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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2번째) 휴가때 단식을?

제1572번째

휴가때 단식을?


집사람 휴가기간에 맞춰 애 셋을 데리고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끌며 공항과 도로 위를 헤매는게 나의 휴가였다. 처음에는 그런 가족여행이 당연했고 즐거웠다. 올 겨울에도 가족들과 스키여행을 갈 생각하면 들뜬다. 그러나 한번쯤은 나만을 위한 휴가가 그리웠다.


7월초 직원 한명이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가게됐다. 기회는 이때다. 그 기간에 맞춰 치과휴가를 잡았다. 집사람의 눈치는 애써 외면했다. 애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주말에 보상하리라 합리화했다.
단식원에 간다고 선포했다. 몸도 마음도 속도 쉬고 싶었다. 그동안 과식, 육식, 인스턴트식 등 안좋은 식습관과 술자리로인해 힘들었을 내 위장에게도 미안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진료하다가 쉴 때, 집에서 쉴 때에도 시간의 공백을 참지 못하고 수시로 먹을거리를 입에 넣고는 곧바로 후회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이건 아니다.


공교롭게도 가고자하는 명상단식원이 주말에 행사가 있어서 첫 이틀은 혼자 알아서 해야했다. 집에서는 안될 것 같아 4학년짜리 큰 아들만 데리고 템플스테이하러 서귀포 약천사에 갔다. 3일동안 75%, 50%, 25% 절식을 해서인지 한끼만 굶었는데도 자세성 저혈압으로 휘청거렸고 힘들었다. 그러나 오후 들어서는 한결 나아졌다. 108 염주꿰매기를 할 때 처사님께서 아들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평소 애들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의 대답에 내색은 안했지만 깜짝깜짝 놀라 끼어들지 않고 듣기만했다.  


다음날 아침 천근만근으로 새벽예불에 참석하고 두시간 보충 잠을 잤더니 몸이 가볍다. 올래 8코스 산책을 갔다. 큰아들과 둘이서만 계곡과 바닷길을 걷는 맛이 너무 좋았다. 늘 애들 셋이랑 다닐 때와는 완전 달랐다. 타종체험도 하고 설명을 들으며 절간 구경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날 몸은 힘들지 않은데 먹고 싶은게 수십가지다. TV 광고 중에 음식광고는 왜 이리 넘쳐나며 드라마에는 먹는 장면이 너무 많았다. 안되겠다 싶어 골프 채널로 돌리니 그린이 완전 포테이토칩 모양이다!  빨리 자는게 상책이다.


다음날 드디어 단식원에 갔다. 단식 첫날 셋째날이 힘들다더니 정말 그렇다. 다행히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어서 따라하느라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다. 효소 때문인지 수련 프로그램 때문인지 저녁에는 완전 정상이다. 넷째날은 몸이 개운하다. 하루종일 배고프지 않은게 신기하다. 배꼽시계도 멈췄다. 노꼬메 오름 등반도 가뿐하다. 둘이 한 조가 되어 한사람은 눈감고 다른 사람 손만 잡고 오르는 것도 가뿐하다. 마음 같아서는 한달도 굶을 수 있을 것 같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다음 프로그램은 식사하고 00시부터 합니다.’라 말하지 않는게 어색했다. 그동안 우리 생활이 식사를 기준으로 돌아갔었구나 싶다.


다섯째 날 점심부터 보식에 들어갔다. 흰죽 반공기를 30분가량 천천히 먹고 퇴소했다.
음식으로 보식하는게 귀찮아서 아예 보식기간 먹을만큼의 생식가루를 사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보식기간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래 먹던대로 양껏 먹었다. 다만 물과 후식만 삼가하여 갑자기 위가 너무 늘어나는 것만 조심했다.


한달반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생수단식이나 효소단식은 보식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그 기간을 길게 가지면 소식이나 채식이 가능할 것 같다. 나는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원래 식사 패턴으로 돌아갔다. 그치만 얻은 것도 많다.


첫째는 더이상 음식의 노예라는 비참함이 없다. 아직도 통제는 안되지만 약간의 자신감은 얻었다.
둘째 다시는 돌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체중으로의 회귀다. 공보의 시절과 결혼을 거치면서 늘어난 몸무게와 개원 이후 늘어난 술배로 거의 10킬로그램 가까이 무거운 지방덩어리를 이고 다녔다. 그결과 15년동안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고 4년전에는 무릎 수술도 받았다. 수술후 꾸준히 운동했지만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근데 12일간의 절식·단식·보식을 거치면서 5킬로그램이나 뺐고 지금은 4킬로그램 감량을 유지하고 있다. 거의 대학때 몸무게다.


더불어 한달간 약을 먹어도 완전히는 사라지지 않던 역류성 식도염이 거의 사라졌다. 별 증상없이 향긋한 커피도 다시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냉랭했던 집사람도 밝아진 내 모습에 지난 주 휴가기간을 단식원에서 보냈다. 주말마다 애들 데리고 호텔 수영장에 간다.
몸이 아니다 싶을 때면 주말에 절식도 보식도 필요없는, 물 한 모금 대지않는 양단식을 24시간 정도 해볼 생각이다.
혼자 보낸 이번 휴가 이만하면 성공적이지 않을까?


고용석
제주 화이트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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