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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아 사랑해

릴레이 수필 제2692번째

2014년 1월 14일.
점심 식사 이후 대기실에 앉아 있던 10여 명의 환자분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원장실에 들어가니 부재중 전화가 세 통화나 와 있었다. 삼성의료원 건강 검진센터.


2주 전, 기억에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침대에 누워 ‘속이 더부룩하네’라는 말을 며칠째 했다며 걱정하던 와이프가 삼성의료원 간호사로 일하던 누나와 통화해 다음 주로 건강 검진 약속을 잡아 놓았다. 30대 후반에 무슨 건강 검진이냐고, 조금만 있으면 마흔 살에 무료로 해주는 건강 검진을 받겠다고 했지만, 이 기회에 전신 건강 확인도 할 겸 어렵게 한 예약이니 무조건 받으라는 성화에 150만원이 넘는 돈이 부담스러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못 이기는 척 검진을 받았었다.


지금은 선생님과 같이 모니터를 보면서 위내시경을 받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처음 받는 위, 장 내시경이라 수면으로 진행했고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어렴풋이 “궤양 조직이 있어서 확인하기 위해 조금 떼어 냈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틀 뒤가 검진 결과 듣는 약속 날인데 이렇게 먼저 전화가, 그것도 부재중 전화로 세 통씩이나 와 있다는 건 뭔가 ‘쎄’한 느낌이 들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발신 번호로 전화를 하니 상담 간호사분이 전화상으로 말해줄 수는 없고 일단 빨리 나와서 결과를 들으라고만 한다. 나도 환자를 보고 있는 치과의사고 예약 환자들이 있어서 당장은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했더니 “위암입니다”라는 상대방의 말이 머리를 맴돌고 있다. 그 당시 암이면 죽는다는 생각만 했지, 학부 시절 병리학 시험 문제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기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상황에 당황스러웠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노력했던 거 같다. 대기 환자가 밀려있다고 하는 원장실 밖에서 들리는 치과위생사의 목소리에, 전화기 넘어 간호사분께 일단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반사적으로 ‘벗어 놓은 마스크를 쓰고 진료실로 나와 유닛 체어 앞에 앉는 모습’이 뇌리에 박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직도 눈에 선하다. 돌아보면 지금껏 한 번도 정신적으로 무너진 적은 없지만, 이때는 속으로 욕을 계속 되뇌었던 게 생각난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다른 사람들 아프지 않게 한다고 환자를 보는 게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환자를 어떻게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 이틀을 보내고 약속 날짜에 검진 결과를 들으러 삼성 의료원 검진센터 상담실에 앉았다. 전신 건강 검진을 했기에 다른 부분도 설명을 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말은 십이지장으로 연결되는 유문 부위 위쪽으로 1.5cm 정도의 궤양이 있고, 사이즈는 크지 않지만 biopsy 결과 cancer stage 3기 이상에서만 발견되는 cell이 보여 수술을 하자고 한다. ‘수술’이라는 말에 같이 간 와이프는 꾹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고 그 모습이 너무 미안해, 하얘진 머릿속으로 손을 잡아주는 거 말고는 해줄 것이 없었다.


양가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 분들은 오진일 수 있으니 다른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지만 3기 이상에서 발견되는 세포가 보인다면 전이가 될 수 있는 상황임을 알기에 빨리 수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단 일 초도 암세포가 내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이 싫었던 거 같다.


다행히 담당 교수님 수술 약속 중 취소가 된 시간이 있어 2주일 뒤 위 절제 수술을 받기로 했다. 공동 개원 중이었기에 함께 근무하는 원장님들께 상황을 설명드렸고, 감사하게도 원장님들의 배려로 수술 후 한 달간 쉬기로 했다. 다시 한번 원장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수술 전날, 건강 검진받기 2주 전 셋째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임신 7주 차인 와이프가 좁은 보호자 침대에서 초조하게 누워있는 모습에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에 와이프를 안심시키기 위해 수술하고 나와서 제일 먼저 사랑한다고 말할테니 걱정말라고 안심을 시켰다.


수술하기 위해 이동용 베드로 옮기면서 도와주시는 분이 ‘파란 하늘이 끝나면 수술실이에요’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는 동안 무슨 말씀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곧 궁금증은 풀렸다. 삼성의료원 암센터 수술장으로 들어가는 복도 천장에는 파란 하늘이 그려져 있고, 수술실 입구에는 둥그런 하늘이 그려져 있었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까지도 그렇게 맑은 하늘은 본 적이 없다. 교정과 의사가 수술방에는 들어갈 일이 많지 않지만 수련 시절 담당하던 양악 수술 환자 중 몇 분은 수술방에 들어가 옵져베이션을 했고, 구강외과 교수님의 배려로 몇 분은 어시스트를 할 수 있었기에 수술방이 어색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환자복을 입고 들어가는 수술방은 왜 이리 춥고, 수술 베드는 왜 그렇게 작게 느껴지던지.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누나의 배려로 보호자는 못 들어오는 회복실에 들어와 있던 와이프 말에 의하면, 회복실에 들어오고 마취가 깨지 않아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내가 잠깐 눈을 뜨고 와이프를 보고서는 ‘신형아 사랑해’라고 말하고 다시 잠들었다고 한다. 살아남기 위한 남편의 정신력, 아니 와이프에 대한 사랑의 힘은 대단하지 아니한가. 이 한마디로 나는 이후 몇 년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었고, 이 말을 들은 고등학교 동창은 잠꼬대하는 척 와이프 이름을 부르면서 사랑한다고 했더니, 몇 달간 저녁 시간 자유 이용권을 얻었다고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스타벅스 닉네임, 골프존 아이디는 ‘신형아 사랑해’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신형아 사랑해’님의 닉네임이 불릴 때마다, 골프존에서 ‘신형아 사랑해’님이 샷을 하라고 할 때마다 생명의 은인인 와이프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간다. 물론 와이프는 동의하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