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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0번째) 큰 아들 셋 군대보내기

큰 아들 셋 군대보내기

  

큰 아이가 군대를 간다며 학교를 휴학한지가 꽤 되었다. 단짝친구 세 녀석 중 둘이 함께 휴학을 하고 이리저리 밤낮없이 몰려다니는 게 보기 싫어서, 본인들이야 서운하건 말건, 너희 나이의 하루 한 달이 얼마나 귀한지 지금은 모른다며 아까운 시간들을 그저 흘려보내지 말라고, 기왕 다녀올 거 얼른 가라고…하나마나한 잔소리를 거듭하였다.


중학교 1학년 때 한 반에서 만나 각기 다른 특목고를 지원했다가 나란히 고배를 마신 녀석들. 일반고 전형에서도 1차 지망 학교에 배정되지 못하고 운명처럼 한 학교에 모이더니 3년을 내리 세 쌍둥이처럼 움직이던 녀석들이다. 셋이 어울리는 시간이 많은데다 하나같이 친구들의 일이라면 자기 일보다 더 나서곤 하니 이래저래 공부할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 엄마들은 고까와 할 수가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학갈 땐 한 녀석도 그 엄마를 흡족하게 만들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말았다. 엄마의 기대를 채우지는 못하였어도 스스로 만족할 정도는 해낸, 주변에선 칭찬일색인 큰 아이의 궤적을 교훈삼으며 이제 세상의 잣대로만 아이들을 바라보고 채근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였지만 간혹 치미는 미련까지는 스스로도 어쩔 도리가 없다.


큰 아이가 입대를 미루는 나름의 이유란 것들도 아르바이트 여럿 가운데 코칭하던 학원이며 자신이 과외하던 고 3녀석 때문에 수능이 끝나야 한다는 따위의 것이어서…그러니까 1월에 가야 한다고…그렇게 신청했다고…오지랖 넓은 책임감에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그 와중에 대견하기도 하고 때마침 천안함 사건조차 터지니 한편 늦춰진 게 다행이란 이기적인 안도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더 흐르더니 드디어, 시도 때도 없이 쳐들어와선 넉살좋게 어머니, 밥 좀 주세요를 외치던 한 녀석이 해군입대를 한다며 먼저 부산으로 떠났다. 몸이 좋지 않은 엄마대신 출발하는 날 아침 그 녀석을 불러다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정성스레 상을 차려 주었다. 녀석은 다녀오겠다며 씩씩하게 떠났지만 하필이면 천안함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마당에 해군이라니…세 녀석 중 가장 의젓하고 친아들보다 더 살갑게 굴던 녀석의 입대에 내내 서운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뭉쳐 어울리던 세 녀석 중 또 한 녀석은 재수 후에 반수를 거쳐 얼마 전 세 번째 수능을 치렀다. 셋 중 가장 내성적인 그 녀석의 엄마는 아직 마음을 비우지 못했는지 편안히 아들을 대하지 못한다. 달랑 김치찌개 하나만 끓여놓곤 어른들만 시골 큰댁으로 가셨다던 추석아침, 뒤늦게 소식을 듣곤 혼자 있는 녀석을 불러다 상 앞에 앉히느라 애를 먹었다. 행여 남의 말은 귀담아 들을까 하여 얼굴 보일 때마다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댔더니 나와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더니만, 엊그제 놀러와선 시험을 잘 치렀다며 환히 웃어 보인다. ‘아하, 이 녀석 응원도 해야 했구나’ 그 녀석은 큰 아이가 입대를 1월 이후로 미룬 또 하나의 이유였다. 전날 무슨 일인가로 잠자리를 설친데다 다음날은 새벽운동이 약속되어 있어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밤새 거실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두 녀석을 말릴 수가 없었다. 이번엔 좋은 결과를 얻어야 할텐데. 그 녀석이 운명을 바꾸기 위해 바친 시간과 넘치게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며 맘으로 축복하고 또 축복하였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군복입은 녀석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될 터이다. 남은 한 녀석도 학교가 결정되면 군대부터 다녀온다니 세 녀석 모두의 군복입은 모습을 보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세상이 시끄러운 참에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맘이 편안할 리 없다. 그렇지만 녀석들의 무사안위를 빌면서도 한편 그 녀석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운명 앞에서는 진짜 군인이기를, 그 운명 앞에 비겁하지 않기를 바라는…마음 앞선 나는 벌써 군인의 엄마가 되어 있다.

  

김경미
의정부 조은이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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