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5번째
그림과 나 (하)
<지난호에 이어 계속>
어느 날 나는 건강을 위해서 스포츠 댄스학원을 갔다. 운동량이 많아서 건강에 매우 좋은 줄 알고 학원을 방문했다. 잠시 머물러 관람을 했다. 언감생심 택도 없는 일이었다. 그 빠른 동작을 소화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학원 문을 닫고 나왔다. 진료실로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는 건데…오기가 생겼다. 학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무작정 등록을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깐. 그 뒤 나는 8개월에 걸쳐 56번코스를 완전히 마스터 했다. 동작 빠른 사람은 한 두달이면 되는 것을, 노인이 뒤늦게 춤을 배우겠다고 하는 것이 웃음거리요, 굼뜨는 동작으로 서투름을 보이는 것은 더욱 웃음거리다. 그러나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앞에서는 안되는 게 없는 것이다.
나는 인생살이가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같은 라인센스를 갖고도 경영의 성패에 차이가 난다. 문제는 자기 현실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고충에 대한 극복의지에 따라 성공과 실패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림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동기동창화가 선생님한테서 동기동창 여러 명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중도에 포기를 했다.
나는 고독한 공부를 한 것이다. 외로운 산행을 한 것이다. 노력이 조금씩 쌓이면 비록 작더라도 결실은 있게 마련이라는 신념에서 이다. 그러나 회화의 작업은 그려놓은 작품에 마음에 차지 않는 갈등 속에서 지우고, 허물고 그리고 다시 만드는 고행의 연속이다. 표현이 미흡하면 붓질의 힘 외에도 마음공부가 미약한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술도 마시고 여행도 하는 방황을 통한 성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시인도 철학자도 되면서 몸부림치는 회화의 작업은 대단히 훌륭한 마음공부 인 것이다. 성숙을 지향하는 모든 노력이 일상의 태도에 묻혀있음으로써 우뚝 서 있는 자기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정신의 방이 넓어야 노년에 아름답다는 박범신 ‘젊은 사슴에 관한 은유’라는 말을 나는 항상 기억한다. 내 노년을 아름답게 하기위해 정신의 방을 넓혀야겠다. 원숙함은 담금질의 순환과정에서 묻어나온다고 했다. 세상만사가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그림 그리는 작업은 빈 화실에서 혼자 하는 외로운 직업이다. 만지고 또 만지면서 진한 진정성과 호흡이 화폭에 담기고 그래서 그림은 숨을 쉬고 가슴이 뛰는 그런 작품이 되는 것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일상의 매사에 부딪히면서 화가의 눈은 항상 반짝인다. 사랑, 기쁨, 슬픔, 외로움 등의 인생의 철학적 고뇌를 작품에 담았을때 보는 이의 감동이 있게 마련이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공부를 많이 한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감동을 갖게 마련이다. 난해하지 않는 보편성에서 그 진정성이 모든 이에게 전달이 될 때 그 작품의 가치는 걸작이 된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나는 평소 평범의 연속이 비범이란 말을 좋아한다.
지난 일요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루오전’과 ‘모네에서 피카소까지’의 전시장을 찾았다. 입장하는데 꽤나 길게 줄을 서야했다. 전시장엔 관람객이 많아서 사람들 어깨 너머로 겨우 관람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이 매우 대단한 것을 보고 나는 새삼 놀랬다. 매우 뽀사시하고 색채가 아름다운 르느와르 그림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는 고통을 모르는 작가라고 하지 않는가. 그는 관절염을 앓아서 손 마디 마디가 아파서 붓을 잡기 어려웠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어정쩡하게 젓가락을 잡는 듯한 자세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나 그의 그림은 어둡고 외로운 고통과는 거리가 먼 것같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그를 고통을 모르는 작가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관절이 붓고 아프고 관절운동에 제한을 받는다. 거기서 어떻게 그토록 화사한 그림이 나올 수 있을가? 고통을 극복하고 저 멀리 보이는 태양을 향해 일심전력한 그의 노력이 그를 유명화가로 만들어낸 것이다.
소소당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진정성이 없는 예술가는 삶을 터득하지 못한 자라 했다. 無心, 玄妙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는 뜻이다. 만약 그 경지 안에서 현실에 눈을 뜬다면 그것은 다시 예술가로서의 죽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내면을 밝히는 총명의 빛을 덮어둔 채 세속의 한가운데로 몽롱하게 뛰어드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 묻히어 세상을 외면하고 자기개발을 위한, 자아를 찾기 위한 심각한 수련을 하는 사람들을 도 닦는 사람이라 한다. 그것은 자기 내면에 있는 총명의 빛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름대로 자제하고, 금욕하고 절제해야 되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은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대지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자유를 만끽하는 자유인의 모습이야말로 강한 창조적 자립을 닦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9월 1일 제46회 목우회 미술대전에서 나는 특선을 했고 11월에 제28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다시 한 번 특선의 영예를 가졌다. 비록 전문가의 길을 가지 않았지만,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취미삼아 虛虛實實걸어온 미술인으로서 이제 열매를 맺은 것이다. 좋아서 가는 길이야말로 행복한 길이다. 나는 이 길을 끝가지 걸으면서 나의 느낌을, 방황을, 흔적을 남기면서 살아 갈 것이다.
유 태 영
서울 유태영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