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
나는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 해왔었다는 편이 정확한 표현이다. 평소에 양식당을 자주 이용해왔고 이왕이면 낯선 이국(異國) 식당을 찾던 호기심 많은 나 이기에….
여행을 하면서 현지 음식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내 사전에는 없었다. 평소 식사시에도 김치와 된장을 거의 먹지 않는 나 아니었던가! 비행기에서 제공되는 음식도 한식(韓食)보다는 양식만을 골라 먹었다. 이태리 음식이면 이태리 음식, 프랑스 음식이면 프랑스 음식 모두 다 - 음 모두 다 라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알려고 노력하고 친해지려고 애써왔기에 양식을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으리라 생각해왔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작년 여름 이탈리아의 안코나안코나는 이태리 중동부의 항구도시로 한반도의 원산 정도 위치로 보면 된다근처 시골 작은 동네에 약 2주간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당시 파스타의 나라, 피자의 나라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리조토를 또한 실컷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들떠 있었다. 스트로우처럼 속이 빈 국수 마카로니, 만두피처럼 넓적한 국수 라자네, 마카로니를 잘라 만든 펜네, 우리가 파스타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좋아하는 길고 가느다란 국수발의 스파게티 등 가지 가지의 파스타를 본토에서 맛 볼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었다. 피자는 또 어떤가. 음, 스파게티와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음식. 한국에서도 피자리아에 가면 피자 몇 조각과 샐러드 만으로도 저녁 식사를 대신 했잖은가. 피자를 잘 굽는 식당일 수록 피자위에 얹는 토핑보다는 바닥 빵 맛에 더 비중을 둔다는데 한번 본격적으로 본고장의 피자 맛을 비교해 보리라고 다짐했었다. 게다가 리조토까지. 죽처럼 걸쭉한 쌀 요리 리조토는 야채와 홍합 등 어패류가 쌀과 어울려 절묘한 본고장의 맛을 보여 주겠지. 한편으론 한국식 이탈리아 요리와는 달리 너무 덜 익힌 상태에서 서브되면 어쩌나 하고 내심 신경이 쓰였으나 워낙 좋아하니까 괜찮겠지 생각 했드랬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기대되는 것은 와인이었다. 남북이 길고 동서가 가는 이 나라가 뜨거운 태양과 척박한 토양포도 나무는 양질의 땅 보다는 산기슭 자갈밭 같은 경사지고 토박한 곳을 좋아한다그리고 건조한 기후 등이 어울려 조합해 내는 와인의 원조라 하지 않는가. 뭐 대충 이런 정도의 기대를 마다하지 않고 품었었다.
내가 묵던 곳은 규모는 작지만 그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로 식당과 겸해 있어 숙박과 하루 세 끼니를 한집에서 해결 할 수 있어 편리했다. 주인 부부가 점심 식사부터 저녁 늦게까지 식당일에 매달려 손님들을 접대하는 아주 가족적인 곳이었다. 아침 식사만큼은 그들 부부의 부모가 나와서 챙겨주었다. 도착한 다음날 점심부터 식사가 시작 되었다. 말 그대로 식사(食事)다. 전채인 안티파스토, 첫 번째 접시인 프리모 피아토, 두 번째 접시 세콘도 피아토, 딸린 접시 콘토르노 그리고 과일과 디저트, 커피까지 먹으려면 단순히 먹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큰 행사다. 전채는 야채나 햄 등을 사용해 만든 냉채가 대부분으로 먹기에 부담감도 없고 드레싱도 담백해 좋았다. 첫째 접시는 대부분 파스타였다. 소스는 다양하진 않았어도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이 절묘하게 어울려 밀가루 음식을 받쳐주고 있었다. 두 번째 접시는 육류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삶은 후 얇게 저며 내오거나 치킨 소테가 주종이었다. 어쨌거나 숙박료와 식사비는 이미 지불된 상태. 우리는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그들 부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주민들이 영어를 몰랐다다른 사람들이 주문 한 실물을 가져와서 보여주고 오케이 하면 가져다주는 식으로 며칠을 재미있게 맛있게 먹으면서 보냈다. 그러나 일주일도 채 되기 전에 슬슬 몸에 부담이 오기 시작했다. 음식이 식도를 지나가면서 쓰라린 자극을 주기 시작하더니 위에 들어가서는 서로 섞이지 않으려는 듯 요동을 치며 뱅뱅 돌기만 할 뿐 더 이상 내려가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스파게티는 마치 고무줄처럼 질겼고 라자냐는 칼국수 판처럼 두껍게 만들어져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들이 먹기 전부터 서로 성난 것처럼 부대끼고 있었다. 리조토는 예상했던 상태보다 심각해서 생쌀을 씹어도 이보다 낫겠다 싶었다. 그 맛있는 피자도 소용없었다. 형형색색의 토핑도 바스락 소리가 나게 구워진 밑빵도 몸속에 들어갈라 치면 식도부터 통증을 느끼고 위에 들어가면 요동을 쳤다. 소화제의 구실을 해주어야 할 와인은 왜 그리 밋밋하고 바디가 약한지 소화를 돕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음식물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나 나는 참아야 했다. 나는 평소에 이탈리아 음식의 찬양자가 아니었던가. 어느 식당에 가서나 이태리 음식을 시키고 나면 잘난 체 그 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지 않았던가. 이제 본고장에 와서 그 맛을 익히는데 이처럼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다고 음식 타박을 하겠는가. 더구나 나는 반(半) 이탈리아 사람 아니던가. (그 이유는 이렇다. 내 영문 이름은 ‘시모네’이고 이는 시몬 혹은 사이먼이란 뜻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별명이 아니라 외국인들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실제로 내 여권의 알파벳 표기 이름은 PARK, SIMONE 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고작 엿새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의 고향 이태리에서 내 위장이 벌써 내 고향 음식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니!
겨우겨우 그곳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열차로 로마에 다시 왔다. 로마에선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이틀의 여유가 있었지만 소용돌이치는 뱃속을 생각하면 남은 일정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떼르미니 역앞의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지만 그 어느 곳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으로 저녁을 때우기로 작정하고이태리 아이스크림은 단연 세계 최고이다하릴없이 거리를 헤매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서라벌이라는 간판을 단 한식집이 눈에 띠였다. 저녁을 먹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식당 안에는 손님이 꽤 여럿 있었다. 무얼 시켜야 또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길까 고민을 하다가 옆 사람을 보니 김치찌개를 맛있게 들고 있었다. 한국에서 먹던 시뻘건 그것과는 차이가 있어도 칼칼한게 먹을 만 했다. 그래도 먹고 나니 금방 속이 다스려지는 듯싶었다. 그 날 밤부터 어찌나 속이 시원한지 뭐라도 먹을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위장의 트러블이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사라진 것이었다. 진짜 거짓말처럼 소화도 잘되었고 따라서 식욕이 생겼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안정이 되었다. 다음날 또 그 식당을 찾았다. 반가이 맞아주는 식당 주인아주머니에게 또 시킨 김치찌개를 가리키며 느닷없이‘이것은 찌개가 아닙니다.’ 라고하자 그녀는 어제 식사 후에 내게 무슨 문제가 있었나하고 놀란 듯 쳐다보았다. ‘이것은 찌개가 아니고 약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고생했던 이야기와 찌개를 먹고 속이 확 풀려 버린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는 양식(洋食)대신 비빔밥을 고추장에 비벼 맛있게 먹었다.
박정용
청주 그린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