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치의 학술대회에 도전하다
螳螂拒轍(당랑거철)
평택의 한적한 시골 지소에 공중보건의로 발령 받은 지 두 달 남짓 지난 2009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어버린 아낙네처럼 하염없이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료한 마음에 인터넷 웹서핑으로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이하 대공협)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되었다. 홈페이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학술게시판에 올라온 흥미로운 글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제4회 공중보건의사 심미수복학술대회’ 공고문이었다. 심미수복 관련 강연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특전을 제공함과 동시에 발표만 해도 상품을 준다는 사실이 내 구미를 당겼다. 결국 잿밥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참가신청을 하고 말았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강연을 수강하고 그곳에서 습득한 지식과 술기를 기반으로 임상증례를 준비했다. 많이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나름 열심히 준비한 발표 자료를 주최 측에 제출했다. 운 좋게 예심을 통과했고 학술대회 당일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윽고 학술대회가 개최되는 날이 되었다. 첫 번째 순서로 발표를 한 나는 나머지 11명 참가자들의 발표를 경청했다. 이후 내 얼굴이 뜨거워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발표는 나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발표 후 열린 시상식에서 내 이름은 너무나도 당연히 하위권에 올려졌고 나는 작은 상품과 큰 상처를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많은 동료들 앞에서 시시한 발표를 했다는 사실이 정말 부끄러웠다. 학술대회장소로부터 1시간 거리에 있는 집까지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마치 우사인 볼트처럼 빠른 걸음으로 돌아왔다.
切齒腐心(절치부심)
학술대회를 통해 스스로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은 나는 지식 습득과 술기 연마에 정진하기 시작했다. 접착과 심미수복에 관련된 저서 및 논문들을 탐독했다. 이와 동시에 저명한 연수회 및 강연회를 찾아다니며 학문적 갈증을 해소했다. 이 과정에서 힘든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심미수복학술대회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던 동료 공중보건의들을 조우하는 것. 그럴 때마다 못난 자격지심 때문에 자리를 피했었다. 이런 수치심과는 별개로 공부 자체는 재미있었다. 접착치의학과 심미수복학의 매력 속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臥薪嘗膽(와신상담)
2010년 6월 어느날 오랜만에 접속한 대공협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보고 심장이 뛰었다. ‘제5회 공중보건의사 심미수복학술대회’ 공고문이 바로 그것이었다. 부실한 발표로 인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다. 즉시 참가신청을 하고 바로 발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난관에 봉착했다. 훌륭한 발표를 위해서는 뛰어난 임상실력과 더불어 탁월한 사진촬영 기술과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나는 DSLR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았을 뿐더러 컴퓨터를 다루는 데에도 영 젬병이었다. 속으로 끙끙 앓고 있던 중 때마침 치과임상사진촬영의 대가이신 김용성 원장님의 디지털카메라 관련 세미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
김용성 원장님의 도움으로 큰 산을 넘은 나에게 남은 또 하나의 산은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 그 산을 넘기 위해 초심자를 위한 지침서를 한 권 구입했다. 책을 읽고 부록으로 주어진 CD내의 자습과제를 수행했다. 전체 과정을 3회 반복했더니 프로그램을 다루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다.
증례 발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도 임상실력. 접착과 심미수복의 대표연자이신 최경규 교수님, 황성욱 원장님의 강연회를 수강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苦盡甘來(고진감래)
3개월에 걸쳐 정신없이 준비하다보니 시간은 유수처럼 지나 이윽고 대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1, 2, 3등에게 주어지는 일본 여행의 기회, 다른 푸짐한 상품들에는 전혀 욕심이 없었다. 난 그저 동료들에게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체 발표자들 중 일곱 번째로 순서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렸다. 최선을 다했기에 마음은 편안했다. 12등부터 1등까지 역순으로 호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시상식에서 내 이름은 시상식이 끝날 무렵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이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1등은 고덕보건지소의 김병국 선생님!”
함께 학술대회에 참석했던 졸업 동기들은 물론 당사자인 나 역시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평소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지소명이 이 순간만은 그 어떤 이름보다 세련되게 다가왔다.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멍한 표정으로 시상대에 올라섰다. 간단한 수상소감을 전하고 기념촬영을 했다.‘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싶었다.
분에 넘치는 이 행운은 먼 훗날 커다란 추억으로 내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 항상 많은 가르침 주시는 김용성 원장님, 이상선 원장님, 이상택 원장님, 최경규 교수님, 황성욱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병국
고덕보건지소 공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