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7 (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제1591번째) 군포에 가면

제1591번째

군포에 가면


경기도 군포에 가면 수리고등학교라고 있습니다. 국민요정 김연아가 졸업한 학교지요. 그 학교 옆으로 수리산을 오르는 임도가 닿아있습니다. 임도가 뭐냐고요? 산림을 관리하고 산불에 대비하기 위하여 산을 따라 만들어 놓은 찻길이지요.
그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자전거로 오릅니다. 보통의 산길은 산자락을 따라 굽이쳐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 길은 좀 독특하게 생겨있습니다. 마치 삼각자를 세워 놓은 것 같이, 시작부터 끝까지 일직선의 오르막이 약 1킬로미터 정도 계속됩니다.
한 번의 숨 돌릴 틈도 없이 체력의 한계를 끝까지 몰아 붙입니다. 머리 속에선 끝없이 갈등하지요. ‘내려서 끌까?’ ‘아니, 좀 더 견딜까?‘ ‘헉 헉 얼마나 남았을까?’ 고개를 들어보면 저 멀리 보이는 끝이 더욱 힘을 빼 놓습니다. 길이 굽이쳐 있다면 한 굽이 돌 때마다 희망을 가질텐데, 이건 뭐 끝이 빤히 보이니 더 힘듭니다.


드디어 그 끝을 지나면 평지와 만나 길이 휘돌아 나아갑니다. 한 굽이 돌며 한 숨 돌리고, 두 굽이 돌며 여유도 부리며, 그리 그리 산을 따라 들어갑니다. 어느덧 가슴 깊이 상큼한 산 기운이 차오르고, “그래, 이 맛에 산을 오르지!”하며 스스로 감탄합니다. 기특한 두 다리에도 감사해 하며….
힘들게 오르면 편안한 내리막이 있습니다. 여유로운 호흡으로 다가오는 산 기운을 음미하며 내려갑니다. 문득 생각이 떠오릅니다. ‘인생이 뭘까?’ ‘내가 뭘 바라보며 살고 있나?’ ‘난 내 인생의 어디쯤 와 있는 거지?’ 갑자기 개똥철학이 끼어 듭니다.


머리를 들어 보니 파아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보입니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멀리 있는 가야 할 곳을 보면 맥 빠졌는데, 더 멀리 있는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아 지네요. 언제 뭘 보느냐에 따라 내 있는 자리가 지옥도 되고, 천국도 되나 봅니다. 사는 게 힘들 때 인생의 굴곡은 오히려 희망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한 굽이 돌고 나면 ‘이젠 좋을 라나?’ 또 한 굽이 돌고 나면 ‘이젠 좀 편할 라나?’ 그리 돌다 보면 고개 하나 넘어 가는 거죠 뭐.


 오르막을 오를 때는 요령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힘차게 밟아대면 바퀴가 헛돌아 미끄러집니다. 얼마 못 가 힘도 바닥납니다. 한 여름 뙤약볕 밑의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누렁이 소 걸음처럼 천천히, 자식 놈 밥 주발에 고봉 밥 눌러 담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꾹꾹 누르며 페달을 밟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퀴가 미끌림 없이 땅을 붙들고 올라갑니다. 염통이 짬짬이 쉬면서 뛰듯이 한 번 밟고 잠깐 쉬고, 두 번 밟고 잠깐 쉬고, 그렇게 계속하면 고개 또 하나 넘어 가는 거죠.


 하루 하루 살면서 온 종일 뭐에 미쳐 돌아가다 보면 일주일 후딱 가고, 한 달이 후딱 지나, 징글벨 소리 들리면 나이 한 살 더 먹고, 남은 수명에서 일년 빼먹는 건데, 얼마나 남았을까나…? 나나 집사람이나 아직도 몸도 맘도 청춘 같고, 애들만 쑥쑥 커버린 것 같은데, 어쩌다 보는 동창들 모습에서 강하게 풍겨나는 중년의 포쓰는 고맙게도 내 착각을 깨워줍니다.


 내리막길은 행복합니다. 땀 한 방울 안 흘려도 저절로 내려가지니까요. 하지만 너무도 순식간이라는 게 문젭니다. 아무리 아끼며 조금씩 내려가도 올라올 때 보다는 훠얼씬 빨리 내려가집니다.
일부러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무슨 경륜 선수도 아닌데, ‘내가 여기 또 오겠냐?’는 생각으로 찬찬히 휘휘 둘러보며 갑니다. 나뭇가지의 구부러진 생김새며, 박혀있는 돌부리의 높낮이 하며, 혹 압니까? 떨어진 돈이라도 보일지?
여러분 날마다 행/복/하/세/요. 큰 거 말고, 조그만 행복, 놓치지 말고 다 누리며 살자구요~.

  


김철순
서울 라파엘 백송치과의원 원장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