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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

이미연 칼럼

요즘 유난히 피겨선수 연기가 추천영상으로 많이 보인다 싶었더니, 올림픽 시즌이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와 알프스의 자연이 아름다운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제25회 동계올림픽의 막이 올랐다.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는 첫 동계올림픽은 노르웨이에서 개최한 릴레함메르 올림픽이다. 그 전에는 동계스포츠는 나와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야 우리 어머니도 어려서 학교에서 빙속(스피드스케이팅)을 배운 적 있다고 하셨고, 나와 동생도 집에서 버스를 한 시간 정도 타고 나가야 있는 교외의 논두렁을 얼려 만든 얼음판에서 매년 겨울 스케이트를 타고 놀긴 했다. 그렇지만 내가 성장함에 따라 도시도 같이 성장하여, 동네 공터도 교외의 농촌도 사라져갔다. 롯데월드에 상시개장 아이스링크가 생기긴 했지만 집에서 가까운 논두렁 아이스링크는 없어졌고, 스키가 대중화되기 시작하였지만, 스키장은 여전히 너무 먼 장소였다.


릴레함메르 대회는 치러지기 전부터 뉴스거리가 풍성했다. 사 년마다 열리는 다른 대회와 달리, 하계올림픽과 개최시기를 분리하기 위해 2년만에 다시 열린다는 점이나, 감자와 옥수수전분으로 먹을 수 있는 식기를 만들어 쓰레기를 줄이는 친환경대회로 치르겠다는 소식이 흥미로웠다. 그 무렵 우리집에 PC가 생겼다. 컴퓨터 학습이라는 부모님의 설득된 목적이 무색하게 ‘지능계발’에만 몰두하던 동생과 나는 ‘동계올림픽[Winter Challenge]’ 이라 불리던 고전 게임에 한창 빠져 있었다. 스키활강과 스피드스케이팅 외에도 픽셀로만 본 스키점프니 봅슬레이 같은 경기를 TV로 시청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릴레함메르 대회에서는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대회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경쟁력 있는 동계 스포츠 선수가 배출되기에는 저변이 너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빠 메달획득에 환호하는 같은 반 친구의 모습을 신문지면에서 확인하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동계올림픽은 2010년의 밴쿠버 대회이다. 나는 늦깎이로 치전원생이 되어 그 겨울에 원내생 생활을 하고 있었다. 피겨의 불모지라는 우리나라에서 우뚝 솟아난 김연아 선수가 최초의 한국인 피겨 금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지대한 압박과 관심을 받고 있던 날, 오후 턴에 들어가기 전에 김연아 선수의 프리 연기를 볼 수 있을지 마음을 졸이며 치과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오후 한 시, 도시 전체, 아니 온 나라가 숨죽이고 멈춰 있던 듯한 그 시간이 아직도 생각난다.


요 며칠 거슈윈의 피아노협주곡 바장조 프로그램을 몇 번이고 되풀이 보았다. 벌써 16년도 더 지났으니 의상이며 프로그램이 시대에 뒤떨어져 보여야 당연할 것 같은데, 운동선수로서 정점에 섰던 그의 연기는 여전히 가슴이 설레도록 아름답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그의 훨씬 아름다운 모습은 은퇴 뒤이다. 십 수년간 수많은 훈련과 부상으로 아픈 몸으로 인해 은퇴선언을 한 다음에도 후배들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기 위해, 현역으로 다시 돌아와 경쟁에 참석하던 모습, 다시 참석한 올림픽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석연치 않은 판정을 받고도 그 또한 경기의 일부라며 의연하던 모습, 칼바람이 매서운 평창에서 높이 설치된 무대에서 피겨 스케이팅 연기를 펼쳐 보이기 위해 몸이 평소보다 두 배는 커 보일 정도로 두텁게 옷을 겹쳐 입었던 모습이 참 이쁘고 자랑스러웠다. 물론 그 자리는 선수 본인에게 영광이기도 하였겠으나, 공동체를 위해 사사로움을 희생하지 않았다고는 누구도 말하지 못할 것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다. 이 유래는 송나라왕이 군사요새를 지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라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니 지나는 사람들도 멈춰 구경을 하고, 일꾼들도 피로를 잊었다. 이에 왕이 계를 불러 상을 내리려 하니, 그는 자신의 스승인 사계의 노래가 한수 위라며 사양하였다. 그러나 사계의 노래는 행인이 멈추지도 않고 일꾼들은 더 피로해 보였다. 사계의 노래가 더 좋은 게 맞는지 왕이 의문을 가졌는데, 건축물의 결과가 달랐다. 제자가 노래하였을 때는 벽돌을 네 판 쌓았고 창으로 찌르면 다섯 치가 패였지만, 사계가 노래할 때는 벽돌은 여덟 판이 쌓였고, 두 치 밖에 패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몸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지혜있는 자가 환자에게 그 약을 먹이는 것이고,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릴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성공적인 결과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삼 년마다 열리는 우리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중요한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에게는 어떤 대표가 필요할 것인가. 근거없는 장밋빛 청사진이나 아전인수격의 자화자찬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인식시키고 우리 요새를 견고하게 짓도록 독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좋은 약은 입에는 쓸지언정 몸을 회복시킨다. 좋은 리더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쓴 것을 먹인다는 원망을 감수하는 의원같이, 공동체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사로운 이득을 내려놓는 사람일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