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5번째
대륙을 지배한 나라 몽골로부터의 선물<하>
<1857호에 이어 계속>
실제로 몽골에서 우리에게 진료를 받으러 온 많은 환자들이 아픈 치아를 뽑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학생인 우리가 보기에도 신경치료만 잘 해주면 다시 잘 쓸 수 있는 치아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교수님들께서도 그런 환자들에게 치과에 가셔서 신경치료를 받으시면 다시 치아를 잘 쓸 수 있다고 설명드리고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간단한 약만을 처방해서 보내드렸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부터 돌려보낸 환자들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분들은 치과에 갈 여력이 안 되니 제발 아픈 치아를 뽑아달라고 애원했다.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아무리 이론적으로는 뽑아서는 안되는 치아임을 알지만 그런 분들의 사정을 외면할 수 만은 없었다.
결국 둘째날부터는 아픈 이들 중에서 선별해서 발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에서는 이제 환자들도 본인 치아를 유지해서 쓰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잘 알기에 치과에서 이를 뽑자고 해도 안 뽑겠다고 버티는 일이 허다한데 몽골에는 아직 그런 구강건강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자리잡혀 있지 않았기에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나 원칙을 벗어나는 요구를 하는 환자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 요구들을 다 들어줄 수도, 그렇다고 원칙만 내세울 수도 없는 딜레마는 우리 진료팀들을 나흘 내내 괴롭게 했다.
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4명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환자 1명당 하루에 한가지의 치료만 해줄 수 있었다. 예진에서 환자의 상태를 보고 가장 심각하다거나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치아를 1인당 한 부위씩만을 골라야만 했다. 진료인력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으나 환자는 넘칠만큼 많았었기에 두 가지 이상의 치료를 해주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의사면허가 있었더라면 우리도 뭔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었들텐데. 예진과 접수, 기공과정이 필요없고 무의미한 일은 아니지만 우리들 마음에 조급함과 안타까움, 미안함이 동시에 생기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한쪽 이는 보존치료가 필요하고 반대편 이는 발치가 필요한 환자에게 하루에 하나씩밖에 해줄 수 없으니 오늘은 하나만 하고 내일 다시 오라고 말할 때면 환자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기 힘들었다. 우리만 안타까운 것은 아니었다. 직접 진료를 하시는 교수님들은 얼마나 더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까…
진료를 시작하고 셋째날이 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 우리의 예상보다 의치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많아서 보철환자를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국소의치를 만들어주는 데에는 그 순간의 진료시간 뿐만 아니라 그 전후의 기공과정이 필요했기에 사흘하고 반나절의 진료시간을 예정하고 있는 우리에게 모든 환자들의 의치를 만들어주기에는 기공사도, 기공을 다 해줄 시간도, 재료도 모든 것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가셔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칫솔과 치약을 건네드렸지만 이가 얼마 남지도 않으신 분들에게 그것이 큰 도움이 될지 내게는 그다지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행패를 부리는 환자들도 있었다. 진료 일정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멀리서 새벽부터 와서 기다린 환자들이 늘어났는데 그런 환자분들 중에도 어쩔 수 없이 돌려보내야 하는 환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들에게는 물론 다른 치료라도 해 드리고자 했지만 그분들이 원하는 것이 오직 의치를 만드는 것 하나뿐일 때에는 의치 제작이 더 이상 불가능함을 설명드렸을 때 화를 내시고 소리치시는 환자들도 있었다. 사람이 사는 데에 있어서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알고, 치아가 불편할 때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동반되는 지도 아는 우리들로서는 그분들이 화를 내셔도 원하시는 치료를 해드릴 수 없다는 게 죄스럽고 안타깝기만 했다. 소리치는 환자와 그 모든 것을 참으시면서 묵묵히 진료를 계속하시는 교수님들을 보면서 우리는 또 스스로가 왜 그렇게 초라하게만 느껴지던지… 그날 저녁 하루를 정리하고 다음날 진료를 계획하는 시간에 보철과 최유성 교수님은 기공사 수의 부족과 현지 상황의 열악함 때문에 많은 수의 보철환자를 다 치료해 주지 못하고 돌려보내야 했다는 사실에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 모두가 그 눈물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다들 같은 심정이었기에 교수님께 섣부른 위로조차 건넬 수 없었다.
진료를 하는 하루하루가 전쟁과 같이 지나갔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점심때 식사조차 간단히 때우고 저녁까지 입이 바싹 마르다 못해 단내가 나는 상황에서도 진료팀들은 잠시라도 쉬지 않았고 그런 진료팀을 보는 우리 학생들도 잠시라도 꾀를 부리거나 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치과의료 봉사팀 인력이 부족한걸 아시고 몽골 치과대학에 다른 이유로 출장오신 예방치과 신승철 교수님께서도 급히 진료팀으로 합류하셔서 간단한 보존치료와 예방치료로 우리 팀에 힘을 실어주셨다. 단 한사람도 자기 몸의 안위와 편의를 생각해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런 팀원들과 함께 몽골땅에 오게 된 것이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지막 날은 장비를 다시 정리하고 짐을 싸야하는 관계로 오전진료만을 하고 오후엔 우리 옆에서 끝까지 도와준 통역팀들과 기꺼이 진료실을 제공해주신 학교 관계자 분들을 진료해주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했다. 나흘간 총 326개의 발치수술, 201개의 수복 치료, 57개의 임시 의치 제작, 스케일링을 비롯한 치주 치료 25명, 불소도포 등의 예방치료 44개, 162명의 구강검진 등을 통해 총 815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첫날 진료를 마치고 회의 시간에 김철환 교수님께서 ‘열악한 환경이지만 서로가 조금만 더 힘들고 조금만 더 협조하고 조금만 더 배려해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신 말처럼 우리는 그런 팀웍으로 엄청난 폭발력을 만들어 냈다. 각자가 맡은 역할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지만, 적재적소에서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일을 감당해 냈기에 나흘간 무사히 진료를 마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치과치료는 손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손으로 치료를 하기 이전에 눈으로 봐야 하며, 머리는 생각해야 하고, 허리는 몸을 받쳐줘야 하며, 발은 페달을 밟아야 하는 것처럼 치과의료 봉사는 치과의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닌, 치과 의료팀이 다같이 협력해서 한다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에 진료가 필요한 몽골 사람들을 돕고 섬기기 이전에, 우리 팀원 하나하나가 서로를 격려하고, 존중하며, 배려하고, 섬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팀 안에서의 하나됨이 참된 봉사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돌이켜보면 봉사활동을 하는 기간 내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다 조달할 수 없었던 기구와 재료의 부족이나 시간상의 제약들. 실망하고 화내며 돌아가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모두가 기분이 울적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받고 칫솔하나 받아 가시면서 고맙다며 손을 꼭 잡아주시던 할머님과 내일 떠난다는 우리에게 ‘감사하고 세상의 모든 복이 당신에게 내리길 기원한다’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네며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던 한 어린 여학생이 있었기에 낯선 나라 몽골에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주러 몽골로 떠난 우리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돌아왔다. 이런 모든 일들이 이제는 한국에 돌아온 우리에게 또 다른 봉사활동을 추진하게 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임한올
단국치대 본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