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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3번째) 입원실 隨想 (하)

입원실 隨想 (하)


 <1895호에 이어 계속>

 

나는 평소 종합건강진단을 기피해 왔다. 검사하다보면 어디엔가 무슨 병이 발칵 될 것 같은 불안과 걱정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큰 맘 먹고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진발표를 기다리는 마음은 무슨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것 같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의사들은 참 야속하다. 의사들이 진짜 야속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고 기대를 갖는 환자의 마음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담당의사와 짧은 면담을 하고, 나는 너무 미흡하고 섭섭하다보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꼭 물어보고 싶은 한 마디를 그냥 막아버리는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에 수 많은 환자를 소화해야 하는 의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웃기는 얘기다. 나는 어떤가? 무뚝뚝하기로 소문났다는 나는 환자한테 얼마나 친절했느냐를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뻔뻔한 생각이 든다. 한번 한 얘기를 또 하고, 저만치 나가다 들어와서 또 하고, 심지어 문밖에 나가 한참 가다가 돌아와서 또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환자나 의사나 경우와 정도의 문제라고 본다. 서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을 때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어떠한 경우라도 진심으로 인내하면서 환자의 얘기를 열심히 들을 것을 각오해 본다. 비록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나는 위내시경 결과 저등급 異形成증(low grade dysplasia)이라는 진단명을 받았다. 암은 아니지만 암 전단계 병소라는 것이다. 고등급 이형성증환자의 예중 38%가 악성으로 변했다는 보고도 있다.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선고를 받은 느낌이다. 저만치 내가 다가가고 있는 종착점이 보이는 듯했다. 내 심정이 이런데 암환자들 심정은 어떠할까?


異形成증이라는 얘기는 위의 정상세포가 정상으로 되어있지 않고 이상 형태를 띄우고 있다는 얘기다. 그대로 방치하면  암으로 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나빠진 병소부의를 수술해 제거해 내려고 입원한 것이다.


환자복을 갈아 입고 병실에 누운 나는 바깥세상이 당장 내가 갖는 현실의 무게 때문에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날마다 새롭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문명사회, 지금부터 사는 재미가 있는 세상이 되었는데 내 건강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세상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이 있다.


조급함은 조급함을 낳고 넉넉한 마음은 넉넉함을 만든다. 지금까지 잘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지금부터라도 준비하는 여유를 가짐으로써 다급한 마음으로부터 해방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전, 몇 십년 전 타계한 친구들을 생각해보자. 지금 생각해보면 잠깐이라는 생각이 든다. 中唐의 대 시인 백낙천은 ‘달팽이 뿔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에 사는 이 몸’ ­蝸牛角上爭何事 石火光中寄此身­이라 했다.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진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이다. 고요해진다. 욕망이나 집착으로부터 해방이다. 영원히 사는 것을 배우기 위함이다.

  

유태영
서울 유태영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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