’입니다.
예를 들어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굉장히 높은 의식의 수준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낮은 수준에서 평화가 이해되고 요구될 때, 그때 비로소 세계 평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가장 낮은 의식의 수준이 그 조직, 사회의 의식 수준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최소율의 법칙’이란게 대략 그렇습니다. 지성인, 선지자가 앞장선다고 인간 사회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의 수준이 올라와야 비로소 인간 사회의 수준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역량에 있어서도 ‘최소율의 법칙’은 유효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역량을 보여주는 개인이 있더라도 어떤 다른 한 부분에서 심각한 결핍이 있다면 되레 그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습니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가장 부족한 부분에 신경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자신의 가장 취약한 점 때문에 무너지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즉,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의 진면목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바닥을 찍었을 때, 그때 드러나는 모습과 태도가 그 사람, 그 조직의 수준, 민낯이기 때문입니다. 특출난 부분의 역량으로 앞서 나가고 있어 보였던 개인이나 조직의 몸체가 머리를 따라 잘 따라가고 있는지 아직 뒤쳐져 있는지, 진실의 순간에야 알 수 있습니다.
수준의 차이, 격차가 너무 벌어졌을 때 발생하는 ‘혁명’이라는 것이 다만 전반적인 하향평준화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최소율의 법칙’ 때문일 것입니다. 보통 앞서 나가는 사람은 소수이고 아직 뒤쳐진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특출난 능력은 일부이고, 아직 부족한 소양이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뒤집어엎어 평균을 내 보아도 상향평준화되기보다 하향평준화되기 십상인 것은 그만큼 ‘최소율의 법칙’이 준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소율의 법칙’을 통해 교육의 방향이 어디에 맞춰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타고난 재능, 능력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부족한 부분, 가장 취약한 계층을 돌보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하나만 잘 되어서는 결코 전체가 잘 되어갈 수 없습니다. 골고루 잘 되어가야 결국 전체가 잘 되어 갈 수 있다는 것이 곧 ‘최소율의 법칙’입니다.
‘최소율을 법칙’은 치과의사, 구강악안면외과 의사의 수술 실력과 관련된 법칙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술식, 화려한 테크닉, 필살의 비법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고수들의 노하우가 실제 자신의 수술에서 응용되지 못하는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여러 수술 술기 중 어느 하나가 최소 임계점을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최소율의 법칙’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성장과 발전, 유지와 보수에 있어 긴요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든 조직의 유지와 보수를 위해서든, 잘 하고 있고 앞서가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면서 동시에 못 하고 있고 뒤쳐진 것에 또한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통찰입니다.
나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며, 반면 정체시키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장점을 북돋는 것뿐만 아니라 단점을 보완하는 계획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 스스로가 내가 속한 조직, 사회, 국가에서 성장과 발전을 견인하고 있는 사람인지, 발목을 잡고 있는 사람인지도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연꽃 향기만 맡고도 송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인지, 혹여 연꽃 자체를 뿌리째 파내가 버리는 사람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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