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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8번째) 내 복(內服)

내 복(內服)


나이가 들어 글을 쓰면 대개 지난날을 회상하는 글을 많이 쓰게 된다. 고생을 많이 했다느니, 잘 살았다느니, 기뻤다느니, 행복했다느니 등등 곱씹을 일들을 되짚어 보면서 글을 쓰는 경우가 많다.
내 속내는 이런 정형화 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복하면 ‘빨간 내복’의 추억을 떨칠 수가 없다. 아마도 또다시 회상과 추억의 글로 빠질 것 같다.


내복은 우리네 입성이 아니고 유럽 사람들의 의류로 생각되나 사실은 삼국시대부터 입었던 속옷이란다. 내복은 유럽지역 외에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입는다.


추운 고구려에서는 동물의 가죽으로 내복을 만들어 입었고, 조선시대 부유한 양반들은 솜옷으로 내의를 만들었고, 가난한 양반이나 상민들은 개가죽으로 내복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동지방 사람들은 기능성 내복보다는 다발로 된 흰색 면 내복을 선호한단다. 그 이유는 물이 귀해 매일 세탁을 할 수가 없어 그냥 10일 정도 입다가 벗어 버리기 때문이란다. 참 편리해 보인다.
아프리카에서는 내복이 필요 없어 보이나 심한 일교차 때문에 긴 내복이 중요하단다. 아마도 아프리카에서는 중동처럼 한번 입고 버리지는 않겠지?


요새 내복이 과학이다.
발열 내복을 보자. 두꺼운 면 내복보다 가벼운 폴리에스테르, 레이온, 폴리우레탄 같은 합성원단에 몸에서 나오는 미세한 수분을 흡수해 발열하는 기능을 가진 보온성 내복은 예전엔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작품이다. 수분과 어떤 반응으로 발열이 되는지 궁금하다.


친환경 내복을 보자. 진주로 가공한 내복은 건조한 피부에 보습효과를 주고 자외선 차단, 정전기 발생 억제 기능을 가진단다. 녹차 향을 가미한 내복은 원적외선 방출로 항균, 방취 기능이 있고, 해조류를 가공한 시셀 섬유나 숯과 폴리에스테르가 합성된 코지론 원단은 항균, 탈취, 원적외선 방사 효과가 있단다. 이 모두가 과학이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 것 들이다. 


디자인이 내복을 바꾸었다.
우선 색상이 화려해 졌다. 꽃무늬, 피부색, 크림색, 핑크색 등 연령대에 따라 색상이 다양하다. 스타일의 고정관념을 파괴했다. 브이넥, 라운드넥, 레깅스, 스판, 캐미솔, 긴소매, 반소매, 타이츠, 목 폴라 등은 겉옷과 속옷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 과거 두툼한 면 내복을 잊어버리게 했다. 등산, 스키, 사이클링 등 레포츠의 발달은 통풍성, 항균기능, 신축성, 보온성을 가미한 바디핏 제품을 탄생시켰다.


내복하면 내복의 역사나 기능을 떠오르기에 앞서 빨간 내복의 여린 맛이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는 빨간 내복이 우리 내면의 세계를 자꾸 지난날의 따스함으로 뒷걸음질 치게 하기 때문이니라.
빨간 내복을 대표하는 단어는 행운과 효(孝)다.


첫 월급의 선물은 빨간 내복이었다. 이게 우리네 어버이들의 가장 큰 기쁨이고 자랑이었다. 이보다 더한 마음 씀씀이는 없다.    
나도 첫 월급으로 울 엄마에게 빨간 내복을 선물했고 내 자식도 나에게 같은 선물을 했다. 누가 가르쳐 주고 알려줘서 한 선물이 아니다. 그냥 했다. 이게 효(孝)다.


난 울 엄마의 빨간 내복을 잊지 못한다.
왜 울 엄마가 빨간 내복을 입고 그 추운 새벽에 정성을 드리고 있었을까? 아마도 이 못난 자식의 대학입학을 기원했나 보다.


그땐 울 엄마의 빨간 내복과 새벽 정성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른다. 특히 엄마의 어둠속 빨간 내복은 괴기스럽고 유령과 같았다. 결국 빨간 내복은 나에게 갈등과 부담을 가져다 줬다.
대학입시에 불합격을 한다면 이는 필시 울 엄마의 빨간 내복 때문이리라. 점점 빨간 내복이 미워지고 혐오스러워 져, 마침내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엄마의 빨간 내복과 정성 때문인지 모르나 입시에 합격을 했다. 그때는 몰랐다. 빼어나고 출중한 나의 실력 때문이라 믿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울 엄마도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아이가 대학을 간단다. 울 엄마의 빨간 내복이 생각난다. 그렇게 밉고 거추장스럽던 빨간 내복이 우리 아이가 대학을 간다니까 왜 새로워지고  마음이 뭉클해지는가?
팔공산 무슨 절로 기도를 가는 집사람에게 이유 없이 한마디 한다.


“빨간 내복을 입고 가지 그래요."
울 엄마의 빨간 내복의 행운이 나를 지나 우리 아이에게도 깃들 것만 같다.
왜 그때 울 엄마의 새벽정성이 그렇게 싫었을까?
빨간 내복의 행운을 왜 모르고 지나쳤을까?
어허, 또 과거에 억매였군! 새롭고 활기찬 내용을 찾고 싶었는데…. 그래도 ‘빨간 내복"은 꼭 한 가지 회상과 추억만을 주지 않았다. 이런 시를 적어본다.

  

어제 어제도
빨간 내복은
울 엄마에게 행운을 주었지

  

오늘 오늘도
빨간 내복은
나에게 행운을 안겼지

  

앞날 앞날에도
빨간 내복은
우리 아이에게 행운을 주겠지!


신 덕 재
서울 중앙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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