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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핵 속 후성유전 물질, 외부 압력 감지하면 15분 만에 ‘스펀지’로 변신해 DNA 손상 보호 및 재생 촉진

스펙트럼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물리적 힘을 받는다. 특히 피부 조직은 늘어나고 수축하는 등 지속적인 기계적 자극에 노출된다. 그렇다면 세포는 이러한 물리적 스트레스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까? 최근 연구를 통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세포가 압력을 감지하면 불과 15분 만에 핵을 딱딱한 상태에서 부드러운 ‘스펀지’ 같은 상태로 바꿔 DNA 손상을 막는다는 것이다. 이 과정의 핵심 열쇠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후성유전 물질 ‘H3K9me3’다.

 

후성유전학이란?
후성유전학(Epigenetics)은 DNA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쉽게 말해,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환경이나 자극에 따라 유전자가 켜지거나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절은 주로 히스톤(histone)이라는 단백질에 화학적 표지를 붙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후성유전 표지 중 하나가 ‘H3K9me3’인데, 이는 DNA를 단단하게 감싸 유전자가 발현되지 못하도록 ‘잠그는’ 역할을 한다. 중요한 점은 H3K9me3가 단순히 유전자 발현만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 핵의 물리적 단단함 자체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H3K9me3가 많을수록 DNA가 빽빽하게 뭉쳐져 핵이 딱딱해지고, H3K9me3가 적을수록 DNA가 느슨해져 핵이 부드러워진다.

 

H3K9me3, 핵의 ‘단단함 조절 스위치’
2020년 핀란드 출신 의사과학자 Sara Wickström 박사(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Cell》에 발표한 연구는 이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Wickström 박사팀은 피부의 각질세포(keratinocyte)를 탄성이 있는 실리콘 배양접시에서 키운 뒤, 기계 장치로 이 접시를 좌우로 반복해서 당겼다. 마치 피부가 늘어나고 수축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실험실에서 재현한 것이다.


놀랍게도 5~40%의 인장력을 30분 동안 반복해서 가했을 때, 세포 핵 안의 H3K9me3 수치가 절반 이하로 급격히 감소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H3K9me3가 감소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기계적 스트레스를 받은 세포에서 DNA 손상이 크게 증가했다.


이는 세포가 외부 압력을 받으면 H3K9me3를 빠르게 제거해 핵을 부드럽게 만들고, 이를 통해 DNA 손상을 막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딱딱한 물체보다 부드러운 스펀지가 충격을 더 잘 흡수하듯이, 핵이 부드러워지면서 외부 압력이 DNA에 직접 전달되는 것을 막아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다.

 

피부 섬유아세포에서도 동일한 보호 메커니즘 작동
단국대학교 이정환/김해원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피부 각질세포뿐만 아니라 진피의 주요 세포인 섬유아세포(fibroblast)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밝혔다. 연구팀은 인간 피부 섬유아세포에 10%의 주기적 인장력을 가했을 때, 불과 15분 만에 H3K9me3 수치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동시에 핵막 주변의 단단한 DNA 구조가 풀어지고, 핵의 단단한 정도가 약 50% 감소했다.


평소 세포 핵은 H3K9me3가 DNA를 단단히 감싸고 있어 딱딱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런데 피부가 늘어나는 등 외부에서 물리적 압력이 가해지면, 세포는 이를 즉각 감지하고 불과 15분 만에 H3K9me3를 절반 이하로 줄인다. 마치 자동차 충돌 시 에어백이 순식간에 펼쳐지듯 빠른 반응이다. H3K9me3가 줄어들면 핵이 스펀지처럼 부드러워지면서 외부 충격을 흡수해 내부의 DNA가 손상되는 것을 막게 된다.


연구팀은 이 세포 실험 결과가 실제 생체 조직에서도 일어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생쥐 실험을 진행했다. 생쥐의 등 피부 일부는 정상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다른 부위는 피부와 근육을 분리해 긴장을 해제했다. 24시간 후 분석 결과, 긴장 상태가 유지된 피부의 섬유아세포는 긴장이 해제된 부위에 비해 H3K9me3 수치가 낮았다. 이 상황에서 약물을 이용하여 억지로 H3K9me3가 감소하지 못하도록 할 경우, DNA 손상이 증가했다. 이는 실험실 결과가 실제 생체 조직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임상적 의미: 잇몸 수술 시 조직의 적절한 긴장 유지가 DNA 건강과 재생에 중요
이번 연구 결과는 치주 수술이나 임플란트 수술 시 조직 긴장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생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임상에서 잇몸 수술 후 봉합 시 판막 박리술(flap undermining)을 시행하는 이유는 과도한 장력 발생을 막아 봉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는 여기에 숨겨진 생물학적 의미를 밝혀냈다. 판막 박리를 통해 과도한 긴장을 제거하면, 조직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수준의 적절한 긴장 상태(homeostatic tension)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생리적 긴장 상태에서 섬유아세포의 H3K9me3가 감소하면서 DNA가 열리고, 동시에 조직 재생에 필요한 유전자들을 활성화시켜 상처 치유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즉, 판막 박리술은 단순히 봉합을 쉽게 하기 위한 테크닉일 뿐만이 아니라, 조직 재생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활성화되어 치유가 촉진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반대로 봉합 시 과도한 긴장이 유지되거나 완전히 긴장이 해제된 상태에서는 이러한 보호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DNA 손상이 증가하고 치유가 지연될 수 있다. 이처럼 적절한 조직 긴장 하에서 H3K9me3 감소를 통한 염색질 재구성이 조직 재생을 촉진한다는 발견은 상처 치유, 조직 재생, 노화 등 다양한 생리·병리 현상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이는 치주 재생 및 임플란트 주위 조직 치유를 포함한 재생의학 분야에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재생의학 분야 최상위 국제 학술지 《Advanced Science》 최신호에 게재되었다 (https://doi.org/10.1002/advs.202510554).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