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멋져
해 마다 12월은 각종 송년행사로 늘 시간에 쫓긴다. 꼭 참석을 해야 하는 모임이 같은 시각에 두 세 곳 잡힐 때는 난감할 때도 있다. 송년 모임의 의미를 여러 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모임에 따라서는 일 년에 한 번 대면하는 유일한 기회가 될 경우도 있다.
단순히 친목을 다지는 모임도 있고 일 년을 결산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는데 아무튼 회식은 항상 뒤 따르기 마련이고 회식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건배순서이다. 재미있는 것은 건배하는 구호가 해마다 바뀌고 모임마다 다르다.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각종 구호들은 저마다 해석이 그럴싸하다.
괜찮은 구호를 듣게 되면 다른 모임에 가서 써먹어 볼 심사로 머리에 기억해둔다고 하지만 기억력과의 싸움이 치열한 나에게 막상 다른 모임에 참석할 때 쯤엔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후로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만다.
그렇지만 아직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는 구호가 있다. 지난 연말 그 날은 대학원 동문 임원들의 송년모임 회식자리인데 마침 은퇴하신 대학원장님이 함께 하셨다. 식사하기 전 대학원장님의 간단한 덕담과 함께 여느 행사장에서처럼 건배 제의가 있었다. 반평생을 우리나라의 보건행정 발전과 대학 강단에서 보내신 전형적인 학자이면서 의사이신 교수님께서 어떤 멘트의 구호를 하실지 사뭇 궁금했다. 이 교수님과는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다. 오래 전 학회 참석차 미국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인솔교수님이셨다. 돌아오는 날까지 함께 기숙 하면서 학문적인것 외에도 이런 저런 많은 대화를 나눴고 나는 당신에게서 풍기는 인품을 존경하게 되었다.
사회자의 청에 의해 교수님께서 자리에서 일어서서 와인 잔을 높이 들며 외쳤다.
“당신 멋져!" 조금 실망스러웠다.
회색 머리칼과 얼굴에 흐르는 잔잔한 주름에 걸맞게, 학자의 기풍이 넘치는 고상하고 좀 더 멋있는 단어가 나오기를 기대했던 나로선 약간 뜻밖이었다.
마침 교수님과 마주보는 자리에 있던 내가 교수님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을 읽었던지 싱긋 의미 있는 미소를 보내셨다. 이어 사회자에게 4행시처럼 첫 말 운을 떼게 하시면서 뜻풀이를 대신하셨다.
“당-당당하게, 신-신나게, 멋~멋있게, 져~져주자."
“여러분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이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당하고 신나고 멋있게 져주는 아량으로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순간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당당게 이기자." 가 아니고 ‘~져주자" 인대도 왜 그리 박수소리는 큰 지… 임원 대부분이 웬만한 사회 경험은 저마다 겪을 만큼 겪은 세대들이다. 속된 표현으로 산전(山戰) 수전(水戰) 공중전(空中戰)까지 다 치른 사람들로 나름 자존심과 자부심이 남 못잖을 터인데 노 교수님의 구호에 적극 동감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흔히들 사회를 전쟁터에 비유한다. 이는 직접 겪지 않더라도 신문기사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TV드라마에서도 흔히 본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벌이는 아귀다툼은 얼마 전 50%에 육박하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KBS2TV ‘제빵왕 김탁구" 나 현재 방영중인 MBC TV ‘욕망의 불꽃" 처럼 굳이 막장드라마가 아니라도 우리 주변 어느 곳에든지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이다.
반평생을 교육자로 사셨던 아버지께서 8남매를 모아놓고 훈계 하실 때 자주 하셨던 말이기도 하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는 자라면서 지는 것은 곧 패배자라는 의식 속에서 성장했고 오직 싸워서 이기는 자만이 승리자이고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때문에 남에게 속지 않기 위해서,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나의 일상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 관념은 신앙인이 되어서도 한 동안 나를 지배했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는 겸손의 진리를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불혹(不惑)의 나이를 지나고 지천명(地天命)세대에서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참 뜻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노(老) 교수님의 건배 구호는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진부한 말을 새삼 떠오르게 한다. 이 말은 개인적인 가족관계, 일적인 관계, 조직과 조직, 국가와 국가 간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이기기를 좋아하면 반드시 적을 만난다. 자기를 굽히는 사람은 중요한 지위에 오를 수가 있고 남에게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을 만나게 된다.’ -경행록(景行錄)-
‘시비가 벌 떼처럼 일어나고 득실(得失)이 고슴도치 바늘 서듯 해도 냉정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풀무로 금(金)을 녹이고 끓는 물로 눈을 녹이는 것처럼 해소되기 마련이다". -채근담(菜根譚)-
이러한 이분법적인 대립은 전형적인 지배욕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루시퍼 유혹이라고도 하는데, 대부분 살아가면서 남을 지배하려는 욕구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고, 그 지배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으면 갈등은 저절로 사라진다고 본다.
그래서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얘기가 온전한 듯하다. 물론 지배욕을 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필수적 욕구가 지배욕이기 때문이다. 단지 지배를 하게 되면 그만큼 어깨에 짐도 많아지고, 힘이 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배욕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된다. 그냥 져주고, 내맡겨 두는 게 온전한 게 아닐까?
하나씩 하나씩 버리고, 내려놓다 보면 저절로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듯싶다.
그렇다! 기왕에 져 줄 바에 소극적이고 마지못해 져주지 말고 당당하고 신나고 멋있게 져 줘야겠다.
김광화
조선문학 문인회 부회장
부천 김광화치과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