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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6번째) 금산사의 ‘도란도란’ 템플스테이 (하)

금산사의 ‘도란도란’ 템플스테이 <하>


<1919호에 이어 계속>


마지막으로 또 한 젊은 스님. 사실 난 누구신지 잘 모른다. 크지 않은 방안에 침대와 컴퓨터까지 있어 좀 옹색한 느낌이다. 가구가 절집에 어색한 느낌이 들어 물어 보니 허리가 좋지 않아 침대를 사용한다고 한다.
방, 방바닥은… 타령은 이제 그만하자. 재밌는 것은 내려 갈수록 방은 점점 작아지고 차가워진다는 사실.
반대로 우리에게 해 줄 말씀은 더 많아진다. 공부를 많이 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총명(聰明)한 초등학교 3년생처럼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사실 잘 듣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총명하다’에서 총(聰)은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나에겐 이 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그래서 환자를 치료할 때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기는커녕 시작도 하기 전에 진단을 내리는 버릇이 있다.
귀를 밝게 하자. 올해부터.
총명해지자. 지금부터.
전문 지식인 일수록, 많이 알수록, 가르치는 사람일수록 더 필요한 덕목이지만 더 실행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도끼 자루를 잡아 본다. 아궁이에 불을 때기위하여 장작을 패야 한단다.
한두 번 해보니 도끼질에 대해 전부 다 알 것 같다.
내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렇다. 진즉에 탐진치(嗔嗔癡)를 알아채야 했다.
탐(嗔)하는 마음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성嗔을 내게 된다. 화(火)를 내면 몸과 마음에 또 다른 화(禍)를 입는다. 탐욕은 어리석기(癡)때문에 나오게 되는 것. 어리석지 않으면 탐하는 마음은 나오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이 어리석음을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도끼 자루 하나로 득도(得道)를 한 느낌이다’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가져서도 물론 안 된다.
도끼대신 빗자루를 잡는다.
언제였던가. 몇 겹의 세월이 지났던 것인가. 빗자루를 잡아 본 적이.
밤새 수북이 내린 눈이 숙소와 식당 사이의 계곡에 온통 천지다. 양쪽을 이어주는 돌계단이 무척이나 미끄러워 눈을 쓸어 보려 결심 한 터이다.
일은 벌렸으나 경사가 가파르고 길은 멀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기왕 시작한거 깨끗하게 쓸어보리라 다짐해 보지만 한편으론 과연 내 힘으로 끝을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금강경 한 구절 ‘다가오면 응하고 지나가면 머무르지 않는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以生其心)를 다시 한 번 되뇌면서 마음을 비우고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데 구세주가 나타난다. 일행 중 한 분이 빗자루를 들고 오더니 길의 중간부터 쓸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불교에도 기독교에도 구세주는 있나 보다.
절에서의 도(徒)란 빗자루를 함께 드는 분인가 보다.
이제 길이 전혀 미끄럽지가 않다. 내가 봐도 썩 잘한 일이다. 기분이 좋다. 작은 일이지만 남을 위해 이렇게나마 노력 봉사를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난 직업인으로서는 남의 아픈 곳을 잘 해결 해 주는 편이었지만…
사실 진정한 이타(利他)가 있을까. 선이고 봉사고 결국은 나의 만족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행하는 것이리라.
아무튼 계단 눈 치우기는 운동도 되었고 기분도 개운했고 그 무엇보다도 이 울력으로 공양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어 좋았다. 일을 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못하는게 절에서의 규칙이다.
5일 동안 딱 한 끼만 빼고는 전부 다 찾아 먹었다.
참으로 위대하다.
마음 홀라당 비우러 갔다가 밥그릇만 훌러덩 비우고 왔나 보다.


박정용
청주 그린치과의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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