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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보호자, 나의 스승들

시론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아치과 수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 어린이들을 위한 치과병원을 개원한지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다고 했던가요? 그동안에 수많은 환자 아이들과 보호자분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치과에서 환자아이를 치료해주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지식은 당연히 치과대학에서, 수련기간 동안에, 그리고 교과서에서, 저널에서, 학회에서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지식들에 임상의 경험들이 축적되어 점점 더 유연하게 진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임상 30여년 이상의 기간 동안 저는 환자 보호자분들께서 저의 스승이 되어주신 적이 종종 있습니다. 대표적인 몇 사례를 소개하려 합니다.

 

첫 번째는 레지던트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어머님께서 생후 29개월짜리 딸을 데리고 오셨습니다. 주소는 턱이 더 나오게 물리는 3급 부정교합이었습니다. 너무 어린아이라서 당연히 어머님께 조금 아이가 더 커서 인상채득과 장치 장착 등의 교정과정을 감당할 수 있을 때 교정을 고려하자고 권유해드렸는데 어머님께서 실패해도 좋으니 인상채득 과정을 시도해달라고 간청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실랑이를 하다가 어차피 아이가 힘들어서 울어버리면 포기하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알지네이트 인상채득을 해보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가 너무 가만히 잘 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상, 하악 모두 성공하고 가철성장치를 만들어 장치장착도 너무 잘 해주어서 단 3개월만에 가성 3급부정교합이 완전 정상교합으로 개선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개원 후 얼마 안돼서 우유병우식증으로 유전치 치수괴사양상의 35개월 남아였습니다. 크라운 등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치료는 수면진정치료(deep sedation)로 계획하고 그 전 발수 등의 짧은 치료는 잠깐 페디랩의 신체속박으로 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첫 날 10여분정도의 치료를 하였는데, 치료 사흘 후에 아이 아버님께서 혼자 찾아오셔서 잠깐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무슨 일일까 하고 마주 앉았는데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치료를 받고 다음 날부터 걷지를 못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발가락 끝을 펴지를 못하고 굽히면서 자꾸 앞으로 넘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아과를 가서 상담받아보니 아마도 치과에서 억지로 치료를 받아서 정신적인 충격이 있어서 그런 것 같으니 소아정신과를 가보라고 했고, 그곳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것을 컴플레인 하시면서 위자료를 요구하시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저보고 아무리 짧은 치료라도 보호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설명을 사전에 해주었으면 좋았겠다는 조언을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 아이는 이후에 예정대로 진정치료로 치료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교통사고로 영구 전치를 상실해서 온 아이가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치아를 잃어버려서 재식도 해볼 수가 없는 안타까운 경우였는데 발치된 중절치를 나중 아이 성장이 다 된 후인 대학생 정도 될 때까지 가치로 지내게 해주려고 고정성으로 만들어주었는데 아이의 교합이 매우 강하여 가치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고, 가철성으로 만들어주니 분실을 반복해서 대략난감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몇 번째 그런 일이 있던 중에 상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임플란트를 해줄 수 없냐구요. 그래서 아직 성장중에 임플란트를 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 저널의 증례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안되는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는데도 아버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덜 성장된 임플란트 중절치를 나중에 대학생 이상의 나이가 되었을 때 골이식 등의 과정을 통해서 정상적으로 회복해줄 수는 없냐고 질문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소아치과 전문의라 임플란트 쪽에는 경험이 없어서 동료 임플란트 전문 원장에게 문의를 했더니 추후 제거가 쉽도록 미니 임플란트를 심으면 협설측으로 골흡수도 예방되면서 나중에 제거도 쉬워서 대학생 이후 정상적인 임플란트 크라운을 시술해줄 수 있다고 희망적인 의견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미니임플란트를 심고 상방에 교합력을 최소로 받을 수 있는 임시크라운을 만들어줌으로서 환자아이, 보호자분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10년 정도를 지내게 할 수 있었고 아이는 대학생이 되어 계획대로 정식 임플란트 시술을 잘 받고 활짝 웃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조언의 보호자분들이 계셨습니다. 저도 그런 의견을 들으면 스쳐 지나가지 않고 귀 기울이는 자세가 되어 지내오고 있습니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 선생이 있다란 뜻입니다. 세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으로부터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또, 길을 걸을 때에 5살짜리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더 배운 전문가가 비 전문가를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치과의사들의 전문적인 지식, 그리고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나 보호자에게 치과진료에 대해서 알려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틀에 벗어나는 의견을 말씀하시거나 요구를 하시는 분들을 어떨 때는 ‘진상’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위에 몇 가지의 경험을 나누어드렸듯이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보호자분들도 당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겨나는 진정어린 생각이 오히려 아이를 위한 새로운 지경을 열어주시기도 한다는 것을 저는 배웠습니다. 그 이후에 교정에 있어서 아이의 협조 여부는 아무리 어리더라도 직접 해보지 않고 미리 판단하지 않고, 협조가 안되는 아이를 억지로 붙들고 치료해달라고 원하시는 보호자분들께는 아이가 소아정신과를 갈 정도로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받을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빠지지 않고 사전설명을 드려 동의를 구하고, 소아청소년시기의 영구치 상실이나 결손의 경우에는 소아치과 전문적인 지식만으로 치료계획을 세우지 않고 임플란트 전문의와 사전상의를 한 후에 결손치에 대한 치료계획을 세웁니다. 그 외에도 보호자분들께서 전해주신 많은 의견들을 아이를 위해서라면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복 받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스승이 나이가 많고 적고는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또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인 위치가 어떠한지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으로부터 느껴서 나의 부족한 점을 메워나가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자격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오늘도 또 어떤 분께서 가르침을 주실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진료실로 나아가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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