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7 (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제1590번째) 오므라이스

제1590번째

오므라이스

  

아들아이랑 오랜만에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남편은 지리산으로 가을 산행을 떠났고, 딸아이는 이천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를 집을 비웠습니다.
지인의 생일인지라 그간의 감사의 마음도 전할 겸 선물구입을 위해 백화점에 가기로 했습니다.
옷을 입고 나서는데 아들아이 바지가 길어 몇 걸음마다 옷을 당기며 걷는 모습이 불편해 보입니다. 욕심이 없어 아니 소비가 아까운 아이인지라 친척 형들의 옷을 얻어 입히거나 간혹 옷을 사야할 경우 동행을 하지 않고 나 혼자 구입해서 입히다 보니 엄마 마음이 그렇듯 늘 넉넉한 옷을 사서 입히게 되었습니다. 허리에 살이 없는 아이는 그때마다 긴 바지, 긴 윗옷을 접어 입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도 바지를 추켜 올리며 걷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백화점에 들어가 제일 먼저 아동복 코너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딱 맞는 크기의 옷을 구매해서 입혔습니다. 입가에는 만족의 미소가 퍼져 나갑니다.
저리도 좋으면서 한 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아니 요구를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합니다. 작은 키 가녀린 손인데 오늘도 엄마의 쇼핑백을 받아 들고 갑니다. 가끔 쇼핑백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들리지만 엄마를 위하는 마음이 고마워 그냥 작은 손에 짐을 맡겨 둡니다.
오랜만에 아들아이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기로 했습니다.
복잡하고 고속도로 휴게실 같은 지하 스낵 코너보다는 함께 한 시간의 추억을 위해 12층 식당가를 찾았습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식당가에서 돈가스와 오므라이스를 시켰습니다.
오므라이스는 그리 즐기는 음식이 아닙니다만 오늘은 그 메뉴를 선택하였습니다. 제게 있어 오므라이스는 추억의 음식이지요.
남편과 만나던 시절 주머니가 넉넉하지 못해 늘 양이 많은 오므라이스를 시켰고 우리들을 좋아했던 카페 주인의 마음이 더 넉넉한 양의 오므라이스 일인분이 되곤 했습니다. 한 그릇으로 둘의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리고 또 하나의 추억은 어머님이십니다.
어린 시절 그땐 유난히 계 등 친목  모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손님들이 집으로 오시는 날이면 어머님은 그간 아껴 두었던 매화꽃이 그려진 일본접시나 기하학적 무늬가 있는 서양접시를 꺼내시곤 하셨습니다.
그릇하나 찻잔하나 그리고 간단한 식사에도 격식을 갖추셨던 어머님은 손님들이 오시는 날이면 식탁보에 접시, 수저 등 귀한 것들을 찬장에서 꺼내곤 하셨어요.
어린 전 부엌 귀퉁이에 걸터앉아  어머님이 만드시는 오므라이스를 유심히 보곤 했지요. 성인이 된 뒤 아무런 학습 없이 오므라이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런 기억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밥을 여러 가지 야채와 함께 볶은 뒤 특별한 날의 간식으로 아니면 도시락 속에 들어 있던 달걀을 프라이팬에 넓게 편 뒤 그 달걀에 볶은 밥을 놓고 프라이팬을 뒤집던 어머님의 손놀림이 참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혹여 다른 곳을 보실 때면 주방언니의 눈을 피해 손가락은 캐첩의 한 귀퉁이를 찍어 맛을 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예쁜 접시에 노오란 달걀로 포장되어 여러 가지 야채로 데코레이션된 음식이 꿈속 공주님의 식탁 같았습니다.  
식사 뒤에는 또 한 차례 공주님의 식탁이 펼쳐집니다. 학 모양, 감 모양 등의 일본 과자(부산은 일본 물건들이 구하기가 쉬웠다)와 예쁜 은박에 하나씩 싸져 있던 쿠키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양갱들…. 먹는 음식이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울까 탄성이 절로 나왔지요. 다과와 함께 드시던 원두커피와 영국제 홍차의 향을 기억합니다. 알루미늄의 포트 안에서 우려지던 원두커피 향은 집을 향기롭게 했습니다.
또 매화가 그려진 하얀 찻잔에 홍차를 따르면 찻잔 바닥에 기모노를 입은 여인의 얼굴이 나타나는 모양이 어찌 그리 신기했던지….
식탁언저리를 맴돌며 단 하나 소원은 손님들이 그 많은 음식들을 남기고 돌아갔으면 하는 것이었지요.
어머님.
지금도 그 찻잔을 기억하고 있고 아직 제 찬장에 30년을 넘은 어머님이 아끼시던 그릇들이 남아 있는데 어머님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찻잔에 물을 부으면 여인이 나타나듯 제 눈에 눈물이 고이면 어머님이 떠오릅니다.
보고 싶습니다.

  

황윤숙
한양여대 치위생과 교수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