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4번째
‘자 장 면’
교직을 남들은 방학이 있어 좋겠다고 들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방학이 더 바쁜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빨리 개학을 하면 좋겠다 싶지요.
방학이 좋은 것은 아침 드라마를 좀 편히 보고 출근한다는 이 점 뿐인 것 같아요.
개학을 하면 짜여진 일상 속에 들어갑니다. 강의가 있는 날은 강의 없는 시간이 차분 할 수 있고 방학처럼 뭔지 모르게 붕 떠 있는 일상은 아니지요.
개강을 앞두고 마음이 분주했는지 아니면 못난 마음이 속앓이를 한 덕분인지 나이든 몸이 이기지 못하고 며칠을 휘청거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하여 요 며칠은 좀 이른 귀가를 하여 함께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딸아이와 하루 종일 TV를 보며 빈둥거리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기도 하면서요.
남편이 외출한 휴일, 우리끼리 밥을 시켜 먹자고 결론지었습니다. 마침 TV에서 국수 먹는 장면이 방영되어 ‘자장면’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아니 정확히 ‘간자장’이요. 유난히 편식과 입맛이 까다로운지라 몇 가지 양보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간자장입니다.
중국집에 전화를 하고 얼마 뒤 요리가 도착하였습니다. 배달원이 뭔가 난감한 표정을 짓더군요. 이유인즉 간자장의 자장을 빠뜨린 것이지요.
허연 국수에 깨 몇 알이 뿌려진 국수를 쳐다보니 왜 그리 마음이 아프던지…….
곧 가져다 주마하고 배달원은 돌아갔고 우선 딸아이의 짬뽕을 같이 먹기로 했습니다.
내 간자장의 국수가 혹여 불을까 하여 랩도 벗기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기다리는 자장은 오지 않고 자꾸 시간이 흘러갑니다. 평소 같으면 도착을 하고도 남을 시간인데요. 슬쩍 화가 나려고 했지만 내가 투덜거리면 식구들이 오랜만에 먹는 요리가 심리적 맛이 불쾌감으로 인하여 반감될까 하여 화를 가라앉히고 있었습니다.
현관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 배달원인가 하여 나가보니 남편이 귀가를 하였습니다.
기다림이 슬슬 짜증으로 변하려는 찰나 벨이 울리더군요. 그리고 자장이 도착을 하였습니다. 이어 아까와는 다른 나이가 지긋한 배달원이 국수를 한 그릇 더 주고 갑니다.
“어 아저씨 아까 국수는 주고 가셨어요."
“아녜요 새것으로 드세요. 그동안 국수가 불어 맛이 없습니다."
아~~~ 이게 얼마 만에 맛보는 제대로 된 친절인가요.
난 자장면 값을 내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권한을 가졌지만 불은 국수를 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저항 없이 다만 좀 덜 불기 전에 먹기만을 희망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배달원 덕에 국수는 두 그릇이 되었고 남편은 얼마 전 아이들 자장밥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자장 소스를 데워 자장면을 먹고 난 급히 국수 만들어 오느라 물기가 좀 많은 불지 않은 간자장을 먹었습니다.
당연한 일이 이다지도 고마운 것은 주변의 일상들이 이런 당연함을 지키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일 부터는 눈을 크게 뜨고 내가 다른 이들에게 당연한 일을 대충하는 것이 없나 살펴봐야 겠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작은 배려와 당연한 일들로 주변을 행복하게 해 주세요.
황윤숙
한양여대 치위생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