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3번째
자연 예찬(2) ‘꽃은 왜 향기가 날까?’
자연의 존재에 대한 두 가지 해석 : 기계론적과 목적론적 설명방식
손 경 상
원주 상아치과의원 원장
한편 자연의 존재에 대한 두 가지 매우 다른 목적론적 설명 방식이 있다. 우리 인간의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꽃에 대한 이 두 가지 목적론적 설명방식을 비교하여 보자. 꽃이 향기를 내는 이유 곧 ‘왜’를 알아보자. 먼저 ‘꽃이 향기를 내는 이유는 벌과 나비를 유인(유혹)하여 수정을 함으로써 자신의 종족을 번식하기 위함이다’ 또 다른 목적론적 설명은 ‘꽃이 향기를 내는 이유는 벌과 나비를 초대하여 꿀을 주고 상호간 유익을 주는 협력의 방법으로 꽃은 수정을 함으로써 자신이 존재하여 인간에게 행복을 주기 위함이다’ 두 번째 설명 방식에 대하여 혹자는 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 꽃이 어떤 의식이 있어서 인간의 행복을 생각하겠는가 하는 이유에서 이다. 그런데 우리가 솔직한 마음으로 꽃의 존재이유를 살펴본다면 우리는 두 번째 설명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다.
요즘 고양시, 안면도를 비롯해 여러 지자체에서 꽃박람회를 개최한다. 꽃박람회를 하는 곳에 가보면 개와 고양이가 꽃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광경이 목격된 적이 있는가? 아마도 꽃박람회가 열리는 지역의 동네 개와 고양이들은 물론 어떤 동물들도 꽃의 아름다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직 사람만이 관심을 갖고 5시간이상 운전해야 하는 먼 곳으로부터 꽃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찾아온다. 꽃이 존재해 가장 큰 유익을 취하는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 꽃만큼이나 우리 인간 사회의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존재가 있을까? 우리 인간 사회에 행복이 넘치는 곳에 꽃은 자리한다. 우리의 가장 큰 슬픔도 꽃은 위로한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기억에 남는 사건마다 꽃은 인간과 함께 자리한다. 꽃은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이 세상에 목숨을 내어 놓을 경우는 단 한 가지 이유 말고는 없다. 바로 사랑의 이유가 있을 때에만 이 생명을 내어놓는다. 사랑이 가득 찬 마음이 있을 때, 사랑이 목적이 되었을 때, 최고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목숨을 내어 놓는 방법이다. 꽃뿐이 아니다. 가을의 단풍도 우리 인간만이 그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왜 가을에 산 전체가 꽃처럼 물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겨울에 우리가 꽃을 통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조물주가 가을이 마쳐지는 마지막 순간 산 전체를 곱게 물들이는 것은 아닐까? 만일 그것이 맞는다면 다음과 같은 설명도 가능하다.
겨울에 우리가 꽃을 못 본 것이 조물주에게 안타까운 것이라면 봄이 되어 피는 꽃들도 또한 산 전체를 물들이지 않겠는가? 실제로 다른 계절과 다르게 봄꽃들은 산 전체를 물들일 만큼 왕창? 뭉쳐서 핀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 매화, 철쭉, 산수유, 조팝나무, 박태기나무… 얼마나 급했으면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이 필까? 산 전체가 꽃으로 물들면 개와 고양이가 아름다움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갈까? 아니다. 오직 우리 인간만이 가득 산으로 찾아간다. 뿐만 아니라 꽃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치고 웃지 않는 사람 있는가? 왜 웃을까? 꽃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꽃이 존재하는 궁극적 목적은 자신보다는 우리 인간을 위하는 것에 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꽃의 존재로 인해 많은 행복을 얻으면서 꽃이 향기를 내는 것이 자신을 위해 벌과 나비를 유혹한다는 설명을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유혹, 유인이라는 단어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존재들이 자신의 유익을 취하는 최고로 이기적인 경우에 사용하는 것인데, 과연 꽃에게 그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올바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과일의 맛과 향기도 마찬가지이다. 모양, 색, 향기에 민감한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다. 어떤 다른 동물도 우리 인간만큼 과일의 모양, 향기, 맛으로 인해 행복해 하지는 않는다. 과일의 이런 특성들은 자신들을 먹어 없애는 포식자들을 위함이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함이 아닌 것 또한 알 수 있다. 수박의 가득한 수분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함일까? 우리들의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닐까?
자연은 우리 인간의 많은 문제들 그 가운데서도 수많은 생존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자연은 문제 해결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최고의 사랑을 우리 인간에게 베푸는 것이다. 자연이 파괴되면 우리 인간의 생존이 위태해지는 것을 보아 자연이 우리 인간의 생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왜 자연은 우리 인간의 생존을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지켜주는 것일까? 자연이라는 작품을 만든 조물주의 우리에게 향한 사랑이 목숨을 버릴 만큼 큰 것은 아닐까?
인간은 예로부터 자연을 관찰하며 자연 가운데 흐르는 삶의 법칙을 찾아 우리 인간의 삶에 적용하려 하였다. 진화론적인 설명 방식이 자연에 대한 목적론적 설명 방식으로 채택됨으로 우리 인간 사회는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진화론적 설명은 오직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삶을 행복이라고 규정하고 그 최고의 방법으로 경쟁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의 두 번째 목적론적 설명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자연이 자신들의 삶의 이유를 인간의 행복에 두었고 그 방법으로 사랑을 채택했다면 우리들도 자연의 방식을 따라 이웃의 행복을 위한 사랑의 도구가 되어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