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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5번째) 초상화-베트남 의료봉사

제1575번째

초   상   화  -베트남 의료봉사

 

그래 아주 더운 날이다. 습도는 왜 그리도 높은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한다. 이런 날에 베트남 타이웅엔성 옌락마을로 의료봉사를 갔다.
주위 풍경이 강원도나 경상도 산간지역 오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차 한 대가 간신히 가는 도로다. 행여 맞은편에 자동차나, 물소 떼나 오토바이와 마주치는 날에는 옴짝달싹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서야 만 한다. 굽이쳐 돌아가는 모퉁이마다 상대편에게 자신을 알리는 경적을 수없이 울려야 한다.
여덟 살 때 이었으리라….  경상도 거창에서 김천으로 나올 때, 좁고 심한 커브 길 때문에 덥고 비좁은 버스 안에서 고장 난 경적 대신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위험한 길을 지났던 기억이 난다.
어허! 지금 그 길을 가는구나!
면(面)이라고 하나 살림집이 대여섯 채뿐이다. 다행이 인민위원회 건물이 번듯하게 있어 면 소재지려니 생각이 든다. 그 옆에 면 보건소가 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의료봉사를 할 곳이다.
1975년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무의면(無醫面)이 많았다. 충청도 음성도 무의읍(無醫邑)이였으니 다른데 무의면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의 옌락면이 35년 전 우리나라의 면(面)이다.
좁은 옌락 보건소 마당에 250명이 넘는 주민이 모였다. 다섯 살배기 애부터 70고령에 이르기까지 한 무리의 군상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혼잡하고 어지러운 인간 군상 더미 속에 우리의 옛 초상화가 있다.
어허! 몇 살인지 모르겠으나 이 꼬마 녀석은 감기에 걸렸나 코를 질질 흘리고 있군. 그래도 맑고 대견하네.
우리에게 찔찔이라는 별명은 아주 흔한 별명 중에 하나이고 친숙한 친구 중에 하나다. 그 많던 찔찔이들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지낼까? 나도 저 아이 때 삐쩍 마른 코 찔찔이었으니까.
어떻게 하다 눈이 저렇게 됐지? 마치 밀가루 눈을 손으로 눌러 놓은 방개 눈이네. 불쌍한 아이 같으니…. 영양실조 때문일까? 아무리 영양실조라 해도 이 아이에게 하늘이 내린 병은 아니겠지! 사람들의 잘못으로 저렇게 만들어 놓고 아닌 양 무심히 나 몰라라 하는구나. 괘심한 사람들 같으니!
새 종아리에, 복어 배(腹)에, 털 빠진 닭대가리 같은 땜통 머리에, 부스럼 덩어리에, 눈곱으로 덥힌 눈….  이 모습이 40년 전 우리의 참모습이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 모양으로 사느니 죽는 게 낫지."  나쁜 사람들 같으니! 그래도 그 아이들이 자라서 지금 여기에 와, 다시는 그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깜박깜박하는 형광등처럼 끊길 듯 끊길 듯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가마솥같이 찌는 보건소 마당에 점점이 놓여있다.  
뻐드렁니가 입술 밖으로 나와 세상구경을 하는 사람.
무슨 약초를 먹었는지 이와 입이 온통 새까만 소수민족.
누런 얼굴에 부기가 가득한 병색의 중년 부인.
자경대(自警隊)라는 아저씨의 깡마른 얼굴모습.
자신과 관계된 사람을 치료 받게 하려고 이리저리 야바위꾼 노릇을 하는 펑퍼짐한 무대보 아줌마.
이가 다 빠져 볼이 호물락 해진 꼬부랑 할머니의 슬픈 눈.
강냉이 배급을 주는 날이다. 명필이 엄마가 배급반장에게 가, 무언가 속닥속닥 하더니 강냉이 한 포대를 뒤로 가져간다. 명필이 엄마는 나쁜 사람이다. 자기만 배 부르려고 한다. 다른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 것이다. 무대보 아줌마와 명필이 엄마가 어쩌면 저렇게도 꼭 같은지. 하! 하! 하! 
어지러운 초상화 속에 옛것을 잊고 지금의 나를 찾아보려고 비지땀을 흘린다. 의료봉사에는 무대보 아줌마나 명필이 엄마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 어려운 때에는 너에게도 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치아가 없어 식사를  못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무치악 틀니 20개, 유치악 틀니 20개, 일반 치과치료 350명 등등 우리 나름대로 의료봉사를 했다.
우리가 시술한 내용을 금액으로 환산 하면 6~8천만원이 된단다. 의료 시설이 열악한 이곳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의료봉사가 옌락 사람들에게 얼마 만큼에 큰 삶의 행복이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과거 우리가 받았던 도움과 견주어 보면 다소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 하는 의료봉사도 전에 받은 감사의 보상이 아닐까?
과거 우리는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우유가루, 초콜릿, 껌, 밀가루, 빵, 헤진 군복, 밑창 없는 워커, 심지어는 꿀꿀이죽까지….
떡볶이를 준비했다. 떡볶이가 제2의 간식이 된 우리에게 그 맛이 저들에게도 맞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의 옌락 사람들이나 과거의 우리나 다를 바가 없다. 좀 더 먹으려는 다툼이 심하다. 매울 텐데 하나라도 더 먹겠다고 내미는 손이 안쓰럽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도 35년이 됐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57년이 됐다. 두 나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 태어난 나라다. 두 나라가 서로 쳐다보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베트남은 한국이 앞으로의 자화상이 될 것이고 한국은 베트남이 과거의 초상화가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의료봉사도 50년 전 우리가 받았던 혜택을 베트남에 나누어 주고 있는지 모른다.
받는 나눔과 주는 나눔의 형평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덥고 찌는 가마솥 날씨에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앞으로 베트남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믿는다. 베트남은 밝다. 언젠가는 지금 우리와 같이 남을 도우며 지금의 우리와 같은 초상화를 그릴 것이다. 왜! 어째서? 다음 사진이 말해 주니까!
의료봉사 중 몸은 지치고 괴로워도 가슴에 무언가를 가득 담고 마칠 수 있는 힘은 해맑은 눈동자의 미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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