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4번째
우리의 이야기들
오랜만에 대학생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고려대사회봉사단(KUSSO)과 함께 의료봉사단으로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에 8박 9일간 해외 의료봉사활동을 다녀왔습니다.
휴양지로 그리고 럭비 월드컵 세계 최강팀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의 남동부 오지 마을 나셈비투 마을에 가서 사회봉사활동 그리고 진료봉사를 수행하였습니다.
대학생들은 주민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공연, 현장 작업 등의 봉사활동을 펼쳤으며, 비뇨기과와 성형외과 그리고 치과(김포 미소치과 조영수 원장님과 저)로 이루어진 의료진은 자동차로 한 시간 반 떨어져 있는 인근 코로보병원에서 진료를 하였습니다.
모기장을 치고 넓은 방 하나와 마루에서 모두들 함께 자고, 화장실과 샤워장 각각 두 개로 36명(대학생 19명, 의료진 17명)이 남녀로 나뉘어 줄 서서 기다리면서, 마치 군대의 야전생활을 생각하면서 지냈습니다.
하루는 코로보병원 치과의사의 집에서 거주했는데, 밤에 자다가 모기의 웽웽거리는 소리에 새벽 3시에 일어나 모기 4마리 잡고서야 5시 반에 잠들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의료진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피지 수도인 수바에서부터 우리 의료진이 있는 시골의 병원으로 하악골 골절(정중부 및 과두하방 부위) 환자가 한 분 오셔서 국소마취로 골절 정복술도 시행하였습니다. 현지 치과의사께서 배우고자 하여 연신 사진을 찍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나름 진료 봉사활동을 온 보람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기와 수도가 없어서 발전기를 돌려야 했고, 신발을 사용하지 않아 고려대에서 만들어 준 도서관(실은 넓은 집) 바닥이나 땅바닥이나 비슷한 상황인 곳에서, 여학생들과 여선생님들께서 정말 잘 지내는 것을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편하게 지내왔으므로 이런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대학생들은 정말 너무 잘 지냈고, 열심히 그리고 훌륭히 봉사활동을 수행했습니다. 깨달았습니다. 나약한 나의 모습을…
조그만 일에 안달하고 바둥대는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커다란 눈, 순수한 피지 사람들 모습에 어린 시절 60~70년대 우리 할머니 동네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너무 행복한 피지 사람들에게서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가 떠나올 때 파우더를 뿌려주면서 4부 합창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노래를 불러주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는, 사랑으로 가득함을 느꼈습니다.
“웃음짓던 커다란 그 눈동자 긴 머리에 말없는 웃음이
나셈비투 야자수 그늘아래 도서관에 우리는 만났네.
밤하늘에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처럼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Isa, Isa, vulagi lasa dina
Nomu luko au na rarawa kina
Cava beka ko a mai cakava
Nomu lako au na sega ni lasa
Isa lei, na noqu rarawa
Ni ko sana vodo e na mataka
bau nanuma, na nodatou lasa
Mai Fiji Islands nanua tiko ga
우리에겐 윤형주의 ‘우리의 이야기들’로 잘 알려진 Seekers의 ‘Isa Lei’ 이 노래는 피지섬 원주민의 이별가로 피지 사람들이 헤어질 때 불러주는 노래입니다. 아직도 노래의 선율이 귓가에 생생합니다.
피지의 밤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별들이 바로 앞에서 가득가득 쏟아지고 있었고, 노래를 들으면서 밤하늘의 별들과 피지인들의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헤어짐이 밀려왔습니다. 우리의 별들은 동주형이 노래하였듯이 패, 경, 옥이라는 소녀들의 수줍은 모습이라면, 피지의 별들은 그들의 피부와 곱슬머리만큼이나 진한 모양이었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과 일주일을 함께 하면서, 나의 잘못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느꼈으며, 훌륭한 분들의 모습을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루 한번 짧은 시간 화장실을 다녀오고, 하루 세끼를 비롯하여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데, 역시 Input 보다는 Output이 중요하구나!’
버는 데만 열심이기보다는 베푸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일년에 일주일 한 번 베풀었지만, 오히려 베풂을 통하여 많은 나날을 행복함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베푸는 줄 알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오히려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또한 피지에서의 봉사활동은 여러분께서 제게 베풀어 주셨던 사랑이 바탕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의석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